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89) 거제 동부면 승주농장 부영희 사장

습기를 잔뜩 머금은 구름이 아침부터 낮게 깔리더니 거제대교를 지나 동부면에 접어들 무렵 기어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거제시 동부면 부춘리 266-7 '이유 있는 버섯농장, 거제 승주농장'이다.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곳으로 알고 왔는데 버섯을 재배하는 시설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 두리번거리니 모자를 쓴 여성이 비닐하우스 뼈대로 지은 막사에서 나와 반갑게 인사한다. 바로 이 농장 여장부 부영희 사장이다. 그런데 제법 연세가 들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 77세인 할머니 사장이다.

"날씨도 궂은데 먼 길을 찾아오느라 고생했습니다. 우선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드세요." 그런데 부 사장이 건네는 차 맛이 특이하다. "맛이 어떻습니까? 바로 우리 농장에서 생산되는 표고버섯을 덖어 우려낸 차입니다. 일단 우리 집에 왔으니 차도 한 잔 마시고, 방금 딴 싱싱한 버섯 맛을 봐야 이야기가 됩니다."

◇야산 경사지 참나무 원목에서 자라는 '백화고' = 하지만 부 사장이 건네는 차만 계속 마실 수는 없었다. 비는 점점 강하게 뿌리고, 돌아갈 길도 멀다. 마음이 바빴다. 그런 마음을 알고 부 사장이 일어선다. "자 이제 산으로 갑시다."

순간 놀랐다. 그런데 도착한 산에서 또 한 번 놀랐다. 참나무 원목을 세워둔 곳이 완만한 경사가 있는 야산 노지였기 때문이다. 비나 햇빛, 바람을 막는 시설도 없이 그냥 바람 불면 바람을 맞고, 비가 내리면 비를 맞으며 산 속에서 자라는 자연산 버섯이었다.

"백화고입니다. 버섯 중 최고의 상품으로 알아주는 백화고는 버섯의 갓 부분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그 갈라진 틈으로 흰색을 띤 것을 말하는데 우리 백화고는 자연상태에서 재배해 더 품질이 우수합니다."

부 사장 명함에 '이유 있는 버섯농장'이라고 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버섯 재배에 습기는 생명입니다. 적당한 습기가 있어야 버섯이 잘 자라는데, 우린 자연상태에서 재배하니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농부 같다고나 할까요?"

그래서였다. 왜 이렇게 성장을 멈춘 버섯이 많은지 이상했는데 부 사장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됐다. 그럼에도 새봄을 맞아 성장을 멈춘 어린 표고버섯 옆으로 또 다른 버섯이 피고 있었다.

"아마 오늘 이 비는 막 꽃봉오리처럼 피기 시작한 어린 버섯들에 단비가 되어 줄 것입니다." 부 사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거제 승주농장 부영희(앞) 사장과 아들 유영주 씨가 원목에서 자라는 표고버섯을 살펴보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잘못된 사업, 빈털터리 돼 시댁인 거제로 이사 = 부 사장은 군인인 남편과 함께 40년 동안 강원도 춘천에서 살았다. 남편 유목정(80) 할아버지는 미군 부대에 근무했고, 부 사장은 직장생활을 했단다. 그런데 두 사람이 사업을 시작했다가 뜻대로 되지 않아 빈털터리가 되다시피 했다. 결국 지난 1997년 부부는 남편의 고향인 이곳 거제도 큰집으로 오게 됐고, 부 사장은 평생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버섯농사를 하게 됐다.

"2년 동안 큰집 일을 도왔습니다. 그러고 나니 이젠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고, 내 농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인의 보증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내 3000만 원으로 버섯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버섯농사를 한다는 것이 쉬운 게 아니었다. 최근엔 버섯 효능 등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어느 정도 수익이 나지만 지난 세월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중국산 버섯이 워낙 많이 들어오는데다 국내산은 잘 알아주지 않았다. 배지 사업(균사가 든 톱밥을 성형시켜 버섯을 재배하는 것)도 해봤지만 중국산 배지를 들이기가 마음이 내키지 않아 포기했다. 답은 친환경 무농약 버섯재배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여윳돈 없이 농사를 시작하니 처음엔 이자 갚고 나면 빌린 돈은 그대로였다.

