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이장님]밀양 부북면 퇴로마을 박인강 이장

밀양의 이름 난 명산인 화악산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아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고가로 유명한 마을이 있다. 바로 부북면 퇴로마을이다.

아침부터 마을 어르신들이 부산 영도다리와 울산박물관으로 여행을 떠날 리무진 관광버스 2대가 기다리고 있다. 지난 2월 27일 일이다. 퇴로마을에서는 여느 마을과 달리 자주 있는 풍경이다.

퇴로마을이 이렇게 부담 없이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은 박인강(61·사진) 퇴로마을 이장의 공이 크다. 2007년부터 이장직을 맡은 그는 사업적 수완이 뛰어난 사람인가 보다. 마을 기금으로 어르신들께 맛있는 음식도 대접하고 영화관에서 최신 영화를 함께 보는 아주 로맨틱한 이장이기도 하다.

마을회관에서는 자주 회의가 열린다. 그 이유는 모두가 할 말이 많아서다. '오늘 마을에 어린 손님들이 많이 오는데, 우리가 마을을 청소해서 손님을 맞이하자', '어제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앞으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등 모두가 마을 일에 협조적이고 내가 주인이라는 의식에서 자발적으로 모여 나누는 이야기다.

체험용 튀밥을 만들고 있는 박 이장.

이렇게 박인강 선장 '퇴로호'가 순항되기까지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이 마을에 부북초등학교 정진분교가 있었다. 1998년 폐교가 되어 마을의 애물단지로 10년간 방치돼 있었는데, 박 이장은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고 한다. 1999년 폐교된 인근 월산초등학교에 '밀양연극촌'이 들어와 터전을 잡은 것을 떠올리면서 폐교 활용 방안을 연구했다.

2007년 처음에 그는 체험학습장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예술가들과 협의를 하고 노력을 했지만 뜻을 맞추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교육청과 대부계약 절차도 무시할 수 없는 복병이었다.

그러면서 2년간 전국을 돌아다녔다. 시장 조사, 벤치마킹, 마케팅 활동을 병행하면서 2009년 임실치즈스쿨 경남지사를 만나게 됐고, 퇴로마을 폐교에 활기를 불어넣으면서 다시 아이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차들이 동네 안길을 점령하면서 농기계 다니는 데 불편하다', '사람들이 오니 마을만 시끄럽다' 등 아이들이 오고 사람들이 모이자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 불평불만으로 뿔이 많이 났다.

갈등 관리는 앞으로 퇴로마을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생각으로 박 이장은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다. 수입금을 마을발전기금으로 환원했고, 마을 청소부터 홍보 등 대외활동까지 솔선수범하는 이장의 모습을 보면서 마을 사람들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마을 사람 모두의 적극적인 활동은 여러 가지 사업을 가져올 수 있었다. 70억 원의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인 화악산 둥지 권역 사업이 퇴로마을에 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노력이 톡톡히 한몫을 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퇴로마을은 보통의 농촌마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아이들 웃음소리와 체험객들의 환호소리가 들리고 있고, 옛 모습이 보존된 고가 마을을 활용한 사업을 통해 떠났던 고향 청년들이 부모와 함께 꿈을 키우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디어를 찾던 박 이장에게 이제는 전국에서 갈등 관리 방안을 배우고자 몰려오고 있다. 1년에 40여 곳에서 2000여 명이 노하우를 전수해 간다.

그에게 배워 간 사람들이 제2, 제3의 박인강이 되어 농촌 마을을 활기차게 이끌어 주기를 바라며, 오늘도 박 이장은 그를 배우고자 찾아온 사람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 준다고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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