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토요 동구밖 생태/역사 교실…통제영은 이순신 장군이? 관성적으로 잘못 새긴 역사 제대로 알려주니 아이들 관심

생태체험

-합천 나무실마을~정양늪생태공원

두산중공업·창원시지역아동센터연합회·사회복지경남공동모금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2015 토요동구밖교실 3월 생태체험 나들이는 지난 28일 합천으로 떠났다. 샘동네·옹달샘·회원한솔·느티나무·어울림 다섯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더불어서였다.

합천은 가야산·황매산처럼 좋은 산이 많다. 저마다 골짜기를 이루고 개울까지 펼쳐보이는 산들이다. 골짜기 개울을 타고 흐르는 물들은 모여서 강을 이룬다. 사람들은 개울과 강줄기를 따라 마을을 만들고 논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이 합천이다. 오늘 나들이는 나물 캐기와 습지 산책이다. 가회면 나무실마을에서 쑥과 달래와 냉이를 캐고 합천읍내 가까운 대양면 정양늪생태공원에서 물 위를 걷고 징검다리를 건넌다.

황매산 자락 모산재 아래 시내를 끼고 들어앉은 나무실마을. 주차장이 널러 좋다. 아이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언덕과 논밭으로 스며든다. 언덕에는 아직 검불이 많고 논밭은 아무것도 심겨 있지 않다. 아이들에게 나물을 캐 본 적이 있느냐 물었더니 딱 한 친구가 손을 든다. 쑥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 손들어 보랬더니 이번에는 셋이다. 옛날 20년 30년 전에는 사람들 삶이 그래도 자연 속에 있었는데 이제는 나물 캐기조차 이렇게 체험을 나와야 하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시절이 이렇다 보니 나물 캐는 방법도 아이들은 모른다. 함께 온 두산중공업 사회봉사단 선생님 가운데서도 젊은 몇몇은 그랬다. 잎을 뜯으면 안 되고 뿌리와 맞닿은 줄기 끄트머리를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 그 아래 흙 속으로 칼을 찔러넣어야 한다.

나물 캐는 아이들. /김훤주 기자

어른 눈으로 보면 쑥이랑 냉이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런데 그게 아이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양지바른 데 수북한 검불을 들추면 무리지어 나타나는 쑥이다. 쑥은 쑥쑥 잘 자란다 해서 쑥이다. 이런 데 쑥은 하야스름한 보풀을 일구며 말끔하게 자라 있다.

쑥 같은 봄나물은 중금속을 잘 빨아들인다고 한다. 중금속은 사람한테 해롭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찻길 가까운 데서 캐는 쑥이 그다지 좋지 않은 까닭이다. 나무실마을은 하루종일 꼽아봐야 지나다니는 자동차가 열 대 안팎이다. 이런 데 봄나물은 거의 보약 수준이겠다.

나물 캐는 아이.

시간이 조금 흐르니까 아이들 나물 찾는 안목이랑 나물 캐는 솜씨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어떤 아이는 나눠준 봉지가 금세 불룩해져 있다. 점심에 때맞춰 불러모았지만 나물 캐는 재미에 맛이 든 아이들은 쉽게 돌아서지 못했다.

어렵사리 돌려세워 한우로 유명한 합천 삼가에서 해인축산식당 불고기정식으로 배를 채운 뒤 정양늪으로 옮겨갔다. 그 들머리에서 제일 많이 나물을 캔 팀을 골라 선물로 '쥐꼬리 장학금'을 건넸다. 그런 다음에는 봄꽃 봄나물 이름 알아보는 시간. 대표선수로는 민들레·산수유·냉이·달래·개불알풀·광대풀·돌나물·꽃다지가 뽑혔다. 저마다 이름표를 붙이고 바닥에 늘어놓은 다음 일정한 시간을 주고 아이들에게 생긴 특징을 보면서 이름을 익히게 했다. 그러고는 이름표를 싹 거둬들이고는 풀·꽃 이름을 적게 했다. 아이들한테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도 다 맞힌 팀이 넷씩이나 됐다.(뒤집어서, 하나 이상 틀린 팀도 열넷이므로 적지 않다.) 가위바위보로 1등을 정해 '쥐꼬리 장학금'을 한 차례 더 전했다.

