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미래상 탓에 헤어지기로 한 3년 연인…마지막 보던 날 교통사고에 "다시 시작하자"

권춘현(50)·김순자(48) 부부(진주시 평거동)는 25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있었다. 그런데 둘 다 이런 생각을 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두 사람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1990년대 초, 둘은 진주 '놀이판 큰들'에서 처음 만났다. 춘현 씨는 군 제대 후 사회문화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이곳에서 활동했다. 유치원 교사였던 순자 씨는 풍물패 활동을 하면서 이곳에 발걸음 했다.

그렇게 안면을 익히던 즈음, 춘현 씨가 먼저 마음을 빼앗겼다.

"추석을 앞두고 이 사람이 활동가들에게 양말을 선물하더군요. 제 눈에는 그 모습이 참 예뻐 보이더군요. 고맙기도 했고요. 편지를 썼습니다.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관심 있다는 뉘앙스를 담았죠."

편지로 마음을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둘은 서로의 생각과 가치를 알아가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후 춘현 씨는 '형평'이라는 출판사를 차렸다. 둘 관계가 좀 더 진지해진 시기이기도 하다. 미래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춘현 씨는 경제적 자립, 한 가정의 가장, 이러한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앞으로 준비할 생각도 없었다. 반면 순자 씨는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들 수밖에 없었다. 조심스레 평범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늘 춘현 씨 결론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쪽이었다.

권춘현·김순자 부부는 지금 전통 천연염색으로 베개·손수건·이불 같은 것을 만들어 판매한다.

힘든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3년이라는 시간을 뒤로한 채 관계를 정리하기로 했다. 그래도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마지막으로 만났다.

"산청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둘이 오토바이로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택시가 오토바이를 치면서 아스팔트에 나뒹굴었습니다. 다행히 둘 다 헬멧을 쓰고 있었기에 머리는 다치지 않았지만, 옷이 찢어지고 여기저기 상처를 입었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둘은 병원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택시는 현장에서 도망가 버렸다. 하지만 찾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서로에 대한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운명'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춘현 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저 때문에 이 사람이 다친 거잖아요. 예기치 않은 사고가 계기를 만들었고, 책임질 수 있는 명분을 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병원에 누워있는데 아프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느님 고맙습니다'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이 마음을 지금 전해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말했습니다. '하늘의 뜻인 것 같다. 다시 한 번 당신과 시작하고 싶다.' 아내도 그런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서로 마음이 같았던 거죠."

둘은 남들 하는 예물·예단 같은 건 애초부터 생략한 채, 있는 그대로인 상황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단칸방에서 시작했다. 남들은 초라하게 볼지 몰라도 둘은 당당했기에 행복은 저절로 따라왔다.

결혼 후 춘현 씨는 애초 생각대로 사회를 향한 시선을 잃지 않았다. 그래도 출판사 같은 것을 운영하며 나름 가장 역할도 잊지 않으려 했다. 물론 아내 고생을 모르지 않는다. 그 속에서 힘든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지금껏 지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0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두 사람에게는 오토바이 사고 흉터가 남아있다. 그것도 같은 손 같은 위치에 있다. 두 사람은 예전 이야기를 하게 되면 서로의 손부터 먼저 본다. 다시 맺어준 소중한 흔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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