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봄빛 품은 죽계천 따라 고려 정취 숨쉬나니

[2015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 (1) 경북 영주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2015년 04월 15일 수요일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이 지원하고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와 경남도민일보가 함께 진행하는 '2015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은 올해로 4년째다. 습지의 아름다움과 유용함을 사람의 삶과 역사·문화 현장에서 찾아보고 이를 누리는 한편 널리 알리는 데 취지가 있다. 습지 또는 생태가 저 홀로 떨어져서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오랜 옛날부터 사람과 어울리면서 공존해 왔음을 발품으로 체득하는 과정이라 하겠다.

올해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 첫 걸음은 경남도민일보 자유로운광고 등을 통해 함께할 이를 모은 다음 지난 8일 경북 영주 부석사와 소수서원으로 떠났다. 부석사와 소수서원은 널리 알려져 있는, 그래서 누구나 한 번쯤은 찾았음직한 명승고적이다. 고등학생 수학여행도 많아서 우리가 찾은 이 날도 부석사와 소수서원은 경기도 용인 태성고 학생들로 말미암아 활기가 돋아나 있었다. 어쩔거나, 세월호 참사를 우리는 아직도 대부분 떨치지 못했다. 수학여행 온 이 태성고 아이들 밝은 웃음소리와 활달한 발걸음에서조차 그 짙은 슬픔과 아픔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니….

소수서원 앞 죽계천 징검다리에서 일행 가운데 한 명이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있다.

그래도 봄날은 꽃으로 피고 봄산은 새 빛으로 물든다. 진입로 양쪽 은행나무도 어김없이 새싹을 틔웠고 풀꽃도 군데군데 내려앉아 종종거리는데 산수유나 목련 같은 나무들도 저마다 자기 색깔 꽃대를 곳곳에서 머금었다. 사람들은 꽃그늘 아래로 스며들어 삽상한 가운데 그 풍치를 즐긴다. 수학여행 온 아이들은 선생님과 더불어 아니면 자기들끼리 사진으로 추억을 만든다. 우리 일행이 사진 좀 찍어달라면 그 또한 즐겁게 찍어준다.

이번 생태·역사기행을 준비하면서 대부분 한두 차례는 다녀온 곳이기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짐작했더랬다. 그래서 안내문에는 부석사가 무량수전 본존불이 현세(現世)를 관장하는 석가모니가 아니고 아미타불인 까닭과 아래위로 오르내리면서 바라보고 쳐다보는 전망이 뛰어난 절간이라는 사실만 간단하게 일렀다. 그런데 올라오는 길에 누군가가 "배흘림기둥이 어디 있어요?" 물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다들 한 번씩 들렀다 해도 그 밀도가 색채가 한결같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이들에게는 좀 중복이 되더라도 하나하나 필요한 만큼은 알려드려야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량수전을 받치는 기둥이 모두 배흘림기둥이다, 가운데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다, 밋밋한 1자 기둥은 아래위로 짓눌려 가운데가 오히려 홀쭉하게 가늘어 보이는 현상을 보완하기 위해서라 한다, 그런 미묘한 차이까지 알아차리는 고려 시대 건축가들의 미적 감각이 배흘림기둥에 담겨 있는 셈이다 등등 얘기했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서.

또, 무량수전을 두고 고려 건축의 소박·검소함을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모든 고려 건축이 그랬겠느냐, 수도 개경에 있던 많은 절간과 궁궐 건물들이 모두 수수·검박했겠느냐, 아니고 화려찬란했으리라고 봐야 맞지 않겠느냐, 부석사가 있는 영주는 지금도 당시도 산간오지였다, 무량수전 검박함은 이런 데에 원인이 있지 않겠느냐, 오히려 무량수전 건축의 대단함은 산간오지라는 입지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개경서 멀리 떨어진 비수도권 내륙 건축기술인데도 600년 넘게 버티는 무량수전을 만들 정도로 수준이 높았던 것이다….

선묘낭자 전설이 어린 부석(뜬돌)을 마주하고 서서.

