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예비군 훈련 온몸으로 체험하다

'고난의 연속' 김해예비군훈련장 가다

2015년 3월 27일, ‘예비군 훈련’에 다녀왔다. 동원 미지정으로 하루 출퇴근을 하는 형식의 짧은 훈련이었다.

필자가 가게 된 곳은 김해예비군훈련장. 현재 거주지는 창원이지만 시간이 없어 주소지 이전 신청을 못 한 관계로 본가 인근의 훈련장에 방문하게 됐다. 워낙 철새처럼 이리저리 지역을 옮긴 터라 4번째로 방문하는 예비군훈련장(진주, 대전, 서울에서 몇 차례 훈련을 받았다)이기도 했다.

9시까지 입소였지만 조금은 이른 8시 30분에 훈련장 도착, 그리 많은 인원이 와있지는 않았다. 5~6명 내외. 척 보기에도 ‘이 사람은 예비군이다’라고 느낄 수 있는 복장과 태도, 분위기에 나 자신도 늘어지려 하는 것을 참았다. 딱히 예비군 훈련을 열심히 해야 한다거나 FM(Field Manual : 야전교범)으로 각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예비군들이 좀비처럼 허우적거리는 꼴이 영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 바이오하자드의 좀비도 아니고.

4번 번호를 받고 강당에 도착, 교관의 교장 선생님이 떠오르는 설교를 들으며 꾸벅꾸벅 졸았다. 그리고 9시 20분이 될 무렵에 모든 인원이 도착, 복장을 갖추고 훈련 진행을 하러 갔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훈련은 안중에도 없고 '저녁에는 뭐 먹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나중에야 사전조사가 미흡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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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예비군훈련장./이종현 수습기자

예비군 훈련장이 아니었다. 그냥 산이었다. 가파르고 높은 산…. ‘뭐지 여긴? 왜 끝이 안 보이지? 설마 저 산꼭대기까지 이어져 있는 거야?’ 따위의 생각을 하며 걷던 중 목적지에 도착했다. 조금만 더 갔다면 꼴사납게 낙오돼서 쓰러져있지 않았을까(10명이 조를 이루었고, 조당 2명 정도는 뒤처져서 올라오질 못했다).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필자에게 옆의 예비군 동지가 말을 붙여왔다. 이곳(김해예비군훈련장)을 4년째 오고 있다는 그는 “딱 죽으려고 할 때면 도착하는 게 참 얄밉죠”라고 말했다. “그래도 여기가 끝이니 다행이네요” 라고 대답하자 청천벽력 같은 소식.

“아뇨. 여기서는 시가지랑 검문소만 하고, 목진지는 저 위에서 합니다. 딱 온 것만큼만 더 올라가면 돼요.”

날 죽여라.

1분 훈련하고 1시간 쉬고, 이래도 괜찮아?

산 중턱에 위치한 훈련장소. 도착하자마자 훈련에 돌입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조이기에 순서가 빨랐다.

첫 번째 훈련은 시가지 전투였다. 도심 내에 적군이 침입했다고 가정하고 이를 격퇴하는 훈련. 진주, 서울의 훈련장에서는 생략한 훈련이었고 대전에서는 세워져있는 사람 모양의 표적으로 훈련을 했었다. 하지만 김해예비군훈련장에서는 페인트 탄과 보호구를 줘가며 ‘제대로’ 하는 모양이다.

포장해서 말하면 시가지 전투훈련이지, 사실상 서바이벌 수준이다. 조교 2명이 정해진 레퍼토리 내에서 사격을 하고, 훈련병들은 탄을 피해 가면서 10분 이내에 목표 깃발을 뽑는 것. 3명 이상 조교의 페인트 탄에 맞으면 실격이라는데, 조교가 대충 쏘기도 하고 몸을 드러낸 뒤 2~3초 뒤에야 사격을 하기에 난이도가 낮았다. 내가 속한 조는 ‘너무 늘어지지 말고 적당히 해서 조기퇴소하자’라고 말을 맞춰놓았기에 빨리빨리 끝냈다. 1분 40초, 교관 말로는 최단 시간 클리어란다. (필자의 경우 페인트 탄을 쏘는 게 재밌어서 조교를 집중적으로 노렸다. 기다리다가 헤드샷을 날려줬다.)