"혼자 산을 오르내리면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누구에게 내 아픔을 이야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만약 그동안 사람과 부대끼는 일을 하며 살았더라면 지금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자연 속에서 수만 그루의 나무들과 사니까 건강을 유지하고, 젊음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을 견디니 무일푼에서 내 이름의 산도 가질 수 있게 됐고, 집도 짓고, 땅도 가지게 됐습니다."

◇매년 1만 봉 버섯재배, 수익은 '마음의 여유' 생긴 것 = 부 사장이 버섯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단연코 동부농협 작목반 반장을 맡았던 것을 꼽았다. 당시 작목반원은 모두 34명이었는데 여자는 부 사장 혼자였단다. 그런 그가 4년 동안 작목반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작목반원들과 다른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작목반을 맡아 맨 처음 한 일이 '이름표'를 갖는 것이었어요. 이름표가 뭡니까? 상품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내보이는 것이지요. 상호를 내고, 명함을 찍는 게 바로 이름표 아닙니까?" 그렇게 반원들을 설득해 9명이 친환경 제품 인증을 받게 됐단다.

부 사장은 하우스 880평, 산지 3000평에서 버섯을 재배한다. 참나무 원목이 1만 봉(개)이다. 현재 8000봉에서 버섯을 생산하며, 매년 새 참나무 2000봉을 준비해 종균을 넣는다. 이렇게 원목에 종균을 넣어 1년 6개월가량 기다려야 버섯이 생산된다. 그러면 이후 5년간 버섯을 딸 수 있단다.

부 사장은 연간 2t 정도 버섯을 생산한다.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것은 모두 생 표고로 판매하고, 자연산은 건조한다. 건조한 상품은 통표고와 썰어서 말린 절편, 가루 2종류(양념용 선식용), 버섯차 등 6가지다.

"연간 5000만 원 매출을 올려 순수익은 2000만 원 정도 됩니다. 하지만 매년 새로운 나무 구입하고 생활비 쓰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지요. 그렇지만 농사를 짓는 덕에 수확물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수익입니다."

◇아들 버섯 농사짓고자 귀농 "미안하면서도 뿌듯" = 부 사장에겐 요즘 즐거움이 하나 생겼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아들이 귀농을 결심하고 열심히 버섯재배 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 유영주(48) 씨는 "내년에 가족 모두 이사를 하고 본격적인 버섯농사를 지을 계획입니다. 지금보다 규모를 키워가면서 열심히 일하면 직장생활보다 낫지 않겠나 싶습니다. 계획을 잘 세워 귀농자금 등을 받아 고효율의 농사를 지어볼 계획입니다. 처음 귀농하면 2~3년은 수확할 것이 없다는데 어머니가 잘 닦은 버섯농사를 물려받으니 나는 귀농이 쉬운 편이죠."

그럼 부 사장은 일선에서 물러나는 걸까? 부 사장은 "이젠 굼벵이를 길러볼 생각입니다. 어차피 버섯을 재배한 참나무는 버립니다. 그런데 이 참나무로 굼벵이를 기르면 또 돈이 됩니다."

부 사장은 작년 굼벵이를 길러 1000만 원 정도 수익을 올렸단다.

'따야 할 시기를 놓쳐버리면 상품으로서 가치가 없는 버섯은 언제 채취해야 하며, 어떻게 말리고, 어떻게 제품을 만드느냐에 따라 수익이 달라진다'라고 여기는 부 사장은 "내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고 자식에게 손 안 벌리겠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다행히 아들이 버섯농사를 잇겠다니 더 바랄 게 없죠. 대부분 부모는 자식은 다른 일 하기를 바라지만 나는 아닙니다. 아들이 이 일을 하겠다고 해 여간 기쁜 게 아닙니다."

77세라는 나이도 잊고 오늘도 산을 오르내리는 부 사장. 버섯농사의 어려움을 어업을 하는 사람과 비교해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표현하는 그는 마음만은 젊은 사람 못지않은 천생 농부였다. 

<추천 이유>

◇이우재 거제시농업기술센터 농업지원담당 = '승주농장' 부영희 대표는 귀농 19년 차로 2011년에 강소농에 가입했습니다. 고령임에도 각종 교육과 체험을 통해 품질 좋은 표고버섯 생산은 물론 차별화된 표고버섯 막걸리 생산과 손쉽게 양념으로 활용할 수 있는 표고버섯가루 생산 등 소비자 관점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들 유영주 씨 또한 어머니 사업을 거들며 안정적인 농장관리로 오늘도 바쁜 나날을 보내며 이웃과 상생해 나가는 대표적인 강소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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