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기업인 사이를 오갔던 경남기업 성완종 전 회장이 죽으면서 남긴 메모 한 장으로 대한민국은 진공 상태에 빠졌다.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에도 국무총리가 물러나고 권력의 실세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종일 편파방송을 이어가는 종편은 신이 났다. 정치평론가의 역할을 맡은 출연진은 시정잡배처럼 이리저리 말을 바꿔간다. 엄밀하게 경남도와 경남기업은 연관이 없지만 연일 뉴스는 경남도지사가 언제 검찰조사를 받는가를 중계했다. 이슈 파이터로 소문난 홍준표 지사의 웃음이 애매해 보인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니다. 대통령은 해외순방에서 돌아와 남의 일처럼 유체이탈 화법을 이어가고 있고, 도피도 망상도 다수가 빠지면 현실이 된다고 했는가! 대한민국의 정치는 싸구려 풍선껌처럼 소비되어 가고 있다.

단군이 웅녀와 결혼해 고조선을 세우던 그 시절에 아테네의 원형 극장 '프닉스'에 모인 6000명의 시민과 500명의 평의원이 부활한다면 오늘을 어떻게 평가할까. 타락한 권력은 대의라는 옷을 입고 마당을 서성거리고 있다. 그럼에도 매일 같이 새로운 날이 오고 새로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어제의 담론이 일주일 후면 낡은 담론이 될 것이고, 우리는 다시 새로운 일에 익숙해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말 불의(不義)는 잘 참고 불이익은 못 참는 존재가 되고 있는가! 메모의 등장인물로 매일 아침뉴스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홍 지사 덕에 경남도민은 때 아닌 구경거리 노릇을 하는 동물원의 거주자들과 비슷한 처지가 되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경남의 학생들이 다른 지역과 달리 급식의 상대적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사실에 더 분노하고 있다.

불이익과 불의는 켜와 결이다. 우리 고유어에서 켜는 층이고 결은 무늬인데 전자가 시간을 두고 쌓이면 후자는 그 퇴적이 만들어낸 바탕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결국 불이익들이 쌓이면 한때 숭배의 대상이었던 많은 동상이 성난 군중의 손에 끌어내려졌듯이, 부패의 권력은 길바닥을 나뒹구는 고철이 될 것이다. 체제를 선전하는 기념물들이 체제가 바뀌면 존재의 이유를 잃게 마련이다. 의미는 닫히지 않았고, 급식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예술에서 낡은 것이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는 현상은 전위라는 말로 강조되었듯이 대의 민주주의에서 낡은 것이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는 진보는 선거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선거라는 간편하고 합리적인 방법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았다. 사실 투표한다고 세상은 잘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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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연일 뉴스에 등장하는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애매한 웃음을 짓고 있다. 과학자들이 모나리자에 표현된 감정을 컴퓨터로 분석해보니 그림 속 주인공은 83% 정도 행복하고, 나머지 17%는 두려움과 분노 같은 감정이 담겨 있다고 한다. 지금 홍 지사의 웃음에는 얼마의 행복감과 두려움과 분노 같은 감정이 담겨 있을까?

/황무현(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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