20여 분 동안 산을 타고 또 20분 정도를 교관의 교육(이 훈련의 취지와 시행 방법 등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시간)을 받은 게 1분 남짓 만에 끝나버리니 허탈하기도 했다. 듣자 하니 10분의 1 정도 확률로 실패하는 조도 있다 카더라.

두 번째 훈련은 ‘검문소 운영’이다. 검문소를 배치해 적군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도로공사 때 길을 막거나 경찰이 음주단속하는 모습을 연상하면 된다. 이때야 알았지만 금요일에 시행된 이 훈련은 첫 번째가 아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필자가 훈련을 받을 땐 금요일) 쭉 이어져왔고, 며칠 연속으로 훈련을 받는 사람들이 다수. 그래서 교관의 교육조차 생략하고 곧바로 실습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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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예비군훈련장./이종현 수습기자

검문소 운영은 차량이 강행돌파할 수 없도록 장애물을 S자로 배치한 뒤, 각자에게 하달된 임무를 수행하는 훈련이다. 필자가 맡은 역할은 엄호조. 드럼통 하나 세워놓고 뒤에서 총으로 겨누고 있기만 하면 된다. 이번 훈련 역시 1분 정도 만에 끝났다. 이동하는 데 30분, 대기시간이 30분 정도 걸렸는데, 정말이지 비효율의 극치라고 생각했다.

이후 산 중턱까지 내려가 오전의 마지막 일정인 ‘안보교육 및 시험’을 수행했다. 동영상을 틀어놓고 10문제 정도의 문제를 내 시험을 치는 것. 틀려도 동영상을 다시 보여주므로 부담은 없었다. 아, 필자 조의 분대장은 동영상이 나오기도 전에 “이 문제 4일째 풀어서 다 외웠어요”라며 답을 써내려갔다. 혹시 몰라 열심히 동영상을 본 나는 감탄했다. 만점이다.

이윽고 점심시간, 점심을 먹겠다고 한 사람들은 점심을 먹고 나머지는 적당히 쉴 곳을 찾아 몸을 뉘었다. 필자는 ‘그다지 맛있지도 않은 밥을 5000원씩이나 써가며 먹기 싫다’는 이유로 밥을 걸렀다. 체중감량을 위해서라는 명분도 일정 부분 있었다. 적당히 페이스북에 중간보고를 하고, 글의 조미료가 될 사진을 몰래몰래 촬영. 그리고 따뜻한 볕이 드는 곳에 몸을 뉘었다. 아… 천국이다.

오후에는 목진지 전투 훈련만 했다. 통상적으로 사격 등을 함께 한다고 하지만 필자가 간 날에는 사격 일정이 없었다. 목진지 전투는 산을 배경으로 분대 단위의 임무수행능력을 평가하는 훈련이다. 진지를 점령하고 다가오는 적군을 발각·사살하는 내용으로 진지 점령·전화기 설치·크레모아(지뢰) 설치·경계임무·수류탄 투척·소총 사격 등을 평가한다. 산 아래쪽에서 조교 1명이 ‘적군’으로 모습을 드러내면 이에 대처하는 방식이었다.

글로 써보니 무척 힘들거나 대단할 것 같은 훈련이지만, 이전 훈련과 마찬가지로 맥없이 끝났다. 실제 실습시간은 3~5분 남짓. 하지만 대기시간은 훈련 중 최장이었다. 100명 가량의 인원을 모두 이곳에 집중시켰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거의 2시간 정도를 기다려서야 실습을 한 필자의 조는 모든 훈련에서 합격을 받아 ‘조기퇴소’를 했다.

일찍 마쳤다는 게 좋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훈련 시스템이 너무 엉망이라는 불평을 한 것이 사실이다. 편한 게 좋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정도라는 게 있다. 훈련에 대해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런 훈련은 시간 낭비’라는 게 필자의 평가. 훈련을 마친 지금에 와서는 ‘빨리 주소지 이전해서 다른 예비군 훈련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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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중 점심시간을 이용해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종현 수습기자

예비군이 당나라 군대? 국방부부터 고쳐야 해!

