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그 후] 2014년 4월 4일 자 1면 '태백산맥 전권 필사 성공하신 팔순의 어머니'

지난해 1월이었다. 창원시 대방동에 사는 안정자(82) 할머니는 <태백산맥> 전권(10권)을 필사, 그러니까 내용 하나하나를 손으로 베껴 쓰는 데 성공했다. 원고지 1만 3000여 장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젊은 사람들도 4년 가까이 걸린다는 걸 1년 9개월 만에 해냈다. 이 필사본은 태백산맥 문학관에 기증됐고, 할머니는 <태백산맥> 조정래 작가로부터 직접 감사패를 받았다.

이러한 사연은 딸 이영화(47) 씨를 통해 2014년 4월 4일 자 '함께 축하해주세요'에 게재됐다. 당시 내용에서 할머니는 '자서전 출간'이라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할머니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할머니는 자서전에 대해 '여전히 마음속에 있기는 하지만,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할머니의 바쁜 나날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 제 방은 온통 한자 칠갑이에요. 한자시험 공부를 계속하고 있거든요. 자다가도 생각 나는 게 있으면 불 켜서 글 들여다보고, 쓰고 그럽니다. 2급은 한 번에 붙었고, 1급은 2월 28일에 시험을 쳤는데 이번 달 말에 결과가 나옵니다. 1급은 확실히 어려워서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네요. 시험 친 직후에는 '잘하면 붙겠다' 싶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불안하네…. 1년에 시험이 네 번 있는데, 떨어지면 5월 시험에 또 도전해야지."

안정자 할머니가 전권 필사를 끝낸 <태백산맥> 원고.

한자시험을 위해 학원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살고 있는 창원 쪽에는 없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일주일에 한 번, 부산으로 발걸음 해야만 했다. 학원으로 가기 위해 시내버스·시외버스·전철을 갈아타고, 3시간 공부한 후, 다시 돌아오면 하루가 꼬박 날아갔다. 한때는 수업시간이 저녁에 있어 심야버스로 집에 돌아와야만 했다. 여든 넘은 나이지만 혼자 움직이는 데는 전혀 어려움 없다고 한다.

할머니는 옛 시절부터 공부를 가까이하던 사람이다. 서울대 사범대학에 들어갔지만 결혼 때문에 교사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에는 가정을 돌보면서 한자 공부를 하고, 또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태백산맥> 필사를 마음먹었던 건 창원성산노인복지관 문예창작반을 통해서였다. 당시 동기부여에 도움 준 선생님을 얼마 전 우연히 만났다고 한다. "필사 시작한 이후 그 선생님은 그만뒀거든. 최근에야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신문·방송을 통해 전권 필사 소식을 들었다. 시작은 했어도 끝까지 다할 줄은 몰랐다'면서 놀라워하데요."

지난해 3월 태백산맥문학관에 필사본을 기증한 후 조정래 작가와 함께한 안정자(왼쪽) 할머니.

할머니는 1년 전 당시 전국에서 여섯 번째로 <태백산맥> 전권을 필사한 이였다. 최근 '필사를 통한 치유' 바람이 불면서, 세 명 더 늘었다고 한다. 할머니도 세 명에 대한 감사패 전달식에 초청받았다. 1년 만에 태백산맥 문학관을 찾아 자신의 원본을 들여다보았다.

할머니는 또 다른 배움을 위해 복지관에 계속 나간다. 논어, 그리고 영어·일어 중급반 공부를 하고 있다. 배운 것은 또 가르침으로 토해내고 있다. 평생교육원에서 한자 강사로 꾸준히 활동한다.

할머니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제가 제일 바쁜 사람이네요. 좀 더 여유가 되면 자서전은 꼭 쓸 예정입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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