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철,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도 오르기에 알맞은 산이 작대산(649m)이다.
능선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데 왼쪽에서부터 앞봉.중봉.뒷봉.상봉(양미재 건너 천주산쪽)이라 해서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올망졸망 잇달아 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어휴 참 오르기 버거운 산이겠군” 할 것이다.
왜냐, 산마루가 하나만 있을 때는 골짜기를 따라 치고 올라가면 되지만 여러 봉우리를 죽 이어 밟으려면 아무래도 능선을 타야 하겠기 때문이다. 능선은 원래부터가 아래위 굴곡이 커서 사람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봉우리의 오르내림이 크지 않기 때문에, 그리 많은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이를테면 중봉이 638m인데 뒤이어 나오는 가장 높은 뒷봉이 10m 가량밖에 높지 않은 648m이다.
그러니 10분 정도 골짜기를 타고 오른 다음 2시간 넘게 능선을 따라 걸어도 그리 버겁지 않다. 오히려 쌀쌀한 날씨에 찌들려 모자라기 쉬운 운동량을 제대로 벌충할 수 있어 좋다.
게다가 능선을 걷는 재미는 여느 산 못지않다. 말하자면 발아래 오른편 왼편으로 집들과 골짜기와 바위와 숲들, 그리고 층층이 앉아 있는 논밭 두렁을 내려다보는 재미가 줄곧 이어진다.
한편으로는 진영.창원 쪽이 눈에 들어오고 고개를 돌리면 마산 쪽 풍경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어쩌다 눈길을 멀리 던지면 도시 가까운 곳인데도 산이 첩첩이 둘러쳐져 있어 새삼스런 느낌을 준다.
작대산을 오르는 산길은 모두 세 가지.
마산에서 창녕.대구 쪽으로 빠지는 5번 국도를 타로가다 칠원면 소재지에서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급하게 꺾어드는 초입의 덕곡 마을 뒤편에서 시작하는 길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 무기 마을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 길이 있고, 세 번째는 돈담 마을과 산정 마을을 지나 죽 이어지는 콘크리트 길 끝에 앉아 있는 구고사 바로 아래에서 시작하는 길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구고사에서 시작하는 등산길이다. 집안 식구들끼리 간다면 여기서 양미재를 거쳐 500.400m 고지인 두 봉우리를 지나 앞서 말한 정상인 뒷봉에 올랐다가 되밟아 나오면 알맞을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도 좋다면, 산마루에 오른 다음 돌아 나오기보다는 북서쪽으로 계속 나가 중봉을 지나서 왼편으로 꺾어져 무기마을로 내려와도 되고 내친 김에 앞봉까지 올랐다가 덕곡마을로 내려서도 된다.
구고사에서 시작하는 길이 좋은 것은 바라보는 풍경이 견줄 데 없이 좋기 때문이다. 구고사까지 가는 콘크리트길은 구절양장 못지 않게 꼬불꼬불하다. 지난 번 내린 눈이 길 따라 군데군데 녹지 않고 그대로 있는데, 다락논과 과수원.묵정밭이 제멋대로 어울려 나름대로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또 눈 아래 들어오는 돈담저수지는, 지금 물이 많이 빠졌는데도 검푸른 빛깔로 눈을 시리게 하는 게 제대로 물이 차 있을 때는 대단하겠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저수지 따라 기슭이 넓게 퍼져 있는데다 논들도 다닥다닥 붙어 있어 이른 봄철 식구들끼리 대소쿠리 하나 들고 쑥이나 냉이.달래.씀바귀 따위를 캐는 재미도 맛볼 수 있다.




