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아너소사이어티] (3) (주)현대정밀 오춘길 대표

어린 나이에 학비를 벌고자 '아이스케키' 장사를 했던 소년은 57년이 지난 지금 건실한 중소기업의 대표가 돼 있다. ㈜현대정밀 오춘길(71) 대표. 그는 지난 2011년 1월에는 1억 5000만 원 기부를 약정, 도내 8번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당당히 이름을 새겼다. 지금은 회원 50명의 경남아너소사이어티 클럽 회장직도 맡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는 또 다른 소년 '오춘길'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낮에는 아이스케키 팔고 밤에는 공부 = 오춘길 대표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추곡리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3남 3녀 중 다섯째. 항상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아버지는 막내아들 학교 보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마친 오 대표는 창원 부림시장에서 노점을 하던 큰 매형을 도우며 공부하겠다고 고집해 당시 중앙중학교 야간에 다닐 수 있었다. 그는 낮에 아이스케키 장사를 해서 스스로 학비를 벌었다.

"지금 불종거리 코아제과 자리가 당시 석빙고 아이스케키 공장이었는데, 여기서 아이스케키 떼다가 큰 통을 메고 온종일 시내 골목을 누비면서 팔았어요. 겨울에는 국화빵 장사를 했고….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겠어요. 참 많이 울었어요."

역시 학비 탓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지만 그의 열정은 가난도 막지 못했다.

"촌에서 1년 농사를 도왔어요. 그러다 이듬해 3월 초쯤 문을 걸어 잠그고 단식투쟁에 들어갔죠. 허허. 사흘쯤 지나니 둘째 형이 사정을 해서 아버지가 마음을 돌리시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마산공고에 들어가게 됐죠."

경남아너소사이어티 클럽 회장을 맡고 있는 현대정밀 오춘길 대표. /김구연 기자 sajin@

◇한 달도 빠짐없이 46년간 저축 = 마산공고에 입학한 오 대표는 3학년이 된 어느 날 진로를 고민하는 그에게 교장 선생님이 육군사관학교라는 길을 제시하면서 군인의 꿈을 품게 된다.

"교장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육사 1차 필기시험에는 합격했는데 2차 신체검사에서 혈압이 높아 떨어졌어요. 하는 수 없이 그해 육군보병학교 갑종간부 후보생으로 합격해 교육받고 이듬해 66년에 소위로 입관했어요. 그렇게 13년간 군복무를 했습니다."

꿈꾸었던 장군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는 그 기간이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두 번째 계기를 마련해줬다고 말했다. 바로 저축습관이 몸에 밴 시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월급 8650원을 받아 6000원은 저금했는데…. 1년 뒤에 찾으니 거의 10만 원이더라고. 부모님에게 다 드렸는데 그 돈으로 논을 한 마지기 사신 거라. 논이 없어 그토록 고생을 했는데 그렇게 쉽게 논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저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팍 들더라고. 그래서 저축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그 습관이 살면서 기업 경영하면서 아주 좋은 토양이 된 거죠."

그렇게 한 달도 거르지 않고 46년을 꾸준히 저축한 그는 2013년 제50회 저축의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게 된다.

오춘길 대표가 핵심 생산품인 굴착기용 압축스프링을 살펴보고 있다. /유은상 기자

◇패기 하나만 믿고 도전한 제조업 = 1978년 군생활을 마무리하고 일명 '민간인' 신분이 된 그는 군생활하면서 밴 패기 덕에 어렵지 않게 창업을 결정한다. 하지만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불과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나니 자금이 바닥나더라고요. 기술력 없이 시작하다 보니 힘들고 앞날도 불투명하고 해서 접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죽을 힘을 다해봐야 후회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도전을 했어요. 그때부터는 기술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직접 기술을 익히고, 기술개발에 온 힘을 기울였어요."

