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장님]거제 고현동 23통 제산 7마을 황미영 통장

"주민들이 저를 만나면 행복해진다고 해서 정말 즐겁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03년부터 13년째 거제시 고현동 23통 제산 7마을(고려6차 아파트) 통장직을 맡은 황미영(48) 씨.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같이 부대끼며 생활하길 즐기는 그는 타고난 통장이다.

고향이 함안인 그는 1994년 남편과 함께 거제로 왔다. 1997년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아파트 건물은 등기상 문제가 없었지만 땅에 근저당이 설정된 것을 알고는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업체 측에 근저당 설정을 풀어달라고 요구했고, 이때부터 그의 진가가 발휘됐다.

아파트 부녀회장을 맡아달라는 주민들 요구에 부녀회장이 됐고, 어떤 일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척척 해내면서 통장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그는 새로운 전입자가 생기면 먼저 다가간다. 통장이라면 통장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는 자비로 태극기 함을 구매해 전입자를 찾아간다고 한다. 물론 (아파트 기금으로 산) 태극기와 함께 가져간다. 처음엔 태극기를 게양하라는 방송을 해도 잘 실천되지 않자 그 이유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태극기는 물론 태극기 함도 없기 때문인 걸 알고 난 후부터 태극기와 태극기 함을 들고 전입자에게 가기 시작했단다.

아파트 주민, 특히 아이들과 여성들의 안전을 위해 화질이 좋지 않던 CCTV를 고화질로 바꿨다. 주민들은 밤에도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돼 많이 좋아했다고 한다.

주민들 안전을 위한 노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아파트 통로 출입문을 보안시스템을 갖춘 문으로 바꾸면서 더 안전해졌다.

통장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03년 9월 태풍 매미 때 물이 나오지 않고 전기마저 끊겼는데, 기름을 직접 사서 자가 발전기를 돌려 전기가 들어오고 물이 나오자 주민들로부터 "고생했다",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때였다고 한다.

마음이 아팠던 기억도 있다. 아파트 앞에 서희아파트 건축이 시작되면서 일조권과 조망권 문제로 피해를 본다는 주민들과 아파트가 들어오면서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는 주민들 간 갈등을 해결할 때는 주민들 견해차가 워낙 커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때는 욕(?)도 많이 들으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회상했다.

통장으로서 역할뿐만 아니라 그의 봉사활동은 남달랐다. 통장을 하면서 그는 고현동 아동여성안전지킴이단 회장을 맡아 아동과 여성들 안전을 위한 봉사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 부모 가정과 조손가정 아이들에게 밥도 먹이고, 어버이날 행사를 통해서는 카네이션을 직접 달아드리기도 했고, 1년에 두 번은 나들이도 함께 다니며 말벗이 돼 주기도 했다.

다문화가족을 위해 명절 때 쓸 음식을 만드는 방법도 가르쳐주고, 사회복지시설 노인들을 위해 생일잔치를 열어주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2011년 친정 엄마 팔순기념으로 캄보디아 여행을 가서 현지 주민들을 위해 자비를 들여 우물을 파서 아이들 머리도 감기고, 밥도 먹였던 기억은 지금도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이란다. 그 인연으로 통장협의회 해외연수 때 캄보디아에 다시 가서 통장협의회 이름으로 우물을 파주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캄보디아를 두 번 더 다녀왔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옷과 신발, 그리고 학용품까지 나눠주면서 그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황 통장은 "주민들이 불편하다고 말을 하면 즉각 처리해주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통장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주민을 사랑하는 마음과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통장으로서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과 서로 도와가며 소통하다 보면 주민들 협조는 반드시 따라온다"면서 "우리 아파트를 살기 좋은 아파트로 만들도록 앞으로도 더 열심히 발로 뛰는 통장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30대에 여성 통장이 돼 50대를 바라보는 황 통장. 그의 바람대로 23통이 사랑이 넘치는 살기 좋은 마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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