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채소가게.

물건 값을 치르려면 적어도 10분은 기다려야 한다. 물건을 담아주지도 않는다. 구비된 장바구니가 부족해서 손가락마다 비닐봉투를 걸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공간이 협소해서 이리저리 물건을 고르는 사람끼리 부딪치는 건 예사고, 양파나 무, 배추 같이 부피가 큰 물건들은 가게 앞 도로에서 각자 알아서 다듬어야 한다. 당연히 배달도 안 된다.

불편함은 그뿐만이 아니다. 가게 문 여는 시간이 오전 11시 30분, 문 닫는 시간은 물건이 떨어지는 때인데 거의 대부분 오후 6시 전후다. 심지어 토·일요일을 포함한 모든 공휴일에는 문을 열지도 않는다. 요즘같이 워킹맘이 많은 시대에 너무 소비자를 배려하지 않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대단지 아파트 사이에 큰 도로를 끼고 있는 상가의 조그만 공간을 채소가게로 오픈하는 걸 보면서, 얼마 전까지 비슷한 위치의 반찬가게가 문을 닫았던 일이 떠올라 혼자 속으로 걱정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야말로 오지랖이었다.

마침 점심시간에 밖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탐스런 사과가 보이길래 몇 알을 골랐다. 붐비는 시간이라 그냥 마트에서 살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계산대 앞의 긴 줄에 합류했다. 신기했다. 주변에 대형할인마트가 두 곳이나 있는데 이렇게 불편함을 감수하고 기다리면서까지 이 채소가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신기했고, 이 많은 물건을 그 짧은 시간에 다 팔아치우는 주인도 신기했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 가장 큰 놀라움은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이 젊은 청년들이라는 점이었다. 20~30대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손수 트럭을 끌고 매일 아침 청과시장에서 직접 선별해온 최상의 상품을 자신 있게 내어놓는다. 가끔은 큰 소리로 오늘은 특히 어떤 물건이 좋다고 추천이라도 하면 그 물건을 안 사는 게 손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은 것들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는 보는 사람들마저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생기가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 동네 채소가게는 지금 대형할인마트의 손님들뿐만 아니라 제법 먼 아파트 주민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영업 전략이나 비법이랄 게 뭐가 있겠나. 이윤은 적게, 신선도와 품질은 높게라는 너무도 당연한 상식으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은 것이다.

이 채소가게를 보고 있노라면, 요즘 같이 청년 실업률, 취업난이라는 난제 속에서 힘겨워하는 젊은이들에게 무언가 해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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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기에 도전해볼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힘겹고 팍팍하게 느껴지는 세상살이지만 생각보다 할 만한 일이 많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이 뜻밖에 내 삶을 재미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한 번 믿어보는 건 어떨까?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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