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아직도 해요? 다 끝난 거 아니에요? 주민투표 해도 안돼요."

진주의료원 주민투표 청구인 서명을 위해서 지인들에게 진주의료원에 대해 운을 떼기 시작하면 서명 용지를 채 꺼내기도 전에 사람들은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서명지를 꺼내는 손이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가끔 울컥할 때도 있다. 지역현안에 관심 없거나 정치적 자신감이 떨어진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당연한 생각이지만 이러한 자동 반사적인 의문은 발로 뛰는 활동가들의 가슴에 세 어절만큼의 비수를 꽂게 되는 것이다. 현재 사람들의 머릿속에 '진주의료원'이라는 단어는 '폐업'과 동의어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어쩌다가 진주의료원 문제는 실제로 끝이 난 것이 아님에도 끝이 난 걸까.

어떠한 정책이든 결정이 이루어지고 나면 일정의 갈등이 생겨날 수 있다. '님비와 핌피' 중·고등학교 수업에서, 언론에서 수시로 들었던 용어들이다. 이 '지역 이기주의 현상'은 많은 사회 교과서에서 한 꼭지로 발화됐고 '공동체 정신' 같은 위대한 정의도 최근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에서 번번이 설파된 바 있다. 사실 일상에서는 쓰이지 않는 용어들이지만 우리 머릿속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

그런데 진주의료원 사태는 우리 머릿속에서 그려오던 그러한 종류의 갈등과는 수준이 다른 갈등이다. 진주의료원 강제폐업은 그 흔한 집단 간의 가치 충돌이 아니다. 도정의 효율성을 위한 결단과 모두가 잘 살자는 공공성의 마음의 충돌이 아니란 것이다. 이는 바로 사욕과 공공성의 충돌이다. 정치인 홍준표 지사는 보수의 아이콘이 되어 대권주자로 떠오르기 바라며 그 발판 마련을 위해 소위 이미지 정치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평소 해온 언론 플레이도 이미지 정치의 하나다.

한 사회 지배집단의 언어가 넘쳐흐르는 미디어가 주류인 사회에서 우리들의 의식 세계는 필연적으로 지배집단의 사고방식으로 채워지게 되어있다. 홍 지사의 언어는 물 흐르듯 흐르는 우리의 사고 흐름에 댐을 건설해버렸다. 우리는 그의 언어를 너무도 성실히 내면화해버렸다.

꽤 많은 사람이 공공의료원이 사라질 상황인데도 홍 지사의 행위들을 잘했다며 칭찬하는 기이한 장면을 목격하곤 한다. 이런 기현상은 바로 프레임 정치의 소산이다. 기성 미디어 속에서 강자의 거악은 여과 없이 반영되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 약자는 잔인한 언어로 조롱당한다. 이 상황을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2년간 지배 이데올로기 언어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안 의료원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그는 성공적으로 목적을 달성해가고 있다.

이종관.jpg
그러나 현재 도민들이 진주의료원 재개원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 청구 서명을 받기 위해 발로 뛰고 있다. 청구인 수는 경남 도민의 5%가 되어야 하는데 현재 수임인 신고 준비 및 신고자만 해도 4000여 명이다. 다시금 진주의료원 의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