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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 꿀빵 있다면 하동엔 '찰빵'있다

[강소농을 찾아서] (90) 하동 '복을만드는사람들' 조은우 대표

하청일 기자 haha@idomin.com 2015년 04월 20일 월요일

하루 종일 봄을 찾아 다녔으나 보지 못했네. 짚신이 닳도록 먼 산 구름 덮인 곳까지 헤맸네. 지쳐 돌아오니 창 앞 매화 향기 미소가 가득. 봄은 이미 그 가지에 매달려 있었네.' 사무실 앞에서 작자 미상의 중국 사람이 썼다는 글귀와 마주했다. 그리고 그 글 밑에 다음 글이 있었다. '봄을 행복으로 바꿔 읽어보세요.'

주인장의 재치가 돋보이는 글이었다. 그러고 보니 하동 들녘과 딱 어울리는 글이기도 했다. 한 사람이 작업장 문을 열고 나온다. 하동군 하동읍 매화골먹점길 9번지에서 하동찰빵을 굽는 '복을만드는사람들'의 조은우(36) 대표다.

◇먹거리 특산품 만들자 '복을만드는사람들' 설립 = 30대의 젊은 사람이 어떻게 먹거리 사업 생각을 했을까? 궁금한 것들을 연이어 물었다. 조 대표는 "하동이 유명 관광지인데 통영꿀빵이나 경주빵 같은 먹거리가 없는 것에 착안했습니다. 관광특산품으로 개발하면 성공할 것 같았죠." 아이디어가 참 기발했다.

조 대표가 하동찰빵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달 전인 2014년 10월이었다. 하지만 처음엔 하동 주민이나 관광객 모두 '하동찰빵'에 대한 인식이 없어 호응이 별로였다. 그래서 두 번째 상품 '하동찰호떡'을 내놓았다.

'하동찰빵'을 손으로 빚는 조은우 대표. 하동의 대표 농특산물인 녹차와 딸기, 검정깨, 단호박 등으로 색깔을 낸 찰빵이 먹음직스럽다. /김구연 기자 sajin@

"찰빵이란 이름이 생소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새로 개발한 제품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호떡'으로 하기로 마음막고 '하동찰호떡'을 내놓았는데 히트를 쳤습니다. 덕택에 찰빵도 덩달아 알려지게 됐죠. 여세를 몰아 '하동크림치즈호떡'도 개발했습니다."

◇'빵인 듯 빵 아닌 떡 같은 빵' SNS 소문 매출 급성장 = 그런데 찰빵을 보니 빵이라고 하기보다 떡에 가까울 듯 싶다. 조 대표는 "떡 같지만 분명히 빵입니다. 빵인데 떡 같은 질감을 냈기 때문이죠. 전분성분이 풍부한 카사바와 쌀로 만든 빵입니다."

판매량이 어떨까? "저를 포함해 여섯 명이 열심히 빵을 만드는데 대부분 수작업이라 한계가 있습니다. 다른 부재료를 제외하고 떡쌀로 매일 30∼40㎏ 정도 소비합니다."

선물용으로 많이 팔리는데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 동안 1억 6000만 원어치를 팔아 매월 5000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단다. 초기 판매량치고는 대단하다.

조은우 대표가 도농기원 이영미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듣고 있다.

"홍보를 별로 하지 않았는데 카카오스토리 등에서 급속도로 퍼지더군요. 우체국 쇼핑몰을 통한 것도 있지만 화개장터에서 가장 많이 판매됩니다. 화개장터 상인들이 찰빵과 호떡을 가져가 판매하는데 인기가 좋네요."

조 대표는 요즘 즐거운 고민거리가 생겼다고 한다. 체인점 개설 전화를 자주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 대표는 정중히 거절하고 있다.

"체인점 문의는 많지만 아직 미완의 상태입니다. 인테리어라든지 상품판매시스템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내년 봄쯤 화개장터 매장을 리모델링해 체계화된 시스템을 갖출 계획입니다. 프랜차이즈는 그 이후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설탕을 줄여 시럽이 흘러내리지 않는 찰호떡.

◇20대에 맛본 사업 대박·쪽박 = 나이에 맞지 않게 굉장히 신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침착함이 남다른 이유가 있을까?

진주가 고향인 조 대표는 전문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지만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공부를 열심히 못했단다. 많은 아르바이트 경험이 졸업 후 사업을 하는 바탕이 됐고, 27세 때인 2006년 고깃집을 차렸다.

