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 진해 정의회관 이영훈 관장

10여 년 전 일이다. 이른바 K-1을 중심으로 한 이종격투기 열풍이 전국에 불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의 UFC 같은 종합격투기와는 궤가 달랐다.

종합격투기가 타격과 그라운드가 포함된 것이라면 K-1을 중심으로 한 그것은 서 있는 상태에서 주먹이나 발로 상대를 가격하는 행위로만 자웅을 겨루는 흔히 입식타격기라 불린다.

K-1이 한창 흥행몰이를 할 때 그 인기는 UFC 이상이었다. 그러나 K-1대회사 몰락과 함께 입식타격에 대한 관심은 날로 줄어들었다. 이제는 침체할 대로 침체한 국내 입식타격 시장 속에 그 부활을 꿈꾸며 지역에서 매년 꾸준하게 대회를 열고 열심히 후진 양성이 매진하는 이가 있다고 해 만났다.

진해 정의회관 이영훈 관장. 그는 진해에서 입식타격 전문 체육관을 운영하며 지난 2007년부터는 중소규모 입식타격 대회(브랜드 명 KBC·Korea Best Championship)를 열어 지역에 이 운동을 홍보·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종합격투기를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입식타격 전문인으로서 이 운동이 종합격투기보다 배우고, 보는 것에 있어 더 재미있고 박진감 넘친다는 생각은 예부터 변함이 없습니다."

이영훈 관장은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났다. 젊은 한때 방황기를 보내다 지인을 따라 통영까지 오게 된 이 관장은 가구 배달과 막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머나 먼 타향살이. 정 붙일 곳 하나 없는 통영에서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덩치도 크고 다혈질인 제가 돈도 얼마 벌지 못하는데다 일도 너무 힘들고, 특히 고향 생각에 매일 밤 창문에 기대어 눈물을 흘릴 때가 많았다니까요."

이 관장의 허한 마음을 잡아 준 것은 운동이었다. "22살에 격투기 체육관인 통영 정의관에 들어갔어요. 타향에 홀로 선 외톨이인 저에게 이곳은 운동 공간이자 새로운 커뮤니티였죠." 처음 접하는 운동이었으나 어려서부터 많은 무술을 배워서인지 어렵지 않게 적응했다. 덕분에 입관 3개월 만에 첫 시합을 나가 무릎 니킥으로 KO승을 따냈다.

이영훈(왼쪽) 관장과 그의 제자 김상재 선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두천 기자

지난 2002년 7월 은퇴 경기를 할 때까지 그는 모두 36전 34승 1무 1패 호성적을 냈다.

체육관은 통영에서 사범 생활을 하던 중 지난 2000년 즈음 스승인 정진우 관장 권유로 진해 한 합기도 도장을 넘겨받아 시작했다. 어려운 살림에 짜장면 값도 아껴가며 열심히 일했다. K-1열풍이 반짝했으나 체육관이 크게 흥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사업 마인드가 있어 진해역 앞에서 덕산으로 최근 석동으로 옮겨가며 그 규모를 키웠다.

KBC대회는 입식타격 부활을 위한 그의 열정이 만든 산물이다. "이 운동이 다시 흥하려면 많은 사람 관심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좋은 선수 육성과 대회를 지속해야한다는 신념 때문이죠. 특히 이 운동 자체가 호신과 몸 관리 등 사람들에게 좋은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대회가 있으면 선수 대진부터 경기장 이벤트, 퍼포먼스까지 선수와 관중 친화적으로 꾸미려 노력한다.

"결국 대회는 좋은 선수와 박진감 넘치는 경기, 이를 즐기는 관중 3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그래서 매년 작지만 알찬 대회를 만드려 노력하죠." 이 열정 탓에 한번 대회를 치르면 개인 돈 수백 만 원 나가는 건 예사가 됐다. 후진 양성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애제자 김상재 선수가 있다. 47전 경력의 베테랑인 김 선수는 지난 2013년 제4회 인천 실내·무도(武道) 아시아 경기대회 '무에이'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는 한국 국가대표팀 유일한 금메달이었다. 고교 2학년, 다소 늦은 시기 글러브를 꼈지만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금껏 데뷔전 패배 이후 국내 선수와 시합에 져 본 적이 없고, 격투기 강국 일본 상위 랭커들과 맞붙어도 쉽게 지지 않는 근성을 지녔다.

일본 원정 성적은 텃세에 밀려 그리 좋지 못하다 지난 3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입식격투기대회 '케이스피릿(K-SPIRIT)' 메인이벤트에서 슈퍼밴텀급 챔피언에 올라 실력을 입증했다. 이 관장은 "연습 때 잘 쓰지 않던 플라잉 니킥을 써 이길 때도 있고, 팔꿈치로 상대 안면을 초토화시켜 벨트를 따 내고, 47전이지만 매번 새로운 경기 스타일을 보여줘요. 어디까지 발전할지 모르는 제 인생에 다시없을 정말 훌륭한 제자입니다." 앞으로 K-1급 대회를 여는 것이 목표인 이 관장. 김상재 선수와 함께하는 사제동행으로 그 꿈을 실현할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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