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열전] (18) 김진옥 창원시청 검도 감독

지난해 경남 검도는 모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제주에서 열린 전국체전에서 고등부와 대학부가 우승하면서 종합 2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한 웃음 뒤 쓰디쓴 웃음이 함께했던 이가 있다. 바로 경남검도회 부회장이자 창원시청 검도부 김진옥(56) 감독이다.

김 감독이 이끄는 창원시청은 1회전에서 탈락해 일찌감치 짐을 쌌다. 김 감독은 "검도 부회장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감독으로는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면서 "일반부가 조금만 더 성적을 내줬으면 종합 우승도 할 수 있었는데 많이 아쉽다"는 속내를 밝혔다.

김 감독은 지역뿐 아니라 전국에서도 검도인들에겐 유명 인사다.

지난 1994년부터 2009년까지 노키아TMC 검도부를 이끌었고, 노키아TMC 해체 후엔 마산시청과 창원시청 지도자까지 줄곧 맡고 있다. 지도자 경력만 20년이 훌쩍 넘었다. 김 감독 아래 성장한 선수 가운데 현직 지도자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김진옥 창원시청 검도 감독은 1994년부터 2009년까지 노키아 TMC 검도부를 이끌었고, 노키아TMC 해체 후엔 마산시청과 창원시청 지도자까지 줄곧 맡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숱한 제자를 배출한 김 감독은 아직도 매일 아침 현역 선수와 함께 땀을 흘린다.

검도복장을 다 착용하고서 실업팀 현역 선수들과 맞대결을 펼칠 만큼 검도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그는 "솔직히 나이가 들면서 체력은 많이 떨어졌지만, 힘이 다하는 날까지 후배들과 대련을 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했다.

진주가 고향인 김 감독의 검도와 인연은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감독은 초등학교 재학 시절 야구선수로 짧게 활약했다. 하지만 중학교 입학과 함께 자연스럽게 운동과 인연을 끊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굣길에 어디선가 들리는 힘찬 구령에 뭔가에 홀린 듯 그 골목으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김 감독 또래의 학생들이 검도를 배우는 검도장이었다.

"검도를 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멋있던지 한참을 바라본 것 같아요. 부모님께 다시 운동을 하고 싶다는 말을 못하겠더군요. 그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을 끝낸 뒤 발길을 돌리는데 많이 아쉽더라고요."

한 번 뇌리에 강하게 각인된 '검도'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공부로 진주동명고에 입학했고, 꿈처럼 동명고에는 창단 2년 맞은 신생 검도부가 있었다.

검도부 신입회원 모집에 누구보다 먼저 신청을 한 뒤 부모님께 승낙을 받았고 정식회원이 된 그는 수업을 마친 뒤에는 늘 목검 한 자루를 들고 훈련했다.

김 감독은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마룻바닥에서 검도를 하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운동화 신고 목검 한 자루로 검도 기본기를 익혔고 훈련이 끝나면 동기, 선배들과 함께 축구와 농구도 했다. 재미 삼아 한 축구와 농구였는데 덕분에 체력적인 면에서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검도를 배운 지 불과 4개월 만에 출전한 전국체전 예선에서 김 감독은 자신보다 뛰어난 기량을 지닌 선수와 무승부를 거둬 팀이 전국체전에 나가는 데 기여를 했다.

춘계중고연맹전을 비롯한 각종 대회에서 개인전 수상을 했던 그는 경상대 검도부에 진학했고 1학년 때 마지막 주자로 나설 만큼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김 감독은 대학 2년 때 전국체전 단체전에서 3위에 올랐고 1979년 경상대를 단체전 우승으로 이끌었다.

대학과 군 제대 후 1986년부터 5년간 체육교사로 잠시 외도한 그는 미국에서 2년의 세월을 보낸 뒤 1993년부터 경남검도회 전무이사를 맡았고 이듬해 노키아TMC가 도내 검도부 실업팀으로 창단하면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노키아를 맡은 뒤 팀은 승승장구했다. 노키아는 해마다 단체전과 개인전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 덕에 국가대표 선수도 3명이 배출됐다.

"노키아라는 기업이 잘나가면서 선수들도 좋은 환경에서 훈련을 했다"는 김 감독은 훈련량도 중요하지만 검도라는 무예에 대한 기본을 가장 중시한다.

김 감독은 오전, 오후에 집중적으로 강도 높은 훈련을 진행한다. 하지만 김 감독은 '검도는 무술이 아니라 무예'라는 생각을 늘 지니고 있다. 때문에 그는 선수들에게 평정심과 의연함을 갖출 것을 항상 요구한다. 그가 스승에게서 받은 가르침이자 그의 지도철학이다. 제아무리 빼어난 실력을 지녔어도 인성이 좋은 선수가 아니면 애정을 쏟지 않는다.

검도부의 전성시대는 기업이 불경기를 타면서 함께 끝났다. 더불어 좋은 기량을 지닌 선수들이 특채 경찰이 되면서 성적은 점차 곤두박질쳤다.

성적이 떨어지고 회사에서는 검도부의 존폐를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 김 감독은 희생을 감수하며 자신의 월급을 회사에 위임했다. 대신, 선수 한 명을 더 쓰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감독은 "노키아 대표이사가 교체되고 외국인 대표이사가 오면서 검도부가 큰 위기를 맞았다. 본사에서도 모르는 운동부고 선수들이 사원으로 돼 있다 보니 난감한 상황이 됐다"면서 "유럽에서는 스키, F-1과 같은 스포츠를 후원하는데 국내 검도부 지원을 못 한다는 말에 아쉽고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그 일이 있은 뒤로 그는 당시 마산시체육회, 마산시의회, 김해시의회, 김해시체육회 등과 물밑접촉을 하면서 팀 창단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낮에는 선수들을 지도하고 밤이면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마산시청, 지금의 창원시청이다.

우여곡절을 겪은 창원시청에는 김 감독과 7명의 선수 등 총 8명이 함께 한다. 팀의 에이스는 세계선수권대회 3위 입상자인 김태현이다.

창원시청 주장 김태현은 각종 대회마다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준 경남 검도의 희망으로 2012년 국제대회 첫 출전이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오르며 빼어난 실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올해 김태현이 정든 검도계를 떠날지도 모른다.

"올해 검도에서 총 10명의 특채 경찰을 뽑는데 팀에서는 태현이를 포함한 3명의 선수가 지원을 했어요. 팀으로 볼 때 이 선수들을 붙잡아야 하는데 검도선수보다 경찰이라는 직업이 더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으니 감독의 욕심을 앞세울 순 없죠. 선수들이 더 좋은 곳으로 둥지를 옮긴다면 검도 선배, 선생으로서 더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늘 웃음을 잃지 않고 팀을 위해 개인을 포기할 줄 아는 김 감독도 멋쩍은 웃음을 띨 때가 있다. 팀이 처한 상황 이야기가 나올 때다.

창원시청 검도부는 훈련장이 없어 마산 가포고 체육관에서 고등부 선수들과 함께 훈련한다. 실업팀으로서 고등부에 더부살이를 하는 꼴이다. 그래도 선수들이 열심히 훈련해주는 모습에 위안을 삼는 김 감독이다.

"학생 선수들과 시청 선수들이 함께 훈련하니 좋은 점도 있지만 아쉬운 점도 있어요. 그래도 열악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훈련해주는 내 제자들이 예뻐요. 다행히 도민체전을 앞두고 가포고 마룻바닥이 새로이 깔렸고 앞으로 더 좋은 성적 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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