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삐삐 테러'결말은…해피엔딩

45살 동갑내기 이장희·노영희 부부(창원시 마산합포구) 이야기는 19년 전 시작된다.

영희 씨를 비롯한 여자 4명이 커피숍에 모였다. 이 가운데 한 여자가 푸념을 했다. 사연은 이랬다.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가 어느 대학 건축공학과에 다녔다. 그런데 학과 내에서 '이장희'라는 사람만 너무 주목받아 자신의 남자가 상대적으로 묻힌다는 것이었다. 시샘은 곧 엉뚱한 상상으로 연결됐다. '삐삐 음성 테러'였다

"이장희 그놈 삐삐번호를 알고 있거든. 오늘 하루만 너희가 돌아가며 삐삐 음성으로 장난 좀 쳐 줄래?"

의리의 여자들은 모두 동의했다. 시간대별 담당까지 나누었다. 자리에서 헤어진 후 각자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영희 씨는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남자의 삐삐 안내 음성이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이장희입니다.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영희 씨는 이러한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어머나, 아저씨 목소리가 너무 느끼해서 여자들이 절대 연락 안 할 것 같네요~'

결혼 15주년 때 아이들과 함께.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연락해 보니 음성 메시지 멘트가 바뀌어 있었다. 영희 씨는 좀 더 강도 높은 메시지를 남겼다. '쨔샤~ 그렇다고 안내 음성을 바꿔?'

영희 씨는 그렇게 임무를 충실히 마쳤다. 애초 이 부탁을 한 친구에게 전화했다. 그런데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냥 장난으로 한 이야기였는데, 정말로 하면 어떡해."

영희 씨는 그제야 그 남자에 대한 미안함이 몰려왔다. 다시 삐삐 번호를 눌렀다. 남자는 자신의 안내 음성을 삭제해 버린 상태였다. 영희 씨는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사과 메시지를 남겼다.

며칠 후, 영희 씨는 궁금한 마음에 다시 연락했다. 그런데 이런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로 미안하다면 전화번호 남기고 직접 통화합시다.'

영희 씨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곧바로 자신의 연락처를 남겼고, 그렇게 처음으로 전화통화를 했다. 장희 씨가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동갑인 둘은 금세 친구가 되었다. 두어 달 그렇게 전화통화만 하다, 어느 날 밤 장희 씨가 갑작스러운 만남을 제안했다.

'마산 창동 코아양과 앞에서 밤 12시에 만나자. 나오면 얼굴 보는 거고, 안 나오면 앞으로 연락하지 않는 걸로 하자.'

그렇게 둘은 한밤중 얼떨떨한 약속을 했고, 부스스한 차림으로 만나게 됐다. 달콤한 목소리에 익숙해 있던 둘은 실제 모습에서 각자 실망했다.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참 지나서 우연히 다시 연락되면서, 한 번 더 만나기로 했다.

영희 씨는 화장도 짙게 하고 옷도 신경 써서 입고 나갔다. 그랬더니 장희 씨가 몰라보는 눈치였다. 뒤늦게 알아채고서는 "이렇게 미인이었느냐"며 활짝 웃었다. 장희 씨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첫 번째 만남 때와 달리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또 안부 전화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둘은 좀 더 가까워졌다. 어느 날 밤이었다. 장희 씨가 영희 씨 손을 잡았다. 그리고 좀 더 한적한 장소에 있게 되자 뽀뽀까지 했다. 영희 씨는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물었다. 그러자 장희 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별 의미 없이 한 건데."

영희 씨는 그때부터 장희 씨와 선을 그으려 했다. 정작 장희 씨는 그때부터 진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둘은 다른 이성 관계를 모두 정리하고, 결국 연인의 길로 들어섰다.

그렇게 3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그 사이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장희 씨의 이전 이성문제 때문에 영희 씨는 마음 앓이를 해야 했다. 그래도 지금 영희 씨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워낙 다정다감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주변에 여자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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