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홈패션으로 인생 찾은 신복순 씨

딩동~ 몇 번 망설임 끝에 초인종을 누르고 초조하게 기다린다. 곧이어 현관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집주인이 문 밖 실체를 확인하고는 쾅 닫아 버린다. "안 산다니깐요." 짜증 섞인 차가운 말과 함께. 힘 없이 돌아선 그림자에는 책 꾸러미가 잔뜩 들려 있다. 그림자는 주택가를 돌아 어느덧 시장에 이른다. 좁고 가느다란 통로마다 4평(13㎡) 남짓 점포들이 줄지어 들어선 곳. 옷가게, 수선집, 음식점 등을 지나쳐 한 수예점 앞에 멈춘다. 유리문에는 새 주인을 찾는 문구가 붙여져 있다.

"장사가 엄청 잘됐었죠. 그때만 해도 참 좋았는데…."

방바닥에 엎드린 채 부지런히 커튼을 자르던 신복순(68·진해 제황산동) 씨. 가위질을 잠시 멈추고 허리를 펴는 표정에 복잡한 감정이 스며 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다 = 30년 전 복순 씨는 오로지 남편, 아이들 뒷바라지에만 신경 썼던 전업주부였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때때로 친구들과 어울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여행도 떠날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갑작스러운 회사 부도로 실직자가 된 남편 대신 복순 씨가 생계를 짊어지기 전까진. 사회생활이라고 한 번 해본 적 없는 복순 씨는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 따라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막상 초인종을 누르면 담벼락 뒤로 몸을 숨기기 바빴다. 겨우 용기 내어 집안으로 들어갈라 치면 집주인이 영업사원인 걸 확인하고는 내쫓기도 했다. 하지만 중학생, 고등학생인 두 딸을 생각하며 현관 앞에 다시 섰다.

어김없이 견본책 6~7권을 들고 거리를 누비던 어느 날, 진해 중앙시장을 지나던 복순 씨 눈에 싸게 나온 수예점이 들어왔다. 갈수록 체력이 부치면서 좀 더 안정적인 일은 없을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평소 집을 꾸미고 아기자기한 소품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망설임 없이 가게를 인수했다.

딸아이 어렸을 적 색동한복을, 중·고등학생 때는 무용복을 만들어 입혔을 만큼 손재주가 남달랐던 복순 씨. /문정민 기자

"그야말로 대박이었어요. 물건 들어오기 무섭게 불티나게 나갔으니, 없어서 못 팔았죠."

언제까지 호황을 누릴 것 같던 수예점도 IMF 칼바람은 피하지 못했다. 찾는 발길은 뚝 떨어지고 재고는 쌓여만갔다. 그즈음 예상치 못한 병으로 남편마저 떠나보냈다. 생기 잃은 가게에 복순 씨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런 그에게 벨소리마저 날카로운 전화 한 통이 날아든다. 카드회사다. 건강식품을 대신 사다 주겠다며 신용카드를 빌려간 친구의 지인이 사기를 친 것이다. 2억 원 넘는 빚을 고스란히 떠안았고 피와 땀으로 일군 집과 땅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세상일에 무지했던 자신이 원망스럽기만한 복순 씨. 급기야 죽을 각오로 농약병을 사고 만다. 두 눈 질끈 감고 농약병을 드는 순간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무언가 손을 탁 치며 농약병을 떨어뜨린 것. 깨진 유리병을 한참 보던 복순 씨는 결심한 듯 일어선다. 죽을 용기로 다시 한 번 열심히 살아 보겠노라고.

◇다시 살 게 해준 홈패션 = 가게로 돌아 온 복순 씨는 수예품 대신 재봉틀을 잡았다. 딸아이 어렸을 적 색동한복을, 중·고등학생 때는 무용복을 만들어 입혔을 만큼 손재주가 남달랐던 복순 씨다. 집에 있는 이불, 방석, 식탁보 또한 모두 그의 작품. 새롭고 창의적인 일에 몰두하면 힘든 기억이나마 잊힐까 시작한 일이 바로 홈패션이다.

수예점을 운영할 당시 물건을 떼와 가격을 덧붙여 파는 게 소비자와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아 늘 마음에 걸렸던 복순 씨. 그때를 떠올리며 쿠션 커버 하나를 만들어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수공비만 받는다. 지퍼, 고무줄 등 재료값이 올라도 10년 넘게 같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노력한 대가만큼 정직하게 돈을 벌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손님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부담 없이 찾아 올 수 있잖아요."

비교적 복잡한 계산을 요하는 소파 커버도 척척 만들어내는 복순 씨. 누구한테 배운 적 없는 데도 뭐든 만들어내는 자신이 새삼 신기하고 전에 없던 삶에 대한 열의를 느낀다. 원단 색감 선정부터 디자인까지 오로지 자신의 감각으로 만든 제품이 고객의 집과 어울려 빛을 발할 때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는 복순 씨. 살기 위해서 시작한 홈패션은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한때 죽으려고 했던 복순 씨에게 미련이나 욕심따위 없다. 그저 떨쳐내지 못한 게 있다면 죄책감. 바로 자식에 대한 미안함이다. 시집간 딸들이 제집 하나 없이 사는 게 꼭 자신 탓인 것만 같아서다. 50년도 더 된 낡은 재봉틀이 마지막 힘을 짜내며 박음질하듯, 어쩌면 복순 씨도 남은 힘을 다해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에 쌓인 두터운 짐을 덜어 내기 위해. 봄을 닮은 분홍빛 니트를 입은 복순 씨에게 어서 봄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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