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간다] (7) 엄마가 그리워 찾아간 박재삼문학관

지난 1일 자 <경남도민일보>에는 가만히 누워 있는 할머니 모습이 앞면에 담겼다. 점점 기억을 잃어간다는 구순을 넘긴 어머니였다.

5월이다. 어머니가 더욱 생각나는 봄.

박재삼(1933~1997) 시인을 만나고 싶어졌다.

멀리 진주 장터로 고기를 팔러 나가는 삼천포 어물 장수 어머니를 기다리는 시. '추억에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늦은 오후 박재삼문학관으로 향했다.

사천시는 삼천포에서 자란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려고 2008년 사천 노산공원에 문학관을 열었다.

노산공원은 삼천포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다. 삼천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쪽으로 향하면 닿는 언덕이다. 시가지에서 출발하면 공원이 대체 어디 있나 싶다.

박재삼문학관 전경.

비린내가 코끝을 스쳐 바닷가에 다다랐다 싶지만 공원을 한눈에 알아채기 어렵다. 그래서 용궁시장으로 가다 입구에서 왼쪽으로 꺾어 골목길을 걸으면 수월하다. 높은 계단이 나오는데 바로 노산공원 입구다. 아니면 삼천포항으로 난 덱로드를 따라 걸으면 공원으로 들어선다.

돌계단을 오르니 곳곳에 늦봄에 동백꽃이 송이째로 떨어져 있다. 낙화하지 않은 붉은 꽃송이 몇몇은 봄더러 늦게 오라고 말하는 듯하다.

너른 잔디밭에 3층짜리 문학관이 들어서 있다. 오른편에는 조선 영조 46년(1770년)에 건립됐다는 서당 '호연재'가 복원돼 있다.

문학관 로비에는 박재삼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뒤편에는 그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1층은 서정시의 정통 계보를 잇는 박재삼의 문학세계를 알 수 있는 자료들로 꾸며져 있다.

1936년 가족 모두 일본에서 귀국해 삼천포 서금동에 자리를 잡았다는 연보가 눈에 들어온다. 유년시절 온종일 갯바람을 맞으며 놀았을 시인이 떠올랐다.

박재삼문학관에 만들어진 그의 작업방.

대표 서정시인으로 꼽히는 박재삼은 유치환과 서정주의 추천으로 시가 발표돼 등단했다. 소탈하고 소박한 성품처럼 어렵지 않은 우리말로 노래했다. 눈물, 강물, 바다, 햇빛, 달, 별, 구름 같은 특정 시어를 반복해 쓰기도 했다.

박재삼 시인의 친필 편지와 엽서를 들여다보니 동글한 글씨체가 눈에 띈다. 필체에서도 정이 많은 그를 느낄 수 있다.

작업방이 따로 없었던 그의 글방도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시인이 쓰던 책장과 서탁, 안경, 생전에 읽었던 책들까지 전시되어 있다.

그에게 창작의 비법을 묻고 싶었다. 매일 글을 쓰는 직업을 떠나 글쟁이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 간절했다. 그런데 비법은 없다고 답한다. 대신 자연에 배워라, 따뜻한 가슴으로 사물을 보라고 한다.

문학관 2층으로 오르면 다목적실이 나온다. 그의 일생에 관한 영상물을 볼 수 있다. 3층에는 방문객이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과 문인들의 창작공간이 있다.

후문으로 문학관을 빠져나오면 박재삼이 벤치에 책을 펴놓고 앉아있다. 슬쩍 옆자리에 앉아 그의 얼굴을 쳐다본다.

노산공원에는 그의 시비가 여러 개 있다. 그가 자랑스러운 서울 시민상을 받은 1984년 고향에서는 '천 년의 바람'을 새긴 비석을 노산공원에 세웠다. 그가 늘 올라 바라보기를 즐겼던, 한려수도를 향한 이곳에 그의 노래가 박혔다.

노산공원 끝 팔각정에 서니 한나절 치솟았던 해가 삼천포대교 너머로 희미해져 간다. 비둘기와 갈매기가 같이 날고 뱃사람과 낚시꾼이 뒤섞인 삼천포항도 내려다보인다. 유행가처럼 불렸을 '삼천포아가씨'도 흘러나온다.

노산공원을 빠져나와 다시 골목길에 서니 관광객들로 왁자지껄하다.

가난한 방에서 홀로 '엄매'를 그리워한 박재삼처럼 비린내 나는 삶의 터전에서 고함을 내지르며 힘차게 칼질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어머니가 더 그립다.

<추억에서>

진주 장터 생어물전에는

바다 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

울 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중략)

울 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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