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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아픔 감싸안고 흐르는 강, 무심히 봄은 피는데

[남강오백리] (22) 진주시 진성면 월강교∼지수면 용봉리

권영란 기자 kyr65@idomin.com 2015년 04월 10일 금요일

막다른 길이다. 진주시 대곡면 대곡리에 이르자 이곳 대곡제 끝자락부터는 물길이 절벽을 타고 흘러간다.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은 더 이상 없었다. 이곳 강 건너는 지수면 압사리, 용봉리이다. 물길 가까이를 따라 그곳으로 가려면 다시 되돌아가 대곡면과 진성면을 잇는 월강교를 건너야 한다. 지난 21회에서 물길을 따라 내려갔던 대곡면 대곡리에서 월강교를 건너가야 물길을 따라 계속 이어갈 수 있다. 그렇게 건넌 길 위에서는 참담한 현실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기억하며 걷는 사제단도 만나고, 경남 최초로 유상급식 전환을 거부하며 학부모들이 솥단지를 걸고 나선 지수초등학교도 돌아봤다.

물빛이 더욱 짙어진 봄날 남강가에는 버드나무 새 잎들이 새파랗게 차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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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터 자리엔 월강교가 놓이고

대곡리에서 1007번 도로로 나와 월강교(月江橋)를 건넌다. 진성면 가진리다. 가진리는 진성면 최북단에 있어 남강을 경계로 북으로는 대곡면과 동으로는 사봉면을 접하고 있다. 북쪽 가좌마을에는 가좌나루터가 있었다. 남강을 건너 대곡면 가정리를 잇는 뱃길이었지만 지금의 월강교가 생기면서 사라졌다.

가좌마을에서 강 쪽으로 난 들을 가로질러 가진제(嘉津提)에 올랐다. 물길은 보이지 않고 강변 유역 습지가 펼쳐진다. 군데군데 대숲이 있는 걸로 보아 이곳 유역이 예전에는 마을이었던 걸로 짐작된다. 물길을 따라 동쪽으로 길이 2.8km에 이르는 가진제는 낙동강연안개발사업으로1995년 말에 완공되었다. 당시 가진리 평야 농경지 50% 이상이 편입되었다고 한다.

가진리 남쪽은 진동마을이다. 강쪽으로는 '밴나들'이라 하여 나룻배가 있었지만 역시 월강교가 생기면서 사라졌다. 주민들은 1500년대에는 남강 물길이 마을 앞 용두산 밑으로 흘렀으나 지금은 대곡면 마진리 앞으로 변천되었다고 말한다. 마을 남쪽 평구들 일대에는 1998년에 준공한 경남학생교육센터로 경남과학고, 체육고와 과학교육관, 학생박물관 등이 있다.

이곳은 남강과 반성천이 합류하는 곳이다. 길들은 때로는 물길과 멀리 떨어졌다가 또 금방 물길과 가까이 닿았다가 때로는 끊어졌다. 그래서 때로는 물길과는 멀리 떨어져 한참을 돌아 강가에 닿기도 했다.

길에서 만난 생명평화 도보순례단

길에서 노란 깃발을 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걷는 제2차 생명평화 도보순례' 행렬을 만났다. 남강으로 합류하는 반성천을 따라 진성면 소재지로 가는 길이었다. 이들은 김현호, 천제욱, 박순진 신부 외 7인으로 구성된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이하 정의평화사제단)이었다.

"6일 새벽 765㎸ 송전탑 싸움 현장인 밀양 부북면에서 출발했어요.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진도 팽목항까지 350km를 걷는 중입니다. 15일 세월호 1주기 추모제가 열리는데 그때까지 도착해야지요."

정의평화사제단은 팽목항까지 가면서 지나는 지역마다 근현대 한국역사의 현장을 찾아 방문하고 또 가엾은 영혼들을 위한 안식의 기도를 올렸다. 이날도 정의평화사제단은 문산읍 진성고개 가늘골을 찾아갈 것이라고 했다. 김현호 신부는 "1951년 당시 보도연맹원에 대한 민간인학살지역으로 알고 있다"며 "그곳에 들러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위한 연도를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진성고개는 오래전부터 옛 2번 국도에서 매우 험한 고개로 겨울에 눈이 조금이라도 내리면 시외버스조차 쉽사리 지나기 힘든 고갯길이다. 그곳 초입에 가늘골이 있었다.