사실 본 글을 처음 기획했을 때는 ‘예전 예비군과 지금 예비군의 변화된 점, 차이점’ 등을 조사하고 후기를 작성하는 것이었지만. 이런 실태를 보니 원인 규명과 개선안 제시가 더 시급하다는 생각에 글의 주제도 바뀌었다.

국방부에서는 2015년을 기점으로 예비군 제도를 대규모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부대에서 부분적으로 시행 중이며, 김해예비군훈련장 역시 하반기부터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훈련 일정을 예비군훈련생들이 직접 일정을 짜고, 전자기기를 통해 동영상 시청을 한 뒤 조교와 교관에게 평가받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필자의 친구는 창원에서 예비군훈련을 받았고, 바뀐 시스템을 경험했다. 바뀐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그렇게 해봤자 군대다. 꽉 막힌 동네에서 뭘 하든 소용없지. 우리끼리 훈련 다 짜놔도 오후에 자기네들 마음대로 배치시키더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바꾸겠다고 발표한 사안이 어떠한 사정 때문인지 지켜지지 않은 것.

군대에 대해 좋게 치장해서 말하면 '규율이 살아있는 군 문화'라고 할 수 있지만, 실상은 고집만 가득한 악폐습의 집합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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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휴식 모습./이종현 수습기자

필자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예비군들은 ‘예비군훈련’에 대해 부정적이다. 물론 개인의 시간을 빼앗기며 군복을 입고 정해진 훈련을 소화한다는 것이 싫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의 ‘혐오감’이 예비군에는 있다. 무엇이 예비군을 기피하게 만드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은 ‘예비군’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군’을 싫어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필자는 현재 예비군의 안 좋은 모습은 전적으로 국방부의 잘못이라고 판단한다. 조직 ‘경영’능력의 부족이다. 신뢰를 받지 못하면서 책임과 의무만을 강요한 결과물이다.

군에서 잘못한 일이야 일일이 세기 힘들 수준이지만, 당장 생각나는 한 가지를 꼽자면 ‘예비군 훈련 복장 규정 완화’ 사건이 떠오른다. 지난해 4~6월 쯤 국방부에서 ‘예비군 훈련 복장 규정을 완화했다. 전투모를 착용하지 않아도 훈련장에 입소 가능하다. 전투모를 지참하지 않은 채 훈련에 참석해달라’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혹시나 싶어 전화로 문의를 했고, 이제는 전투모가 필요 없으며 앞으로도 쓸 일이 없다고 동대 관계자는 설명했었다. 앞으로 쓸 일이 없어진 전투모를 그대로 헌 옷 수거함에 넣었었다.

하지만 8월 무렵, 향방작계를 간 필자에게 군 관계자는‘전투모를 지참해라’며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이에 대해 따지는 이들에게 ‘전투모 없으면 입소가 불가능하다’며 ‘없다면 군장점에서 구입해라’는 어처구니없는 응답을 했다.

현역일 때엔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군의 지시에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던 사람들이 예비군이 돼 불만을 터트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귀찮아서’라고 하기에는 그들의 모습은 심각할 정도로 망가져있지 않나(보통 지나가는 사람에게 같은 일을 하라고 하더라도 예비군보다 제대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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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예비군훈련장에서 퇴소하는 풍경./이종현 수습기자

모든 것을 국방부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병사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시점에서 아웃이다. 심지어 사회의 눈도 차갑다. 얼마 전 이슈가 됐던 '지하철 예비군' 사례가 대표적이다. 민간 기업이었다면 100번도 더 파산했으리라.

훈련 시스템을 바꾸는 등의 시도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 ‘신뢰’받을 수 있는 군이 돼야 한다. 이미 ‘군인’의 신분을 벗어던진 예비군에게는 군대의 엉망진창인 명령체계가 통하지 않으니까. 부디 멈춰있는 국방부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길 바란다.

예비군의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한결같다. 미디어에서 말하는 '달라진 예비군' 등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예비군의 시스템·제도에 대한 변화를 넘어, 사고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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