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 대로만 하는 인생을 살 것인가 스스로 살피고 노력하는 삶을 살 것인가

예로부터 큰 그릇이 큰 물건을 담는다고 했다. 어느 날 붓다(Buddha)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제자들을 가르쳤다.

"세상에는 네 종류의 말(馬)이 있다. 첫 번째로 좋은 말은 등에 안장을 올려놓으면 채찍의 그림자만 보아도 달리는 말이며, 두 번째로 좋은 말은 채찍으로 털끝을 조금 스치기만 해도 달리는 말이다. 세 번째로 좋은 말은 살갗에 채찍이 떨어져야 달리는 말이며, 네 번째로 좋은 말은 채찍으로 등을 얻어맞고 고삐를 잡아채야 달리는 말이다"라고 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바른 법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네 부류가 있다. 첫 번째로 지혜로운 사람은 누가 병들어 고통받다가 죽었다는 말만 듣고도 생사를 두려워하여 바른 생각을 일으켜 열심히 공부한다. 이는 첫 번째 말과 같은 사람이다. 두 번째로 지혜로운 사람은 죽은 사람의 상여가 나가는 것만 보아도 생사를 두려워하여 바른 마음을 일으켜 열심히 공부한다. 이는 두 번째 말과 같은 사람이다. 세 번째로 지혜로운 사람은 친족이나 아는 사람이 병들어 신음하다 죽는 것을 옆에서 직접 보고 두려운 마음을 일으켜 열심히 공부한다. 이는 세 번째 말과 같은 사람이다. 네 번째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병들어 고통받다가 죽을 때가 돼서야 생사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서 공부하기 시작한다. 이는 네 번째 말과 같은 사람이다.

우리는 예부터 사람의 됨됨이를 그릇 또는 도량이나 재간의 양을 국량(局量)에 비유하는 예가 많았다. 큰 그릇에 많은 양의 물건을 담을 수 있듯이, 내면적 성숙의 깊이를 그릇 또는 큰 방에 비유한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성공을 꿈꾸면서도 그 과정에 노력이 있다는 사실을 곧잘 잊어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조건이 있는 일은 누구나 잘한다. 이처럼 조건에 의한 행동은 작은 그릇의 소행임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여러분은 과연 어떠한가. 대부분 자신의 생활습관과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스스로 알아서 하는지? 눈치 봐서 하는지? 시켜야만 하는지? 시켜서도 못하고 통제를 받아야만 하는지? 이러한 대화가 있다.

스승: 걸을 때 부드러움을 느끼려면 온 세상에 가죽을 덮어야 할까?

제자: 아닙니다.

스승: 그럼 뭐가 좋겠느냐?

제자: 가죽 신발을 신으면 됩니다.

스승: 그래. 가죽신발을 신으면 될 것이니라. 그럼 어디를 가나 부드럽겠지. 나 한 사람의 발에 가죽신발을 신는 것이 온 세상을 가죽으로 덮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느니라. 만사가 다 이와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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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자신을 살필 때 그릇은 커진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매순간 끊임없이 수많은 문제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싫든 좋든 간에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며 현실은 우리에게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한다. 굳이 채찍에 맞아 등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겪고서야 달리는 말보다는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 달리는 말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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