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자 간다] (6) 양산 통도사 서운암

고개를 들 때마다 진해지는 연둣빛에 감탄만 한다. 이 산 저 산 할 것 없다. 깊은 산 속의 봄도 마찬가지다.

양산 영축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통도사에도 봄은 일찍 왔다. 수령 350년의 홍매화인 자장매는 이미 꽃을 한창 피워 고고한 자태를 뽐냈으리라.

매화에 넋을 잃었다면 들꽃에게 소소한 봄을 말해보자.

오는 25일 통도사 산내 암자인 서운암에서 들꽃 축제가 열린다. 서운암은 야생화 도량으로 빼놓을 수 없는 곳. '꽃암자'라고 불릴만했다.

양산 통도사 서운암 곳곳에서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금낭화.
꽃잔디.

축제가 열리기 사흘 전 찾은 서운암은 '윙윙'거리는 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영축산 아래 바람을 받으며 자연 그대로 자라는 들꽃은 두서없이 피어났다. 서운암 주변 20만㎡를 뒤덮는다는 야생화 종류만 100여 종, 수만 포기다. 15년 전 '서운암 들꽃회'가 만들어져 야생화를 심은 것이 들꽃 천지로 변했다. 예로부터 전통 된장으로 유명해 햇볕 잘 드는 곳에 놓인 장독대 5000개 뒤로 노랗고 붉은 꽃잎들이 휘날린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내걸린 연등도 들꽃과 어울린다.

들꽃 향은 진하지 않다. 산바람에 유채꽃처럼 생긴 대청의 향만 간혹이다.

할미꽃과 민들레, 제비꽃, 붓꽃을 보려면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 발도 살펴 내디뎌야 한다.

양산 통도사 서운암.

나태주 시인이 노래한 '풀꽃'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무엇보다 산자락을 둘러싸는 금낭화와 꽃길을 만드는 황매화가 절경을 만든다. 금낭화는 꽃 모양이 여인네들이 치마 속에 넣고 다니던 주머니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내 눈에는 줄기마다 하트가 대롱대롱 매달린 듯하다.

황매화는 다른 들꽃보다 높이 솟았다. 장미과에 속하는데 키가 2m에 달한단다. 내려다보는 들꽃 사이에서 늠름한 자태를 뽐낸다.

황매화.

조팝나무에 내린 하얀 꽃 무리는 벌떼로 가득하다.

서운암은 통도사 입구에서 한참 오르막길이다. 차로 1.7㎞다. 걷는다면 1시간은 족히 걸린다. 서운암에서도 오르는 것을 마다해서는 안 된다. 가장 높이 솟은 장경각에서 내려다보는 통도사는 아찔하다. 연둣빛이 길을 만들었다.

장경각에서는 흙으로 구운 도자기 판에 대장경을 새긴 '16만 대장경'을 볼 수 있다. 성파 스님 주도로 1990년부터 작업해 완성한 것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통도사를 찾았다는 지인의 말처럼 봄을 보러 왔는데 내 마음의 봄은 어디 있나 생각하게 한다. 그렇지, 수행하는 곳이지라고 순간 번뜩인다.

고요한 마음도 잠시. 산새 소리, 흐르는 물소리를 압도하는 낯선 울음이 들린다. 장경각 가는 길 만났던 거위도 잠잠해졌다.

대나무 숲에서 거닐던 공작새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유히 나무에 앉았지만 결코 날개는 보여주지 않는다.

서운암은 주말 들꽃 축제를 앞두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바쁘거나 서두르는 이가 없다. 그래서 돌아갈 길을 걱정하며 일상의 근심만 쌓는 자신이 덧없게 느껴진다.

조팝나무 꽃.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라고 말하는 나태주 시인을 만나고 싶다. 그는 25일 오전 10시 서운암 잔디마당에 서서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문학강연을 한다.

오후에는 서운암에서 시작하는 19암자 순례길을 떠나도 좋겠다.

축제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봄을 찾아가는 길에도 연둣빛 영축산은 그대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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