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봅시다]시중은행 본인 확인 부실…타인이 만든 내 계좌로 대출사기 '허술한 확인절차'도마에

시중은행 지점에서 본인 확인을 꼼꼼히 하지 않아 계좌를 타인에게 개설해준 사실이 드러났다. 은행을 찾은 이가 아닌 다른 사람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준 것이다. 이후 이 통장은 대출 사기에 이용됐다. 계좌 개설 때 본인 확인 과정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본인 확인만 제대로 했어도…" = 20대 최명우(가명) 씨는 지난해 초 군대 선임으로 알고 지내던 ㄱ 씨 부탁을 받았다. 휴대전화 대리점 운영 실적이 필요한데, 신분증과 공인인증서, USIM(유심칩)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최 씨는 의심 없이 신분증 등을 빌려줬으나 이게 화근이었다.

이후 ㄱ 씨는 최 씨 신분증을 들고 김해에 있는 한 시중은행 지점을 찾았고, 이곳에서 최 씨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었다. ㄱ 씨는 역시 최 씨 이름으로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 3곳에서 인터넷 대출금 2100만 원을 이 통장으로 받아 빼냈다. 아무것도 모르던 최 씨는 지난해 6월께 날아온 빚 독촉 최고장을 보고 나서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됐다. ㄱ 씨는 최 씨 말고 비슷한 시기 같은 방식으로 지인 3~4명을 속여 대출금을 받아 쓴 혐의로 법정에 섰고,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받았다.

최 씨와 그의 가족은 "은행에서 통장 개설 시 본인 확인만 제대로 했어도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은행 측은 본인 확인을 거쳤으나 결과적으로 잘못됐다고 시인했다. 은행 관계자는 "신분증과 얼굴 대조, 분실·위조 확인 사이트도 거쳤으나 문제가 없었다"며 "통장 개설 절차에 문제가 없었지만, 고객이 피해를 봤으니 일부 보상하라는 금융감독원 판단을 받고 합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했다.

금감원 분쟁조정국 은행중소서민금융팀 관계자는 "은행에서 주의를 다하지 않았기에 과실 책임이 있고, 유사한 내용으로 은행의 주의 의무 위반 판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출 피해금액 30%는 은행 책임, 70%는 본인 책임으로 돌렸다.

최 씨는 피해금액 보전을 위해 소송에 나서야 할 처지가 됐다.

◇대책은? = 최근 금융권 계좌 개설 절차는 강화되고 있다. 다른 지역 거주자이면서 거래가 처음이면, 은행은 단순한 입출금거래 통장 개설도 거부하고 본인 거주지로 안내하는 것이 원칙이다. 통장 개설 목적에 따라 서류도 요구한다. 신분증과 함께 급여 이체에는 재직증명서와 사원증을 받고, 각종 모임 통장에는 정관과 회원 명부 등이 필요하다. 금감원 서민금융지원국 관계자는 "통장 발급 전에 '통장 발급 신청한 적이 있느냐'고 동의를 구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인증번호도 쓰는 휴대전화 인증 대책을 마련 중이고, 도입 시점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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