[동네사람]'캠퍼'장은혜 씨

결혼한 지 1년을 갓 넘긴 주부 장은혜(35·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씨는 종종 남편을 혼자 둔 채 외박을 한다. 친구들과 노숙 아닌 '노숙'을 하기 위해서다.

"대학 들어갈 무렵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일찍 취업을 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을 했으니까요. 직업 특성상 학위가 중요했어요. 석사까지는 혼자서 그럭저럭 할 수 있었는데 솔직히 박사까지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되고 보니 어느덧 직장생활 10년 남짓 됐었고…."

자신을 돌볼 겨를조차 없이 달려온 나날. 딱히 취미생활이 없었던 은혜 씨는 한 일본 잡지를 통해 캠핑을 접하게 됐다.

어려서부터 야영에 로망이 있었던 은혜 씨는 웹서핑을 통해 캠핑기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신처럼 캠핑에 관심이 있는 여성들을 알게 됐고 친해지게 됐다. 말만 그럴 게 아니라 정말 떠나보자며 5명이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은혜 씨는 캠퍼(camper)가 됐다.

장은혜(왼쪽) 씨가 친구와 크리스마스 콘셉트 캠핑을 즐기고 있다. /장은혜

"경북 청도군 운문댐 하류보로 첫 캠핑을 떠났는데 정말 좋았어요. 밤하늘에 별이 떠있고 친구들이랑 깔깔거리며 웃고… 그 전에 캠핑을 갔을 땐 온통 술만 마시는 분위기였는데 그렇지가 않았어요. 첫날의 기억이 아주 좋게 남아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리더 역할을 하던 친구가 팔을 걷었다. '마고걸스(mago girls)'라는 캠핑 크루(crew, 공통의 목적을 위해 모인 사람들의 그룹을 의미)를 만든 것이다. 이름답게 여성들만 참가 가능한 크루였다.

"모든 여성들에게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여성들에게 캠핑은 불편하고 어려운 것이죠.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곳에서 1박을 해야 하니까요. 텐트를 치고 불을 피우고…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고요. 저희도 물론 힘들었지만 그런 모험들을 즐기기로 했어요. 대신 저희들이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들을 더하기로 했죠. 이를테면 아기자기한 아이템을 좋아하는 친구는 캠핑장을 꾸미고, 뜨개질을 좋아하는 친구는 친구들에게 뜨개질을 가르쳐주고, 요리를 좋아하는 저는 간단한 캠핑 요리를 만드는 식으로요."

이들이 만들어 가는 '소녀 감성' 캠핑문화는 빠르게 입소문이 났다. 2015년 5월 현재 마고걸스 카페에 가입한 회원만 1500명에 달할 정도다. 크루가 늘었고 해외로 캠핑을 떠나거나 페스티벌에 참가하기도 했다.

캠핑장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은혜 씨.

"처음 보는 사람들도 물론 와요. 캠핑을 떠나면 그 사람의 직업이나 나이나 가정환경이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다들 캠핑이라는 하나의 관심사로 만난 사람들이라 정말 금세 친해져요. 엄마와 딸이 함께 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럼 저는 엄마와도 친구가 되고 딸과도 친구가 되는 거죠."

캠핑은 알게 모르게 은혜 씨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제가 대전 출신인데 대학 입학하고선 줄곧 서울에서 살았거든요. 화려하고 편한 도시의 삶에 익숙해졌어요. 그런데 캠핑으로 전국을 다니다 보니까 자연환경이라든지 그런 게 더 좋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직장을 구해 부산으로 내려왔어요. 캠핑하면서 알게 된, 제가 많이 의지하는 친구들이 부산 근처 도시에 살기도 했고요. 서른이 넘었는데 결혼 소식은 없고, 친구들이랑 놀러다니기 좋아하고, 게다가 갑자기 부산에 내려간다고 하니 부모님 입장에선 걱정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부산으로 내려온 뒤 캠핑으로 알게 된 지인에게서 남자를 소개받았고…그 남자와 결혼을 했네요. 캠핑이 지금의 삶을 만들었다고 봐야겠죠."

은혜 씨에게 보다 즐거운 캠핑을 만드는 비결을 물었다.

"테마를 정하고 캠핑을 떠나보세요. 생일 캠핑, 크리스마스 캠핑, 핼러윈 캠핑처럼요. 저는 결혼 전날에도 캠핑을 했어요. 웨딩캠핑이라는 테마를 정하고 친구들과 옷을 차려입고 소품으로 분위기를 내고 그러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해먹고요. 틈틈이 사진도 찍었죠. 정말 특별했어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어요."

어느덧 4년차 캠퍼가 된 은혜 씨에게 초보 캠퍼에게 꼭 필요한 장비가 무엇인지 물었다.

"보통 캠핑을 해야겠다 마음먹으면 장비부터 알아보잖아요. 인터넷으로 장비 검색만 하다가 지칠 정도로요. 그러지 말고 침낭이나 텐트처럼 간단한 장비만 가지고 떠나보는 거예요. 우선 떠나보는 게 중요해요. 실제로 하룻밤 자보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캠핑 스타일에 꼭 필요한 장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 남들이 필요하다 해도 자신에게 필요 없으면 쓸모없는 게 장비예요. 그리고 처음부터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지 마세요.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꼭 한번은 바꾸게 되는 게 장비랍니다. 아, 국내 중소기업 제품도 해외 유명브랜드 못지않게 질이 좋으니 참고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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