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그 후] STX 수정산단 문제로 마음고생했던 수정마을 주민

지난 2011년 6월,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초등학교에서 마을잔치가 열렸다. 'STX중공업 조선기자재공장 설립 반대 투쟁'을 승리로 이끈 수정마을주민대책위원회가 도움받았던 지역사회에 감사 마음을 전하는 자리였다. 정계·학계·종교계·법조계·시민사회계·언론계 등에서 500여 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정작 수정마을 사람들은 전체가 함께하지는 못했다. 지난 4년의 세월은 단순히 공장이 들어서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을공동체가 무너지는 아픔의 과정이기도 했다. 공장 유치를 놓고 찬반으로 나뉘었고, 행정은 오히려 주민 간 반목을 키우는 데 앞장서는 노릇을 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갈등이 있었던 만큼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찬반과 같은 과거는 뒤로하고 치유하는 시간이 됐을까?

5일 오전 마을회관에서는 어버이날 마을잔치가 열렸다. 매해 하는 자리인데 올해는 며칠 앞당겨 마련했다. 수정마을은 어버이날뿐만 아니라 명절 때에도 다 함께 모여 식사 한 끼 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STX 조선기자재공장이 들어서려 했던 곳은 지금 야적장으로만 활용되고 있다.

마을회관 거실에는 주로 할머니들이, 그리고 방마다 할아버지들이 각각 모여 국밥에 약주 한 잔씩 곁들이고 있었다. 웃음꽃이 여기저기 흘러나오고, 덕담·농담도 오갔다. 늦게 발걸음 한 이가 있으면 "여기도 식사 내드려라"며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닌 듯했다.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하나같이 찬반 주민 간 '앙금'은 여전하다고 했다.

한 60대 주민은 이렇게 귀띔했다.

"이런 날은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맞대기는 하지만, 말은 섞는 사람들끼리만 섞어요. 자리도 이쪽저쪽으로 나뉘어 앉기도 하고요."

또 다른 60대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싸웠다면 모를까, 수년 동안 그렇게 서로를 불신했는데 그게 회복되겠어? 앞으로도 이전처럼 지낼 수는 절대 없을 거요."

한 70대 주민은 마을잔치에 참석하지 않고 길가 평상에 혼자 앉아 있었다.

"가 봐야 별거 있나…. 오다가다 큰마음 먹고 내가 먼저 말 한마디 건네면 '뭐하러 말 붙이냐'는 핀잔만 들어. 그럼 나도 '내가 너하고 연애하자고 말 붙이겠나'라며 쏘아붙이게 되지. 내가 그래도 아재뻘 되는데, 한번 그렇게 되니까 위아래도 없는 거지."

가게를 운영하는 한 주민은 "100으로 치자면 30 정도 회복됐다고 할 수 있으려나. 100이 될 수는 없지"라고 덧붙였다.

수정마을 주민들이 어버이날을 앞두고 마을회관에서 잔치를 열고 있다.

4년 전 STX중공업 사업 포기로 이 문제가 일단락된 것 같지만, 주민 간 불신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STX와 옛 마산시가 던진 마을발전기금과 같은 문제는 여전히 갈등의 씨앗으로 남아있다. 또한, STX중공업 사업 포기로 남게 된 조선기자재공장 터에 '제2 자유무역지역'이 들어설 예정이지만, 행정 절차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반대 측 주민들이 만든 '수정마을주민대책위원회'는 여전히 존속되고 있다. 특별한 안건이 있어야 주민 총회가 열리는데, 한자리에 모인 지 꽤 됐다고 한다. 박석곤 공동위원장 등 집행부는 터 활용 문제를 놓고 창원시와 얘기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은 STX 문제를 꺼내면 하나같이 '황철곤 전 마산시장'에 대한 험담으로 이야기를 귀결했다. 무책임한 결정을 했던 행정 관계자들은 모두 떠나버렸고, 마을주민은 여전히 그 상처를 떠안은 채 지내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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