가늘골을 찾은 사제단은 희생자들의 영혼을 인도하는 연도를 올렸다. 천제욱 신부의 기도문이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진심으로 백성을 섬기기를 구하오니 겸손을 실천하고 양심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가늘골 입구 과수원에서는 배꽃이 하얗게 피고 있었다. 때마침 봄 볕살도 좋았다. 사제단은 '기억하겠습니다' '세월호를 인양하라' 노란 깃발을 달고 다시 진성 고갯길을 내려가 문산읍으로 그리고 진주 시내 방향으로 걸어갔다. 가늘골 아래에는 중촌천이 흐른다. 이 샛강은 반성천으로 흐르고 반성천은 다시 남강으로 이어지고 있다.

남강과 합류하는 진성천 근처에서 만난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밀양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걷는 제2차 생명평화도보순례' 중이다. 진성고개 가늘골 민간인학살현장에서 연도를 올리고 나오는 길이다.

'솥단지 급식' 지수초교가 있다

진성면 소재지로 돌아와 다시 사봉면 마성리에 닿았다. 봄 농사를 마친 들판은 며칠 동안 내린 비에 촉촉하게 젖어있다. 이곳 들을 지나기 전 서쪽 강가에는 나루터가 있었다 한다. '뒤산'이라 불린 이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대곡 마진을 드나들었으나 월강교가 놓이고 육로가 생기면서 도선은 없어졌다. 이곳을 지나쳐 지수면 압사리로 가는 길에 금곡리 들이 들어온다. 평갱이들 또는 곡식이 돈이라고 하여 금평이라 불린 이곳은 강변 유역 밭들이 대부분 하우스 농사로 변했듯이 이곳 또한 대규모의 비닐하우스로 꽉 차 있다.

지수면 압사리 송정마을에 닿았다. 마을 동쪽에는 평평한 솔밭이 있다. 마을 앞에 비교적 크고 넓은 들이 있는데 주민 대다수가 비닐하우스 작물 재배를 많이 하고 있다. 마을 주변이 황토 지대란다.

"황토 흙이 신발바닥에 붙어가꼬 댕기기가 우찌나 힘들었는지 옛날부터 영감 없이는 살아도 고무장화 없이는 못산다는 이야기가 있구만."

마을 앞에서 만난 아지매는 리어카를 끌고 밭에 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종아리까지 올라온 빨간 장화를 신고 있다.

이 마을에는 지난 1일 경남 유상급식에 반대하며 학부모들이 직접 급식을 하며 전국적으로 화제가 된 지수초등학교가 있다. 또 이곳 지수초교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지수중학교가 있다.

학생 수 다 합쳐서 총 80명밖에 되지 않는 이 두 학교 평범한 학부모들이 이틀 동안 벌인 일은 현재 경남 각 지역으로 퍼져 '유상급식 거부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성난 학부모들이 유상급식에 항의 반대하며 급기야는 도지사 주민소환 서명운동을 하자고 한다.

'학교밥' 때문에 이곳 학부모들은 최대 수익인 하우스 피망농사며 마·우엉농사를 제쳐두고 이른 아침부터 학교에다 솥단지를 걸고 아이들 밥을 했다. 그러고도 밤늦게 복지회관에 모여 '빼앗긴 아이들 밥그릇 되찾기'를 두고 몇 시간이고 의논을 했단다.

지수면 압사리 송정마을에는 경남 유상급식 전환을 최초 거부한 지수초등학교가 있다. 학부모 직접 급식 이틀째인 지난 2일, 5학년 어린이가 짜장밥을 받고 있다.

지수초·중학교 학부모들이 직접 밥을 한 지 이틀째 되던 지난 2일이었다. 첫째날은 학교에 피해를 줄까봐 밖에다 천막을 쳐서 밥을 먹였지만 둘째날에는 갑자기 내려간 기온 탓에 교실에 식탁을 차려야 했다. 옹기종기 자리를 잡은 아이들은 어른들이 왜 이러는지를 알고 있었다.