"아무 준비 없이 고깃집을 열었습니다. 그게 성공할 리가 없었죠. 그냥 망했습니다. 이후 직장생활을 잠시 했는데 여전히 고깃집에 미련이 남더군요. 그래서 진주 평거동에서 '화씨화로'라는 고깃집을 다시 열었습니다." 조 대표는 이번엔 나름 준비를 했다. 서울서 벤치마킹도 했다. 그게 2008년이었다.

"화씨화로를 차려 돈을 제법 벌었습니다. 체인점도 냈죠. 이후 꽃집도 하고 고기출장뷔페도 차려 통영 펜션 등지에 고기를 납품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저것 참 많이 했는데 돈은 고깃집을 해서 벌었지 나머지는 모두 재미가 없었습니다."

조 대표는 돈을 좀 벌고 나니 다른 생각이 들었단다. 서울에서 사업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2009년 겨울 기어코 서울에서 죽집을 열었다. 병원 인근에 내면 성공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죽집은 실패였다. 결국 쫄딱 망해 진주 고깃집까지 처분해야 했다.

"그러나 죽집을 하면서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죽집 손님들 중 젊은 엄마들이 이유식을 많이 찾는다는 것을 알았죠. 그래서 이유식 사업에 눈을 돌렸고, 그때 하동과 인연이 닿았습니다."

2012년 하동이 고향인 후배와 하동에서 '에코맘 산골이유식'을 차렸고 사업은 적중했다. 불과 1∼2년 만에 연매출 10억 원이 넘는 회사로 키웠다.

그런데 왜 잘나가던 사업을 두고 또다시 '하동찰빵'을 만들었을까? 조 대표는 "동업을 한다는 것이 장점도 많았지만 '둘 다 어려워질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 다른 사업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빠져나왔습니다." 남다른 신중함은 이런 이력에서 나왔다.

◇서울 '무명식당' 납품 이어 세계시장 넘봐 = 조 대표는 화개장터를 생각하면 답답할 때가 잦다. 먹거리 장터여야 하는데 상품이 다양하지 않고 약초장터가 되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래서 다양한 음식이 개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깨알 같은 자랑을 좀 할게요. 제과제빵 자격증이 있는 직원에다 제 디자인 실력을 합치면 금방 새로운 아이디어가 상품으로 탄생합니다. 지금은 찰빵과 찰호떡이 주력 상품이지만 조만간 아이스크림 등 다른 간식거리도 개발할 겁니다."

최근엔 서울을 중심으로 인기 있는 프랜차이즈 '무명식당'에 남품을 하게 됐단다. 1차로 딸기호떡을 비롯해 녹차, 단호박, 검은깨, 일반호떡 등 500만 원어치 상당을 보냈다. 무명식당은 전국 각지에서 공수한 엄선된 건강 식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5일에는 경남도가 미국 LA 슈퍼 바이어 9명을 초청했는데 그 자리에 제가 하동찰빵과 찰호떡을 소개했습니다. 그 자리서 납품계약은 못했지만 바이어들 반응이 좋아 샘플을 미국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남들은 평생 한 번도 겪지 못할 수도 있는 사업 실패와 성공의 경험들. 그런 것을 20대에 체험한 조 대표는 이제 하동찰빵과 찰호떡으로 하동을 넘어 전국은 물론 세계시장까지 넘본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가 사무실 입구에 쓴 글귀를 다시 읽어본다. 이번엔 봄 대신 '성공'이란 단어를 넣어서…. '하루 종일 성공을 찾아 다녔으나 보지 못했네. 짚신이 닳도록 먼 산 구름 덮인 곳까지 헤맸네. 지쳐 돌아오니 창 앞 매화 향기 미소가 가득. 성공은 이미 그 가지에 매달려 있었네.' 마치 조 대표가 자신에게 거는 주문처럼 느껴졌다.

<추천 이유>

◇경남농업기술원 강소농기술지원단 가공 전문가 이영미 = '복을만드는사람들' 조은우 대표는 귀농 3년 차로 강소농과 벤처농업인협회에 가입해 각종 교육과 벤치마킹을 통해 습득한 노하우로 차별화된 제품을 생산하는 사람입니다. 100% 국내산 원료만 사용하고 국내 최초 즉석오색씨앗호떡, 인공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안심간식제품과 냉동상태의 2~3분 간편 조리법, 3무(무방부제, 무MSG, 무색소)로 제품을 개발해 직접 만들고 판매하는 등 건강식품 생산으로 농업 부가가치를 크게 창출하는 진정한 강소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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