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택근 선생은 누구

거제 3·1항일독립만세운동을 이끈 윤택근(1898~1967·사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 선생은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후 거제로 돌아와 1923년 2월 이운청년회를 결성해 청년운동에 전념한다.

윤 선생은 여기서 동아·조선일보 지국을 경영하고, 노동야학과 사회운동을 강화하는 각종 강좌, 연극 활동 등을 조직했다. 민중교육을 위한 양정학원을 설립해 교사로도 일했다.

이듬해 '거제청년연맹' 대표자가 된 윤 선생은 1926년 8월 불꽃회를 결성, 사회주의 사상과 청년, 노동운동에 매진했다. 1927년에는 조선공산당에 가입, 경남도위원회 책임비서를 맡아 김해, 양산, 거제 등에서 고려청년회 야체이카(세포)를 조직했다.

이듬해 조선공산당 중앙조직부원 및 경남도책으로 선정돼 활동하다 1929년 2월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기도 했다. 출소 후인 1933년에는 원산과 함흥 등지에서 광산노동자로 일하다 해방을 맞았다. 해방 공간에서 건국준비위원회가 전환한 인민공화국 중앙위원회 경남도인민위원장직을 맡아 사회주의 운동에 열성을 쏟았다. 분단이 눈앞에 닥친 1947년에는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김일성과 만나기도 했으나 투옥돼 옥고를 치렀다. 한국전쟁을 지나면서 반정부 좌익 인사로 낙인 찍힌 윤 선생은 이후 연좌에 묶여 완전한 해방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 채 1967년 부산 온천장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렇듯 거제지역에서 3·1항일독립만세와 청년운동 등 항일독립운동에 선구적 역할을 한 윤 선생이지만 사회주의 독립운동에 대한 편견 속에 아직 독립유공자 지정을 못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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