그렇게 전력을 기울이자 조금씩 문은 열렸다. "80년에 현대양행과 거래를 시작하게 됐어요. 이 회사는 93년에 삼성중공업에 인수되고, 다시 97년 IMF 외환위기 때 지금의 볼보건설기계코리아에 인수됐고…. 36년 외길, 중장비 쪽 기계가공에 올인하면서 한우물을 판 결과죠.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는지 몰라요."

현재 현대정밀은 굴착기 등 건설중장비에 들어가는 압축 스프링과 지게차 조향장치가 핵심 생산품이다.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압축 스프링은 볼보건설기계에 독점공급하고 있다. 조향장치는 지게차를 만드는 클라크에 역시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을 바탕으로 신포동에서 시작한 공장은 95년 창원 봉암공단으로 확장 이전했다가 2006년 지금의 팔룡동 공장으로 옮겨왔다. 그뿐만 아니라 2005년 중국 상하이에 중국공장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두 공장을 합해 직원은 100여 명, 연간 매출은 300억 원에 이른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해에는 창원 진북산단에 120억 원을 투자해 1만 8000㎡ 공장을 건립했다. 오 대표는 사업다각화를 위해 이 공장에서 새로운 사업 추진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현대정밀은 네 가지가 없는 경영으로 유명하다. 첫째 사장실이 없다. 두 번째 비정규직이 한 명도 없다. 세 번째 직원의 정년이 없다. 마지막으로 이 회사에는 청소 직원이 없다.

"우리 회사 자신이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집중력과 체력이 있다면 절대로 해고하지 않아요. 평균 20∼25년 일하고 있어요. 이분들이 가진 노하우가 우리 회사 기술력의 핵심입니다. 지금은 말 안 해도 직원 스스로 문제점을 찾고 개선하고 그래요. 그러니 보배 같은 사람들이죠."

이런 이유로 오 대표는 직원 복지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05년부터 대학생·고교생 자녀를 둔 직원에게 연간 각각 600만 원과 200만 원씩을 장학금으로 주고 있다. 2007년부터는 출산 장려금도 지원하고 있다. 또 2011년에는 직원복지법인을 설립, 최초 2억 원을 출연했다. 지난해까지 4억 5000만 원을 적립, 직원 주택구입 자금과 생활안정자금 등에 무이자로 대출해 주고 있다.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면 뭐합니까 = 오 대표는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면 일정 부분 사회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아너소사이어티 약정 이전에도 이를 실천해 왔다. 그는 자신의 월급에서 20%, 법인매출액에서 1% 정도를 꾸준히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매년 기부에 사용하는 돈은 평균 3억 원가량이다.

10년간 서마산교회 노인대학에 매달 100만 원 기부, 2012년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경남미래교육재단에 1억 원 전달, 세계선교사업회에 5년간 매년 2000만 원, 경남 K팝 경연대회에 지원금 2000만 원, 육군본부 부사관 역량강화사업에 5년간 매년 3000만 원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일흔 살이 넘은 오 대표. 그 역시 남은 인생의 여백을 사회 환원과 봉사로 채울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2∼3년 안에 장학재단 설립이나 사학 설립 계획을 세우고 있다.

"딸, 아들 이렇게 자식이 둘입니다. 그나마 아들이 이 회사에서 잘하고 있으니 가업은 아들에게 승계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재산 대부분은 사회에 되돌려 줄 생각입니다. 죽어서 자식들이 신사임당 '마빡'에 붙여주면 뭐합니까. 가져갈 것도 아니고. 앞에도 말했지만 제가 어렵게 공부를 한 때문인지 후진양성 쪽에 관심이 많아요. 장학재단이나 사학을 설립해 은퇴하고 남은 힘을 거기에 쏟으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하며 보낼 생각입니다."

그런데 최근 오 대표는 자신이 기부했을 때보다 더 보람찬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이 또한 조만간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전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회사 부사장인데 조만간 기부약정을 할 거라고 해요. 아들이 저를 귀감으로 삼고 있다는 것보다 고맙고 더 보람있는 일이 있겠습니까. 이런 일은 손자까지 계속해서 대를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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