어쨌거나 봄꽃·봄풀은 하나같이 자그맣다. 봄부터 가을까지 쉴 새 없이 꽃대를 밀어올리는 민들레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같은 민들레라도 이른 봄에 피는 꽃은 낮은포복으로 거의 땅바닥에 붙은 반면 5월 이후 낮은 물론 아침에도 따뜻한 철에는 꽃이 땅 위로 꽤 솟아 있다. 왜 그럴까? 먼저 봄꽃이 낮은 까닭은 공기보다 땅이 따뜻하기 때문이다. 햇볕을 받아 데워진 땅과 가까울수록 꽃을 피우는 데 이로운 것이다. 아이들은 그 어여쁜 봄꽃들이 작은 까닭을 들판에서 눈과 손으로 새겼다.

정양늪 징검다리에서.

마지막으로는 물과 흙이 만나는 습지 정양늪을 거닐었다. 지난해 스러진 마름과 갈대 등은 아직 새 순이 돋지 않았는데 왼편으로 늘어선 물버들에는 새 잎을 머금은 눈들이 솟아나고 있다. 봄은 봄인 듯 아닌 듯할 때가 어쩌면 가장 좋다. 잎으로 활짝 피어나기 전에 누군가 불러주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이 밝은 연둣빛으로 가지를 물들이는 이 때가 어쩌면 봄기운이 가장 잘 느껴지겠다. 덱을 따라 깔깔거리며 오가던 아이들은 끄트머리에서 징검다리를 만나면서 한 번 더 즐거워한다. 연한 물감을 칠한 듯한 버드나무 아래 그늘을 거니는 친구도 있었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체험 소감을 썼다. 

정양늪에서 돌다리를 뛰어다녀서 좋았다거나 나물 캐기를 할 때 처음에는 쑥 모양이나 캐는 방법을 몰랐는데 하다 보니 알게 돼서 많이 캤다는 내용들이었다. 으뜸은 이랬다. "나물을 캐다 가시에 찔렸는데 나물을 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가시에 찔렸을까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찡했다." 이보다 어린 한 친구는 이렇게 적었다. "쑥을 캐니까 재미있고 힘들었다.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힘들게 쑥을 캔다." 즐겁게 놀고, 나물도 캐고, 봄꽃이 작은 까닭도 알고 봄풀 이름도 여럿 새긴 데 더해 엄마 생각 이웃 생각까지 할 수 있었다면 이보다 더한 공부가 어디 있을까. 이런 친구들에게 한 차례 더 '쥐꼬리장학금'이 돌아간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역사탐방

-통영 통제영~당포성~삼덕항

지난 21일 두 번째 역사 탐방은 통영으로 떠났다. 통영 하면 동피랑이나 케이블카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뭐니뭐니 해도 중심은 통제영이다. 통제영이 없었다면 통영이라는 도시도 있을 수 없다. 통제영은 가족 나들이나 체험학습으로 한두 번씩은 다녀올 만한 곳이다. 그러나 그냥 다녀온 것과 제대로 둘러보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제법 멀다.

이번 통영 탐방의 핵심은 통제영 제대로 알기. 통제영이라 하면 다들 이순신 장군을 떠올린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활약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1593년 이순신 장군이 초대 통제사에 임명됐을 당시 통제영은 한산도에 있었다. 7년에 걸친 임진왜란 끝난 뒤에도 통제영은 고성이나 거제로 떠돌았다. 그런 통제영이 지금 자리에 들어선 것은 1603년 제6대 이경준 통제사 시절이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지금 통제영과 이순신 장군이 관련돼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고 물었더니 대부분 손을 들었다. 나머지 손을 들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고 한다. 이렇듯이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통제영과 이순신 장군을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무척 재미있어했다. 돌아오는 길에 쓴 아이들 소감 가운데는 "나는 그동안 통영에 있는 통제영 하면 당연히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서 활약을 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다. 나는 오늘 알게 된 사실을 친구들에게 자랑을 할 것이다. 그러면 내가 무척 유식해 보이겠지" 이렇게 쓴 글이 있었다. 사소하지만 관성적으로 잘못 알기 십상인 한 가지를 제대로 알게 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이렇듯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통제영에서 팀별로 미션 수행을 했더니 조금 힘들어 하기도 했다. 통제영에 나와 있는 문화관광해설사도 문제를 훑어보더니 너무 어렵지 않으냐고 했다. 그래도 다들 열심히 문제를 풀러 돌아다녔다. 마치고 보니까 가장 많이 맞힌 팀이 세 개 틀린 열여섯 문제였다. 점심을 먹고 당포성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이야기를 덧붙였다. "통제영 미션 문제가 조금 어렵게 느껴졌던 친구들도 있었지요? 그런데 왜 그렇게 냈을까요?"

