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중단에는 '소신'주장…1억 원 수수의혹에는 꼬리내려

"어허 참, 어떻게 저렇게 배배 꼬였을까?"

최근 기자실 안팎에서 유행어처럼 자주 듣는 말이다. 대화 도중 조금 비딱하게 말할라치면 후배가 이렇게 흉내를 내 어느새 피식거리게 된다. 지난 8일 경남도의회 본회의장에서 홍준표 지사와 여영국 도의원 간 설전은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못지않게 큰 웃음을 줬다.

본회의 도중 영화 예고편을 본 것을 지적하자 "국회의원처럼 야한 동영상을 본 것도 아니고. 내가 잘했다고 하지 않지만, 굳이 잘못됐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하는 홍 지사의 태도는 당당하기보다 오만해 보였다. 툭하면 "제대로 공부 좀 하고 질문해라"며 도의원을 가르치려 드는 자세는 또 어떤가. 누구에게도 기죽어본 적 없는 태도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지난 15일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홍 지사가 도민에게 사과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나도 모르게 "정말요? 홍 지사가 정말 사과했다고요?"라는 반응이 튀어나왔다. 홍 지사는 그날 아침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에 연루됐다는 것 자체에 도민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홍 지사의 사과는 나에게는 상당히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홍 지사를 직접 만나 이야기해 본 적 없지만, 언론을 통해 그의 언어·말투·표정·자세를 접하면서 평소 궁금한 게 있었다. '홍 지사는 살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해봤을까? 어떨 때 미안한 마음이 들까?'라는 질문을 혼자서 던져보곤 했다.

앞서 지난달 26일 미국 출장 골프 논란과 관련해 홍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려 깊지 못했던 것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한 적 있다. 그러면서 "일과성 해프닝으로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무상급식과 관련을 지어 비난을 하다보니 일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반대진영의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좀 더 사려 깊게 처신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사과가 맞는지, 누구에게 사과한 건지 헷갈렸다. 도민에게? 자신의 찬성진영(보수진영)에게?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내가 부정부패할 사람입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왜 이런 올무에 얽히게 됐는지 그것을 다시 한번 검토해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주 내내 출근길마다 만나는 취재진에게 버럭·짜증·불쾌감·불만을 드러내는 등 평소 스타일이 묻어나왔지만, "국민적 의혹 눈초리"를 의식하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홍 지사는 21일 오후 도의회 임시회 본회의 폐회 직전 신상 발언을 통해 다시 한 번 사과했다. 그는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됐다는 자체만으로 여러분들께 거듭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의연히 대처해서 의원님들 성원에 꼭 보답하겠다"고 했다. 새누리당 도의원들에게 사과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흔들림 없는 도정 수행을 하겠다"며 각계 사퇴 요구는 묵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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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뒤흔들고 있는 무상급식 지원 중단은 홍 지사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갈등을 생산한 측면이 크다. 경남도민과 아이들에게 사과할 줄 모르는 홍 지사가 자신의 부패 연루 의혹에 이렇게 쉽게 사과하는 걸 보니 뜻밖이면서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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