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열전]김광석 경남체육회 스쿼시 감독

"명장 열전이라는 인터뷰 혹시 보셨습니까?"

"네. 지면을 통해 잘 보고 있습니다."

"인터뷰에 한 번 응해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아직 깜냥이 부족하고 그동안 게재됐던 분들께 혹시 누가 될까 봐 꺼려지네요."

인터뷰 성사는 쉽지 않았다. 그는 미천한 지도자 경력과 화려하지 못했던 선수 생활까지 언급하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면 "그냥 얼굴이나 보자"며 마주 앉았다.

경남체육회 스쿼시팀을 이끄는 김광석(45) 감독은 그동안 명장 열전에 나온 지도자와 비교하면 경력이 짧다. 경남체육회 팀이 지난 2010년 창단했으니 올해로 지도자 경력이 5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1995년 경남에서 최초로 스쿼시를 접한 인물로 스쿼시 경력은 20년 가까이 된다. 동호인 출신의 그는 화려한 선수 경력도 없다. 대학교 3학년 때 스쿼시를 처음 접한 김 감독은 한때 경남 대표로 활약하긴 했지만, 당시에는 스쿼시가 전국체전 정식 종목이 아니어서 공식적인 선수 경력도 전혀 없다.

그는 "대학교 3학년이던 1995년 대우백화점에 스쿼시장이 딸린 스포츠센터가 오픈을 했다. 그맘때쯤 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일을 해야 했고, 수영 강사로 일하게 돼 곁눈질로 스쿼시를 접했다"고 말했다.

처음 잡은 스쿼시 라켓은 그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평소 배드민턴을 즐겼던 김 감독은 찰나의 순간에 승부가 결정 나는 스쿼시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그 길로 스쿼시 고수를 찾아다니며 스쿼시 선수의 꿈을 키웠다.

당시 생긴 대우백화점 스쿼시장이 경남에선 최초로 문을 연 코트여서, 도내에는 스쿼시 인구가 거의 없었다. 그는 쉬는 날이면 부산에 있는 클럽을 찾아다니며 스쿼시를 정식으로 배웠고, 결국 동호인을 거쳐 선수로도 뛰게 됐다.

동호인으로 시작했지만 선수생활까지 할 수 있었던 건 그의 타고난 운동신경이 한몫했다.

포항이 고향인 그는 고교 2학년까지 육상 선수였다. 단거리가 주 종목이었던 그는 항상 '2인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고, 결국 고 3이 되면서 운동을 포기했다. 운동을 포기했지만 그렇다고 공부는 쉽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체대 입시를 준비 중이던 친구를 알게 되면서 공부와 운동을 병행했고, 결국 경남대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진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에 취직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친구 덕분에 대학 문턱을 밟게 됐다"고 설명했다.

체육교육학과에서 체육교사를 꿈꾸던 그는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돈을 직접 벌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대우백화점 스포츠센터였다. 수영강사로 정식 입사한 그는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직장생활과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한동안 스쿼시에 빠져 동호인과 선수로 활동했지만, 스쿼시는 당시 전국체전 정식종목이 아니라 돈벌이 수단이 되지 못했다.

그는 과감히 스쿼시를 정리하고 스포츠센터 오픈 준비 등 자신이 배운 지식을 활용해 생업을 이어갔다.

그러던 2009년 대한스쿼시연맹에서 연락이 왔다.

연맹에서는 2010년 진주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을 앞두고 경남에도 스쿼시 종목을 제대로 한 번 해보자고 그에게 제의를 했다.

그는 그 길로 도체육회를 찾아가 팀 창단을 건의했고, 개최지였던 경남은 전국체전 전력 보강을 위해 경남체육회 팀을 창단했다. 초대 감독은 당연히 김 감독의 차지였다.

김광석 경남체육회 스쿼시 감독.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남녀 3명씩 총 6명으로 시작한 경남체육회 스쿼시팀은 그해 열린 전국체전에서 3위에 입상했고, 그 후로도 꾸준히 각종 대회에서 성적을 냈다.

지난해 제주에서 열린 제95회 전국체전에서도 3위를 차지하며 시상대에 서기도 했다.

'초보' 딱지를 떼고 올해로 지도자 5년 차인 그는 도내의 스쿼시 인프라가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는 "대부분 선수를 타지역에서 데려오면서 해마다 선수 구성이 바뀔 때가 잦다"면서 "올해도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여자부 송선미가 이적하면서 팀 전력에 차질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경남체육회 팀은 도내에 연습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전국을 떠돌며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는 국가대표팀이 베이스캠프를 차린 인천에서 훈련 중이다. 그는 "경남 팀이 훈련장이 없어 떠돌아다니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도체육회에서 도움을 줘서 훈련은 지장 없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내에는 15곳 이상의 스쿼시장이 운영 중이지만, 대부분이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시설이어서 엘리트 선수들에게 다소 인색한 편이다.

그는 "대부분 스쿼시장이 일반 동호인이나 시민들에게 요금을 받고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선수들에게 장시간 시설을 빌려주는 것을 꺼린다"면서 "그나마 인천은 선수들이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이 많아 거리가 멀긴 하지만 인천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걱정하는 또 하나는 바로 연계육성 시스템이다.

현재 경남에는 초등부와 중등부 스쿼시팀이 없다. 스쿼시가 아직 소년체전 정식 종목이 아니어서 학교와 교육청 모두 팀 창단에 난감해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선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운동을 정식으로 시작한다. 도내 유일한 고교 스쿼시팀인 창원신월고에는 달랑 선수가 3명뿐이다.

김 감독은 "일부 앞서가는 시·도에서는 벌써 중등부 팀을 창단해 연계육성에 힘을 쏟고 있지만, 경남은 스쿼시 꿈나무를 육성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협회 전무이사 직함도 맡고 있는데, 연계육성의 틀을 마련해주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경남 1호 동호인으로 스쿼시를 시작해 선수, 지도자까지 모두 1호 타이틀을 단 그의 스쿼시 인생은 아직 진행형이다.

그러기에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그의 스쿼시에 대한 열정은 '명장'의 필요조건은 충분히 갖춘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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