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최대 밥줄이자 스폰서 '지자체'…제대로 된 견제 안 돼 아이들만 눈칫밥

경남도의회에서 서민자녀 교육지원 조례를 논의하던 날, 출석한 홍준표 도지사가 인터넷 검색과 영화예고편 감상에 한참 몰두하는 모습이 서울의 한 주간지 기자 카메라에 잡혔다. "학교가 밥 먹으러 가는 곳이냐"라는 홍 지사의 일갈보다 여론 파급력이 더 큰 장면이었다.

보도의 반향은 컸다. 당시 지역언론 기자들이 빽빽하게 있었지만 누구도 홍 지사의 딴 짓을 잡아내지 못했다. 그 주간지 편집자는 그 점이 희한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 편집자는 최근호에서 홍 지사의 독불장군 행보가 워낙 심해서 대응하기 어렵다고 했다는 지역 언론인의 반응을 전했다. 변명 치고는 구차하다는 생각이 든다. 홍 지사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도 넘어갔다는 말인데, 눈 뜨고도 특종을 놓친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지역언론에 있는지나 모르겠다. 홍 지사의 거침없는 '업무외 활동'을 보니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닐진대, 지역언론에서 한 번이라도 모른 척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기자들이 홍 지사에게 느꼈다는 무력감이 진실인지도 의문스럽다. 지역언론의 지면이나 방송에서 불통 도지사에 대한 기자들의 낙담을 느끼기는 힘들다. 지역언론과 홍 지사는 줄곧 죽이 잘 맞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지방선거 출마 직전 홍 지사가 시군을 순방하고 때맞춰 경남도가 국가산단이니 경남미래50년전략이니 발표해도, 사전선거운동이나 도정을 빙자한 선거활동으로 의심한 지역언론은 드물었다. 보도자료를 따라 쓰기 바빴던 그들은 국가산단 등을 검증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또 폭스사와의 글로벌테마파크 양해각서 체결도 치밀한 검증이 필요한 일이지만 넘어갔다. 지역언론이 빠뜨리고 있는 것은 양해각서가 법적인 강제성이 없다는 사실이며, 분명한 점은 글로벌테마파크란 폭스사의 마음먹기에 따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진주의료원 폐업이나 무상급식 중단처럼 홍 지사가 일방적으로 갈등을 일으킨 사안의 경우, 지역언론은 대립 상황을 강조하며 경마중계 다루듯 하거나 자신들은 아이들 철없는 싸움 지켜보는 어른인 양 행세한다. 이들은 홍 지사와 보건의료노조·야당, 홍 지사와 박종훈 도교육감의 갈등을 부추기는 그 입으로 소통과 대화를 주문하지만, 정작 싸움을 먼저 걸어 분란을 벌인 사람이 누구인지 헤아릴 만한 구석은 없다. 그렇게 해준들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니다. 홍 지사로부터 '찌라시'라는 모욕을 당해도 일선기자들만 부글부글 끓었을 뿐 사설 한 편 내놓지 않은 한 신문은 비굴하고 초라한 지역신문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역언론들이 조금이라도 제 역할을 했더라면 경남도가 무상급식 중단을 감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도의회가 어떤 곳이기에 언감생심 도지사가 피시방이나 영화관으로 활용할 생각을 할 수 있는가.

도민을 업신여기는 도지사에게 지역언론이 벌벌 기는 이유를 캐보자면 경남도가 언론의 돈줄을 쥐고 있다는 것 말고는 없다. 신문을 팔아 수익을 낼 수 없는 지역언론일수록 자기 행사에 대한 지자체의 협찬금이나, 지자체 홍보 광고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다. <미디어스>의 조사를 보면, 지난 5년 동안 경남지역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언론사와 함께 벌이거나 언론사 행사를 뒷받침한 돈은 무려 1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시는 63억 원 정도라고 한다. 마라톤처럼 힘든 스포츠는 동호인 숫자가 다른 데보다 적은데도 지역 일간지를 뒤져보면 꽃 피거나 단풍 드는 철마다 마라톤 행사가 수두룩하게 나온다. 그런 행사의 가장 큰 물주가 지자체다. 창원시도 5년 동안 언론사 행사에 20억 원 가까이 썼다.

정문순.jpg
자치단체가 곧 언론사의 밥줄이자 스폰서인 구조에서, 경남도가 협찬금으로 지역언론의 비판적 목소리를 가로막고 지역언론이 협찬금으로 배를 불리는 사이 누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됐는지는 불 보듯 훤하다. 홍 지사의 말 바꾸기, 이해하기 어려운 언행이 뉴스에서 빠지는 사이 가장 힘 없는 존재인 아이들만 가난을 증명하지 않으면 눈칫밥조차 얻어먹지 못할 신세가 됐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