통제영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나라 가장 큰 전통 목조건물 가운데 하나인 세병관 앞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기념 사진을 찍은 다음 바로 옆 십이공방을 들르거나 마당을 한 바퀴 도는 정도에서 그친다. 통제사가 집무를 하고 생활을 했던 운주당·경무당이나 후원, 그리고 주전소(요즘으로 치면 화폐 제작 공장)는 잘 모른다. 미션 문제는 세병관을 중심으로 오른쪽 관아 건물에서 왼쪽 십이공방까지 꼼꼼하게 둘러보면서 풀도록 배치했다. 정답을 찾아내기도 좋지만 통제영 전체를 자세히 둘러보게 하는 데에 더 목적이 있다 하니 선생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통제영에서 미션 수행을 하는 아이들.

박경리·윤이상·유치환·김춘수·전혁림 등 예술인들이 많이 배출된 뿌리가 292년 이어져온 통제영 문화와 닿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통제사가 자체적으로 엽전을 찍어낼 수 있었을 만큼 규모와 권력이 대단했다는 데 대한 설명을 덧붙이며 당포성이 있는 삼덕항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덕항에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특징과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처럼 비행기나 탱크가 없던 시절에 침략은 대부분 강이나 바다를 통해서였다. 그런 침략을 막기 위해 성을 쌓았는데 당포성도 마찬가지다. 당포성은 고려 말기 왜구를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쌓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일어난 해에는 이순신 장군이 앞바다에서 왜적과 싸워 이겼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두 장군이 싸움을 했던 뜻깊은 자리라 얘기해 줬더니 아이들이 무척 흥미로워 한다. 아이들은 역시 심오한 지식보다는 이야기를 훨씬 더 좋아한다.

바다로부터 말미암았지만 육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바로 벅수다. 벅수는 들머리에 서서 마을과 사람을 지키고 액도 막아주는 액막이 역할을 하는 돌장승이다. 삼덕항 벅수는 항구와 마주보고 있다. 바다 근처 장승이 나무가 아니라 돌로 만들어진 데는 다 사연이 있다. 처음에는 바다 근처 장승도 나무로 만들었는데 갯바람에 쉽게 상해 2년마다 새로 만들어야 했다. 문제는 장승 만들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는 데 있었다. 신성한 장승을 만드는 사람은 이를테면 액이 없어야 한다. 몸도 마음도 정갈한 사람을 찾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그러다 보니 아예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는 돌로 만들게 됐다는 얘기다.

부풀어 오르는 풋나물과 새순 사이로 시원하게 부는 바람, 그 바람을 타고 흐르는 봄바다 내음 속에 당포성을 내려오는 아이들에게 벅수 이야기를 들려주며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이뤄진다는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벅수 앞에서 너도나도 두 손 모아 소원을 빌었다. 몇몇은 무척 간절한 표정으로.

삼덕항 돌벅수를 살펴보는 아이들.

돌아오는 버스에서 탐방소감을 썼다. 세 아이에게 쥐꼬리 장학금이 돌아갔다. 글을 아주 잘 쓴 한 친구 그리고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열정으로 쓴 한 친구 그리고 또 한 친구가 있다. "오늘 처음 만난 '낯선 누나'와 손을 잡고 미션을 했는데 마음이 따뜻하고 좋았다…" 이런 글을 뽑지 않고 어떤 글을 뽑을쏘냐!

버스에 타고 있던 모든 선생님들이 환호와 박수로 축하를 해 주었다. 오늘 하루도 잘 놀고 왔다. 3월 나들이에는 누리봄다문화·좋은씨앗교실·경화(진해)·행복한·팔용·메아리 지역아동센터가 함께했다.

※이 기획은 두산중공업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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