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에서 꺼낸 이야기]'물품제공'약속, 선거 이득 기대했다

이홍기 거창군수에 대한 항소심 판결 결과가 의외였다는 반응이 많다. 법조계가 전반적으로 거창법조타운 추진을 기대하고 있고, 검찰이 이 군수 측 공소사실 변경 신청을 이례적으로 받아들이는 등 청신호 속에서도 당선무효 형을 선고한 것이다.

부산고등법원 창원제1형사부 윤종구 부장판사는 11일 선고에 앞서 이런 말을 했다.

"법관에게 권능과 힘이 위임돼 있지만, 헌법·법률·소송절차·법리·증거 등에 따라 공개재판을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이는 법관에게 아무런 권능과 힘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좋은 재판을 위해서는 검사·변호인의 역할·절차와 함께 국민과 시민의 이해·신뢰·협력이 필요합니다. 재판은 반드시 공개된 법정을 통해야 합니다."

윤 판사의 이 전제는 이날 재판 결과를 예고한 것이었을까.

지난 11일 상고 의사를 밝히고 있는 이홍기 군수. /이일균 기자

이 군수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내용은 둘. 지난해 6·4지방선거 전 4월에 거창읍 한 식당에서 열린 여성단체 모임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이 단체를 위해 물품(앞치마) 구입을 약속했다. 이어 5월에는 또 다른 식당에서 열린 여성단체 임원 모임에서 제3자를 통해 90만 원 정도의 밥값을 낸 혐의다. 제3자는 전국 거창향우회장 ㄱ(67) 씨.

지난 2월 4일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 재판부는 두 혐의 모두 유죄로 인정해 이 군수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ㄱ 씨에게는 벌금 1000만 원을 내게 했다.

항소심 판결문에서 이 군수의 항소 요지부터 보자.

'사실 오인 또는 법리 오해가 있다. 2014년 4월 5일 피고인이 ○○식당에서 ㄴ 등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만취한 ㄴ의 지속적인 독촉을 받고 거창군 ○○단체협의회에 앞치마 100개를 제공한다는 약속을 하면서 ㄴ이 건네준 메모지에 사인한 사실은 있으나, 이는 ㄴ으로 하여금 앞치마 지원 요구를 그만두게 하려고 진정한 의사 없이 한 것이므로 구 공직선거법 상 약속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단체협의회가 이 사건 규정에서 정한 기관·단체·시설에 해당하지도 아니한다. 5월 13일 피고인이 ○○단체협의회 회원이 모여 있던 ○○식당에 간 사실은 있으나 회원들에게 음식물을 제공하기로 ㄱ 등과 공모를 하거나 의사소통을 한 사실이 없다.'

재판부는 우선 이 군수 측의 사실 오인 또는 법리 오해 주장에 대해 이렇게 판단했다. 우선 앞치마 제공 약속에 대한 판단 부분.

'① 피고인(이홍기)은 ㄴ으로부터 앞치마 100개 제공을 요구받자 ㄴ에게 먼저 구두로 약속하였는데 그 이후에도 반복해 요구하자 ㄴ이 내미는 노트에 자필로 '앞치마 100개 ○○단체협의회 B'라고 기재하는 방법으로 약속을 하였다. ② ㄴ은 약속을 받은 다음 곧바로 피고인의 서명도 받아 냈지만, 그 당시 기재에 삭선이 그어지거나 기재가 있는 노트 면이 찢어지는 등 약속이 철회되었음을 인식할 수 있는 사정은 없었다. ⑤ ㄴ이 피고인으로부터 기재를 받아내었음에도 또다시 그 아래에 ㄱ의 서명을 받아냈고 그 과정에서 피고인으로부터 당장 집행할 군 예산이 없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이 사건 약속이 철회된 것으로 인식하였다고 보기에 부족하고, 오히려 향우회장으로 재력이 풍부한 ㄱ으로부터 약속을 보증 또는 보강한다는 의미로 서명을 받아낸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다음은 이 내용이 '선거운동에 이용할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 부분.

'② ㄴ은 피고인에게 ○○단체협의회에 대해 단지 거창군청 차원에서 또는 군 예산으로 물품 지원을 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 거창군수 예비후보자등록을 한 다음 날로 아직 당내경선이 마무리되기 전에 선거를 앞둔 피고인에게 선거 지원을 약속하면서 물품을 요구하였다.' 결국 이 군수가 ㄴ의 승낙을 받아들인 것은 기부 약속을 통해 선거 득표에 도움을 받고자 한 결정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한 것이다.

거창군 ○○단체협의회가 이 사건 규정에서 정한 '기관·단체·시설'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이에 소속된 여성단체들은 거창군 내 10개 ○○단체로…. 비록 산하 회원들 각자가 위 협의회 회원이 아니라 그 대표들만 회원이라고 하더라도, 위 협의회는 거창군 내 선거운동에 이용될 소지가 크고 선거에 이용되는 경우 선거의 공정을 해칠 우려가 큰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피고인의 사실오인이나 법리오해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

그 결론이 판결문 맨 앞의 '주문'이다.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 ㄱ을 벌금 1000만 원에, (이홍기) 피고인을 벌금 200만 원에 각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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