이 밖에 선묘각·조사당과 부석(뜬돌)까지 둘러본 일행은 무량수전 앞과 안양루 어귀에서 비록 궂은 날씨에나마 소백산 굽이굽이 여울져 나가는 눈맛을 누린 다음, 셋씩 모여 커다란 하나를 이루는 돌계단 세 모둠(이렇게 아홉이 된다)을 되밟아 내려갔다. 돌계단에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의 화엄종 진리가 들어 있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장쾌한 느낌이 대단하다. 커다란 자연석들이 직각을 이루며 쌓여 있는 사이로 잔돌을 박아 안정되게 했고 커다란 자연석도 가만 보면 전혀 손대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쪼개고 다듬은 자취가 나타난다. 자연스러움을 위해 가미한 인공이다.

안양문 아래 자목련을 뒤에 두고 수학여행 온 아이들한테 부탁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한 바퀴 절집을 거닌 다음 버스를 세워놓은 데 종점식당에 들러 안동간고등어와 함께 차려진 청국장비빔밥을 맛나게 버무렸다.

이제 소수서원이다.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고려 시대 안향 선생을 위해 신재 주세붕이 세웠는데 그 뒤 퇴계 이황이 명종임금으로부터 소수서원이라 새겨진 편액을 내려받음으로써 최초 사액서원이 됐다. 서원은 사립 중·고등교육기관이고(향교는 공립) 임금 편액을 받으면 조세·군역 따위가 면제되니 요즘으로 치면 여러 특혜를 받는 특수목적고 또는 자립형사립고쯤이 되겠다.

소수서원이 여기 들어선 까닭은 절반 이상이 죽계천과 그 둘레 풍광에 있다. 앞을 흐르는 죽계천은 고려 선비 안축이 '죽계별곡'을 지어 노래했을 정도로 아름답다. 이런 아름다움 덕분에 처음 숙수사라는 절간이 들어섰을 테고 절간이 몽골 침략으로 스러진 뒤에는 소수서원 주춧돌을 놓는 데 안성맞춤 자리였겠다. 옛 절터에 들어선 서원이다 보니 불교 관련 유물들도 당간지주를 비롯해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원 주춧돌이나 계단돌로 재활용된 석탑·석등 부재도 있다.

역사상 최초 특목고를 자기 자락으로 끌어들인 죽계천은 핏빛 역사도 안았다. 조카 단종의 임금 자리를 찬탈한 세조는 자기 동생 금성대군과 그 일파를 이 상류에서 처단했다. 순흥(지금 영주)으로 유배온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 등과 함께 1456년 단종 복위를 꾀한 때문이었다. 당시 흘린 피는 10리를 흐른 끝에 소수서원 앞자락에 멈춰 '피끝'을 이뤘다는데 그 원한을 풀기 위해 주세붕이 경(敬)이라 붉게 새긴 바위가 거기 있다.

말하자면 죽계천이 거기 있었기에 사람들이 모여 들어 마을도 이루고 절간이나 서원을 세워 자연과 어울렸고 그러다 보니 세속의 지위와 권한을 둘러싼 다툼으로 말미암은 인간의 잔인한 역사도 자취를 더하게 된 셈이다. 그러나 소수서원은 이제 관광지다.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면서 옛사람들 정취를 누리면 그만이다.

그 자락에 조성된 선비촌은 따뜻한 남쪽에서 온 일행들한테는 색달라보였다. 영주 이곳저곳에 있는 옛집들을 재현한 건물들인데 살펴보면 하나같이 똘똘 뭉쳐 있다. 남쪽 옛집은 죽 늘어서 흩어져 있다면 여기 옛집들은 바깥담 안쪽에 한 번 더 담장을 둘렀다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안채·사랑채·곳간·마구간 등이 빈틈없이 모여 있다. 겨울이 매우 추운 기후 때문일 텐데, 이 또한 인간이 자연과 어떤 식으로 마주하고 어울리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하겠다.

/글·사진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신문 구독을 하지 않고도
경남도민일보를 응원하는 방법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http://www.idomi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