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친구 따라 진주 극단 '현장'에 몸 담아…이름없던 첫 배역도 행복

지난달 20일 제33회 경상남도연극제가 개막됐다. 창원 진해구민회관과 3·15아트센터에서 진행되는 이번 연극제엔 도내 시·군 지역 극단이 참가해 열띤 경연을 이어가고 있다. 오늘(3일) 열리는 폐막식 때 경연 대상작이 결정된다.

연극제, 그중 경연 소식이 들릴 때마다 창원서부경찰서 경무계 김연식(41) 경위는 몸이 근질거린다. 김 경위 가족 외엔 아는 사람이 드물지만, 사실 그는 고등학교 때 연극판에서 좀 놀아본(?) 사람이다.

"뭐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예. 그냥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우짜다가 극단에 들어가게 됐지예."

진주시 집현면에서 태어난 김 씨는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생이 되자 곧장 시내 학교에 다니게 됐다. 중학교 졸업 후 지금은 경남정보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꾼 진주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이때 어울리던 친구들을 통해 '연극 맛'을 알게 됐다. 친구를 따라 김 씨가 들어간 곳은 1976년 창단해 진주 연극사에 한 획을 그은 '극단 현장'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일겁니더. 연극이 하고 싶어서 극단 현장을 찾아갔지예. 중학교 때부터 연극을 하던 친구나 선배들은 곧잘 하더라고예. 저는 뭐, 이제 시작해서 서툴렀지예. 처음엔 물 주전자 들고 뛰어다니면서 허드렛일을 전담했지예. 꼭 경찰 시보 할 때랑 비슷했지예."

김 씨는 하늘 같은 극단 선배들 뒤를 따라다니며 궂은 일만 했지만 고생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저 보고 배우는 것이 즐거웠을 뿐이다. 특히 김 씨는 많은 선배 가운데 방성진(78) 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방 씨는 1963년 부산KBS에서 아나운서 활동을 시작해 극단 현장의 대표적인 연출가이자 배우로 손꼽힌다. 1976년 극단 현장 창단공연 때 연극 <출발>을 연출하고 또 직접 출연까지 했던 극단 현장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방 선생님 연기 방식이 저하고 딱 맞더라고예. 밀어붙일 때는 과감하게 밀어붙이고, 온화하면서도 저돌적인. 카리스마가 있었다고나 할까예. 방 선생님 한창 현역일 때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서 뿌듯하지예."

1년가량 보고 배우면서 꿈을 키웠던 김 씨는 1991년 여름, 연극 <진주성>에서 배역 하나를 맡게 된다. 이때 그가 맡은 역할은 '포졸1'. 지금은 경찰이 된 김 씨와 사뭇 어울리는 배역이다. 이름도 없는 역할이었지만 자신만의 캐릭터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이 김 씨는 기쁘기만 했다.

극단 현장은 1991년 <진주성>으로 경연을 휩쓸었다. 제9회 경남연극제에선 단체 대상을 받았고, 이어진 제9회 전국연극제에선 단체 우수상을 받았다. 김 씨는 전국연극제 무대에 섰을 때를 회상하면 기분이 남다르다.

"당시 연극제가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는데예.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 했지예. 우리도 경남에서 유명한 배우들하고 연합팀을 꾸려서 무대에 섰었지예. 비록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그런 사람들과 한 무대에 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예. 그래서 긴장보다는 즐겁기만 했습니더."

하지만 기쁨도 잠시. 무대에 섰던 기억은 한여름 밤 꿈처럼 추억거리가 된 지 오래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다 실패한 김 씨는 이후 군대에 가면서 자연스레 연극과 멀어졌다. 경찰이 된 지금도 바쁜 일상에 치여 연극을 보러 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도 김 씨가 연극을 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가족인 아내와 딸 정도나 알까.

"집에서 아내가 가끔 농담을 던집니더. 연극했다고 뻥치고 다니지 말라고. 가족 앞에서 재롱 부리듯 연기하는 흉내를 내는 게 전부입니더. 이젠 뭐 기억도 가물가물하지예."

김 씨는 요즘 연예계나 방송계에 부쩍 관심을 보이는 중학생 딸이 맘에 걸린다. 아버지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저야 뭐…연극을 한다고 돌아다니고 했지만 지금은 또 경찰일 하고 있잖아예. 딸이 적극적으로 하고 싶다는 표현은 안 했지만, 먹고살기 힘드니까 걱정은 되지예. 아빠 마음이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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