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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결국 작품으로 말하는 거죠

[이서후의 사심가득 인터뷰] (3) 호탕한 조소작가 이정희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5년 04월 27일 월요일

이정희. 33. 조소 작가.

솔직히 한동안 정희를 '그 말 많은 여자'라고 기억하곤 했다. 호탕한 웃음소리, 시선을 잡아끄는 입담은 어디서나 눈에 띈다. 그는 동료 작가 전시회마다 나타나 자기가 전시하는 것 처럼 돕고, 전시 오프닝 뒤풀이까지 알뜰하게 챙긴다. 그런 모습을 자꾸 보다 보니 어느 때부터 그런 자리에 정희가 안 보이면 섭섭하기까지 하다. 정희가 하는 작업이 회화나 조각 같이 고정적인 게 아니어서 가끔 그가 작가라는 사실을 잊곤 한다. 하지만, 어느 봄날 처음 가본 작업실은, 정희가 진지하고 열심인 작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정희네 작업실은 아기자기한 작업 공구와 소품으로 채워져 있다. 한마디로 무척 재밌고 편안한 곳이다. 마침 작업실에 놀러 와 있던 강동현 작가도 그런다. "조각이나 조소하는 작가 작업실 치고 이만큼 깨끗하고 아늑한 곳은 없죠." 자신도 별일 없으면 정희 작업실에 와서 논단다.)

이정희 작가 /강대중

-니 작업실 되게 편안하니 좋네.

"주변에 있는 작가들이 많이 놀러 와요. 저는 이렇게 사람들이 놀러 오는 게 좋지, 누구랑 작업실을 같이 쓰고 그런 거는 못하겠더라고요. 일단 혼자 쓰는 작업실은 맞지만 열쇠는 다 나눠주고 없고요, 저는 복사키 들고 다녀요. 아하하.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한 번씩 뭐라 그러면, 어차피 남는 열쇠라 준다고 그러죠."

-근데 니가 하는 작업이 구체적으로 뭐고. 설치? 조각?

"제가 하는 건 조소예요. (조소란 재료를 깎고 새기거나 빚어서 입체 형상을 만드는 것을 말하는데, 보통 조각과 소조를 아우른다) 설치에 가깝긴 한데, 개념상으로 보면 완전 설치라고 하긴 어렵고요. 여러 가지 부분에서 보면 설치 미술의 성향이 크죠. 때로 작품에 퍼포먼스(행위예술)적인 성향이 있을 순 있어요. 하지만 제가 관객에게 어떤 행동을 하게 할 순 있는데 제가 직접 행동을 해서 보여주진 않죠. 조소라는 자체가 입체잖아요. 조소가 어차피 깎는 거랑 붙이는 거 합친 거니까 결국 뜻은 입체적으로 만들어낸다는 거니까요. 작품은 거의 설치 형식으로 되는 것 같긴 해요."

-그러면 니 작업 재료나 소재는 뭔데?

"우선 고무줄? 2009~2010년에 개인전 한 거는 다 노란 고무줄로 작업했어요. 물론 시간이 오래 걸렸죠. 근데 이게 또 방법을 한 번 찾으면 아주 빨리 작업이 진행돼요. 처음에는 한 개 만들 때 막 한 달 걸렸는데, 익숙해지니까 삼일 만에도 만들어지데요. 고무줄 작업 말고는 그전의 담요작업이요. (벨벳 소재 담요를 캔버스에 붙여 놓고 털 무늬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것을 이용한 작품을 말한다.) 담요 위에 그림 그려놓으면 사람들이 보고 고치기도 하고 아니면 싹 다 지우고 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고무줄'(2011)

(이 외에도 정희는 도자기, 나무, 노끈, 화분, 소쿠리, 스타킹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그런데 왜 조소를 하게 됐노?

"왜 조소냐, 라는 질문보다 만일 조소를 안 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보면요, 못 버텼을 거 같아요. 저한테는 평면에 내용을 담는 게 어려운 거 같아요. 차라리 이렇게 입체적으로 하는 게 편해요. (벽에 붙은 메모지들을 가리키며) 보통은 이렇게 먼저 에스키스(esquisse)를 하고 나서 소재를 찾거든요. (에스키스란 작품 구상을 하면서 하는 각종 스케치, 메모, 습작 같은 것을 말한다.) 되게 단순해요. 자료 찾고 구상하고 소재를 정하면 표현 재료를 찾는 거죠."

-딴 작가들은 한 가지를 파잖아. 예를 들면 회화나 조각을 하면서 점점 기술이나 표현이 깊어지고 그러잖아. 그런데 니는 매번 재료가 바뀌니 그런 부분에서 아쉬운 건 없나.

"제가 봤을 때는 큰 맥락에서 보면 똑같은 거 같아요. 저도 제 작품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의 맥락은 있어요. 그런데 나오는 형식, 재료나 소재가 다른 거죠. 결국은 회화든 조각이든 제가 하는 것이든 모두 작품으로 말하는 거잖아요."

'보물찾기'(2013)

-살면서 그런 때는 없었나, 사는 게 뭔가 하는 고민 같은 거.

"되게 많았죠. 워낙 편치 않은 집안에서 자라서요. 뭔가 집에 굴곡이 아주 심했어요. 저는 TV 드라마가 우스워요. 어릴 때 집에 빚쟁이가 와 있는 것도 봤고. 그래서 제가 어릴 적에 부산에서 함안으로 전학 갔거든요. 거기 애들 경계심이 장난 아니었어요. 드라마에 보면 시골에 이사 가면 애들이 도시에서 온 애들 괴롭히고 따돌리잖아요. 제 경험은 드라마의 100배예요."

'토끼그리기'(2014)

-그라믄 아주 우울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네. 근데 지금 보면 되게 밝고 활달하잖아. 잘 자란 거네.

"예전에는 이런 개인적인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어요. 입 밖으로 내면 우울해지니까. 한 번씩 내가 미술을 하는 거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거의 서른쯤 됐을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은데, 이게 아니면 못 버텼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일반인처럼 대학을 나와서 취직을 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돈을 모으고 하면서 살았다면 못 버텼을 것 같아요. 물론 우울할 때가 없다고는 못하죠. 우울할 때도 분명히 있었어요. 너무 기복이 심할 때는 디데이(D-day)를 잡아놓고 자살을 하려고도 했었는데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자살을 하면 그 순간 후회할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움직이지마세요'(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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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출판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