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성완종 리스트 파문 일주일
2008년 '박연차 리스트'수사 때 "표적수사 주장은 난센스"
2012년 경남도지사 취임사 "비리는 경중 막론하고 엄벌"
'이완구 청문회'논란 때 "세상에 비밀은 없다"

"나쁜 짓 하지 않고 돈 먹지 않으면 처벌받거나 오해받을 이유가 없다. 자기 당 처벌받는다고 표적수사 운운하는 것 적절하지 않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지난 2008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에 했던 말이다. 홍 지사는 당시 여·야 정치권 전방위 로비사건인 '박연차 리스트' 검찰 수사에 대해 "대한민국을 세탁기에 넣고 돌려야 한다", "대한민국은 봄맞이 대청소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표적수사 주장을 '난센스'라고 일축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숨지기 전 청와대 전·현 비서실장 3명과 국무총리, 홍 지사를 비롯한 새누리당 정치인 등 8명 이름을 적은 메모와 돈을 줬다는 증언이 대한민국을 뒤흔든 '성완종 리스트' 정국에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사람은 자신이 뱉은 말에 발목을 잡히는 일을 겪기도 한다. 특히 공직자와 정치인은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홍 지사는 "나는 돈과 여자로부터 자유롭다"고 공언해왔다. 그러나 성 전 회장이 지난 2011년 한나라당 당 대표 선거 때 1억 원을 홍 지사 측에 줬다는 폭로로 검찰 수사를 받을 처지다.

'성완종 리스트'에 올라 1억 원 수수 의혹에 휩싸인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6일 오전 출근길에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홍 지사는 정치인과 선배 검사를 줄줄이 엮어 넣은 슬롯머신 수사를 해 '모래시계 검사'로 불렸고, 정치에 입문할 때도 그 덕을 봤다. 지난 2011년 당 대표 선거 때 "홍준표는 검사 시절 정의로운 모래시계 검사였다. 이제 홍준표가 나서서 대한민국을 깨끗하게 정리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정치인 가운데 부정부패, 각종 비리에 대해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실체 없는 의혹 제기로 '폭로의 대가'라는 부정적인 인상도 줬고, 거친 말로 막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는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경남도지사로 정치 재개를 하면서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웠다. 2012년 보궐선거에 당선한 홍 지사는 취임사에서 "비리는 경중을 막론하고 엄벌하겠다"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깨끗한 도정을 만들어 도민 여러분께 긍지와 자긍심을 돌려드리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수장이 금품수수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돼 '깨끗한 도지사' 약속은 빛이 바랬다.

그는 간부회의 때 수시로 부패로부터 완벽한 공직 기강을 강조해왔다. 지난 2013년 10월 실·국·원장회의 때 "최근 일부 시·군, 사업소 직원이 뇌물수수 혐의로 사법기관에 구속되는 등 공무원의 부패행위가 수시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어 우리 도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 지난해 9월 회의 때는 "공직자는 칼날 위에서 걷는 것과 같다"고 했었다. 이 말 또한 '부메랑'이 됐다.

홍 지사 금품수수 의혹은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인 중에서 전달자 특정 등 1억 원 수수 정황이 가장 구체적이다. 연일 기자들이 출근길에 진을 치고, 언론에 이름이 거명되는 상황이 못마땅하겠지만 성 전 회장 '폭로'로 '저격'을 당한 셈이다.

홍 지사는 본인은 돈을 받지 않았다고 부인하면서 '표적'이 됐다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구체적인 정황을 뒷받침하는 언론보도에 대해 "어이없다. 어처구니없다. 소설이다"며 맞서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나는 부정부패할 사람이 아니다"고 했고, 16일 출근길에는 기자들에게 "메모에 등장한 사람은 모두 청탁을 거절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는 자신은 부정한 청탁을 들어주지 않은 '깨끗한 사람'이라는 논리다.

부패 척결을 강조했던 홍 지사가 이번 사건에 휩싸이면서 과거 발언과 글은 현재와 묘하게 대비된다. 홍 지사는 안대희·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 이완구 총리 후보자도 청문회에서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자 지난 2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내가 공직 후보자가 돼 인사청문 대상이 되면 과연 어떤 의혹이 제기될까 자문해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자문이 '성완종 리스트'로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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