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장님]사천시 사천읍 평화3리 윤혜정 전 이장

사천시 한 마을이 분동되면서 최근까지 19년 동안 마을 대소사를 챙긴 여성 이장이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지난 2월 말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면서 이장직에서 물러난 윤혜정(53) 사천읍 평화3리 전 이장이다. 지난 1996년 12월 15일 34세의 나이로 사천읍 평화3리 이장을 맡은 그녀는 무려 19년 동안 이장 업무를 해 왔다.

남편을 따라 부산에서 사천으로 온 그녀는 애초 이장직을 맡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300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그녀로서는 한빛타워 58가구, 신진타워 73가구, 일반주택 50가구 등 모두 200가구의 마을 대소사를 일일이 챙겨야 하는 마을 이장직은 가당치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이장이란 타이틀이 운명처럼 따라왔다.

그녀가 살던 평화1리에 한빛타워, 신진타워 등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주민 수가 급격힌 늘어 분동될 수밖에 없었다. 분동이 됐으니 이장이 있어야 하는데 정작 이장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보다 못한 그녀는 결국 책임감과 의무감 때문에 꿈에서도 생각지 않았던 이장직을 수락하게 됐다. 사천읍에서는 여성 이장으로서는 최장수이며, 남녀 이장을 통틀어 두 번째 장수 이장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사천시 사천읍 평화3리에서 19년 동안 이장을 맡았던 윤혜정 씨. /장명호 기자

그녀는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라며 손사래를 친다. 다른 사람들이 마치 큰일을 한 것처럼 생색내는 마을청소부터 어려운 이웃돕기 등 각종 봉사활동까지 그녀로서는 이런 일들은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일상화된 일이라는 것이다. 19년 동안 이장을 했지만 자랑거리가 없다는 윤 전 이장. 정말 자랑할 만한 일이 없었을까?

그녀는 지난 2012년 4월 마을회관 겸 경로당을 건립한 것이 19년 동안 이장직 수행 과정에서 최대 최고의 업적이라고 얘기한다. 분동으로 생긴 마을이다 보니 마을 주민들이 모여 회의할 공간도, 노인들이 쉴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경로당 건립은 '먼나라 이야기'였다.

당장 경로당을 만들어야 했다. 그녀는 5년 동안 발에 불이 날 정도로 사천읍사무소와 사천시청을 방문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언제나 '예산이 없다. 다음 기회에'였다.

이런 과정에서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다른 마을에 배정됐던 경남도 예산이 불용처리된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이에 조근도 도의원을 20여 차례 만났다. 조 의원 집 앞에서 1시간 가까이 기다린 적도 있었다. 백방으로 뛰어다녔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결국 그녀는 경로당 건립비 1억 3000만 원을 전액 도비로 확보, 마을주민들의 사랑방인 마을회관 겸 경로당을 건립했다.

그녀가 19년 동안 이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두 명의 아들과 남편의 적극적인 외조 때문이었다. 특히 40여 년간 전기계통에서 밥을 먹고 산 남편의 외조는 밤낮이 없었다. 이웃주민들이 전기와 관련해 문의를 하면 언제든지 달려갔던 남편이었다. 그런 까닭에 마을에서는 남편을 일러 전기 해결사로 통했다.

그녀는 이장직을 수행하는 것은 책임감이라고 한다. 돈 욕심을 내는 사람은 절대 이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돈이 아니라 신념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19년 동안 이장을 할 수 있었다고 그녀는 당당히 얘기한다. 실제 이장의 한 달치 월급은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그녀가 처음 이장으로서 받은 월급은 20만 원(사천시 12만 원, 농협 8만 원)이었다가 지금은 36만 원(사천시 24만 원, 농협 12만 원)으로 올랐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그녀는 누가 봐도 이장이었다. 사천읍사무소 직원들도 '천생 이장'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더는 이장을 하고 싶지 않단다. 큰아들이 운영하는 전기도매점에서 잡일이나 거들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이는 19년 동안 머리에 썼던 감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윤 전 이장은 여성들에게 한 번쯤 이장직을 맡아보라고 권하고 싶단다. 노인들 건강을 챙기려 집집이 기웃거려야 하고, 모자가구, 부자가구도 방문해야 하는 등 이장 일이 생각보다 많지만, 이웃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는 등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좋은 경험이라고 말한다.

김자호 사천읍장은 "마을 일을 정말 잘했다. 주민 한 사람 한 사람 챙기는 것은 물론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앞장서는 이장이었다. 그런 그녀가 다른 마을로 이사가면서 이장직을 놓게 돼 안타깝다. 주민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빨리 이장으로 복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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