△가볼만한 곳-칠원면 무기마을 ‘연당’

작대산 가는 길인 함안군 칠원면 무기마을에는 경남뿐 아니라 전국에서 보기 드문 오래 된 인공 연못이 하나 있는데 모양이 아주 그럴듯하다.
무기마을은 상주 주씨가 대대로 살아왔던 곳으로, 300여 년 전 무기연당의 주인 또한 상주 주씨 집안의 국담 주재성(1681~1743)이다.
무기마을 뒤쪽에 자리잡은 연당의 또다른 이름은 국담(菊潭). 영조 4년(1728년) 일어난 이인좌.정희량의 난을 진압하는 데 힘을 보탠 의병장이기도 한 주재성의 호이다.
긴 네모꼴로 생긴 연당 둘레에는 산에서 캐온 돌로 2단 석축을 쌓아 편안한 느낌을 더해주고 있다. 못 가운데는 봉래산을 떠올리게 하는 조산을 세우고 이름을 양심대라 했다고 한다.
휘어진 소나무 너머로는 풍욕루(風浴樓)가 있다. 댓돌을 높이 쌓은 위에다 3칸 크기로 지었는데, 옛적 양반들이 자연을 집안에다 끌어들여 놓고 노닥거리기는 좋았겠다 싶다.
경남에는 이밖에도 두 군데 더 인공 연못이 있다. 함안군 함안면의 이수정(무진정)과 창녕군 영산면의 연지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집 담장 바깥에 있는 것이어서 집안에다 만든 무기연당과는 쓰임새가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연당 대문간에는 왼쪽에 충신이 났다는 국담의 현판, 오른쪽에는 효자가 났다는 아들 주도복의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또 들머리를 지나면 왼쪽에 국담의 장남인 주도복이 서재로 썼던 건물이 감은재라는 현판을 달고 서 있다.
효자가 났다는 것은 예나 이제나 기려야 할 테지만, 충신이 났다는 것은 다르게 비춰볼 수도 있겠다 싶다.
당시는 당쟁이 극심한 때였다. 이인좌.정희량은 영조를 왕좌에서 쫓아내고 소현세자의 증손(밀풍군)을 왕으로 세워야 한다는 명분이었고 주재성은 그 반대편에 서서 진압군이 됐다. 결국 진 쪽은 멸문지화를 입고 족보에서조차 지워졌으며 이긴 쪽에 힘을 보탠 이는 죽은 뒤에 충신 정려를 받아 대대손손 기림을 받았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 처지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되레 고통스런 난리였을 뿐이다. 게다가 왕조의 성을 갈아치우는 역성(易姓)을 둘러싼 쟁탈도 아니었으니, 천한 백성들만 까닭 없이 죽어났을 것이다.
당시 군량미 500석을 대었다니, 양반 집안에다 떵떵거리는 부잣집이 아니라면 제대로 충성도 할 수 없는 시절이었던 것이다.


△찾아가는 길

마산에서 간다면 아주 간단하다. 마산에서 내서를 지나 국도 5호선을 따라 곧장 달리면 15분도 채 안돼 칠원면 소재지가 나온다. 여기서 함안 무기연당을 알리는 표지판 있는 데서 크게 오른쪽으로 꺾어들면 된다.
하지만 이 표지판은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를 정도로 숨어 있어서, 길 가다 왼쪽에 아바나모텔과 칠원가든 간판이 보이면 자동차 속도를 줄이고 2차로로 빼내야 고생을 덜하게 된다.
덕곡마을과 무기마을이 차례대로 나오고 돈담 저수지 지나 길 끝에 구고사가 매달려 있다. ‘돌가루’를 취급하는 레미콘 공장이 많아 덩치 큰 차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이 길은 군데군데 콘크리트로 돼 있어 덜컹거리는 정도가 조금 큰 편이다.
버스편은 마산합성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6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13분, 14분마다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우성여객 (055) 295-3111). 마산.창원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이 산을 찾아 간다면 자가용보다는 버스로 가는 게 여러 모로 편하겠다.
만약 함안군 가야읍에서 간다면 가야 정류소에서 칠원면 운동리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오전 9시 30분, 오후 2시와 5시 30분 세 번밖에 없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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