"급식비가 너무 비싸요. 우리 집은 오빠랑 2명인데…. 안 낼 거예요. 엄마한테 도시락 싸달랬더니 도시락 싸가는 것도 안된다고 했대요."

5학년 예언이와 민정이는 엄마가 준비한 짜장밥을 먹으며 말했다. 자식 둘 다 지수초교에 다닌다는 우원이 엄마는 4월이지만 날씨가 추운데 아이들도 학부모도 고생이라며 안타까움과 분노를 동시에 드러냈다.

"아이들 밥 좀 멕여 공부하자는데 이기 믄 일인지 싶습니더. 온 나라가 무상급식하는데 와 경남만 유상급식한답니꺼? 참말로 딴 데 이사도 못가고…."

애가 셋인데 엄마가 일 나가서 대신 왔다는 4학년 성진이 할머니는 "노령연금 주지 말고 아이들 밥 조라캐라 했는데 그기 아이더라. 노령연금도 받고 애들 밥도 조라해야것다, 이때까지 일하고 세금 낸 게 얼만데"라고 말했다.

지수초·중학교는 5일부터 학부모들이 계속 돈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기쁨이 엄마는 "피망 농사는 이왕 망친 거고 아이들 밥그릇은 지켜야겠다"며 "부모들이 급식비를 모아 학교발전기금으로 내면 거기서 아이들 급식비를 내기로 했다. 아이들이 밥상머리에서 차별을 배우면 안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용봉 모래땅에 우엉 싹 올라오고

지수면 용봉리는 지도상으로 보면 물길이 서북쪽으로 크게 휘돌아가는 곳이다. 땅 모양새가 마치 터지기 직전 방실한 꽃봉오리처럼 둥글다. 아래골, 항복골, 우기미, 동모리, 뱃가, 안계 등 흩어져 있는 작은 마을들을 합친 동네이다. 이곳은 진주 특산품인 마·우엉의 집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몇 년 전부터는 건강식품으로 알려져 각광을 받는 작물이다. 덕분에 이곳 주민들도 강 건너 대곡리 주민들처럼 '짭짤하게 재미를 보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불과 10년도 안된 말이다. 큰물이 들 때마다 잠겨 농사를 다 망쳐버리는 강변 밭에다 해마다 한 해 농사를 준비해야 하는 마음은 이곳 주민들 아니면 알 수가 없단다.

용봉 모래땅에는 우엉 싹도 새파랗게 돋아나고 있다.

압사리에서 강변 유역을 보며 용봉리 입구로 들어서는데 한창 용봉제 공사 중이다. 공사장에서 만난 김배수(55) 씨는 "안계마을까지 해서 길이가 4.2km인데, 이 제방사업은 올해 말이면 끝난다"고 말했다.

"여기 있는 땅들도 전부 밭으로 바꾸고 있습니더. 논은 인자 땅값이 똥값이니까. 논이 한 평 4000원이면 밭은 4만 원인 기라예. 땅주인들이 전부 밭으로 바꾸는 거지예."

김 씨의 말처럼 용봉들에는 땅을 싹 밀어서 밭으로 바꾸는 작업이 더러 눈에 띄었다.

용봉 동지마을을 지나면 기러기가 많이 내려앉는다는 안계마을이다. 마을 앞쪽으로 남강이 흐르고 있다. 강 건너 서북쪽은 의령군 화정면이다. 그곳으로 건너던 안계나루도 용봉나루도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마을길 중간쯤 '뱃가'라는 표지판이 있다. 뱃가는 안계 안에 있는 자연마을로 배가 드나들던 곳이다. 뻔덕이라고도 한다.

남강 하류지역인 진주시 지수면 용봉마을 앞. 봄기운이 가득하다.

뱃가 동쪽으로 이어진 용봉로를 따라가니 강둑은 파헤쳐져 있고 트럭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용봉제 공사현장이 여기까지였다. 공사 차량이 먼지를 일으키며 다니든 말든 강변유역 모래톱은 곱게 드러누워 있고 물버들 가지마다 새 잎이 차오르고 있다. 평평하고 너른 들에는 이랑마다 모래땅을 뚫고 우엉 싹이 새파랗게 돋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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