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킹을 신는데 올이 나가버린다. 바빠 죽겠는데 아침마다 스타킹을 벗었다 입었다 하느라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며칠 연속으로 2500원씩을 날려 버리고 나니 슬며시 짜증이 치민다. 손톱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손톱끝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다듬고 깎고 해도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다. 지인의 조언에 따라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보다 비싼 손톱 영양제를 바르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심기가 불편하다.

게다가 최근엔 미용실에 회원권까지 끊어서 다니기 시작했다. 전지현 머릿결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윤기가 흐르고 보기 좋았던 머리카락이었다. 그런데 이번 겨울을 지나며 눈에 띄게 푸석거리고 빠지더니 심지어 미용사에게 '출산한 지 얼마 안 되었냐'는 질문까지 받았다. 요즘 애들 말로 이런 된장…. 설상가상, 머리끝이 많이 갈라지고 상해서 고민 끝에 초등학생 아들보다 짧게 머리를 잘랐는데도 전문가는 관리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한다.

이놈의 몸이 자꾸 돈을 달랜다. 예전엔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손톱이나 머리카락이 그러질 않나 점점 탄력을 잃고 건조해지는 피부도, 추위에 예민해진 체력도 그렇다. 비타민이며 미네랄이 부족하다고도 하고 몸 속 효소가 줄어서라고도 하는데,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몰라도 예전 같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2015년, 드디어 내 나이 마흔을 찍었다. 누가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했던가. 오히려 마흔이 되면서 더 예민하게 작고 사소한 것에 상처받고 미혹되는 나는 도저히 그 말에 동의할 수가 없다. 3월인데도 굳이 내복을 입고 다니는 저질 체력이나 내 관심의 영역에 전혀 없었던 손톱, 머리카락 따위가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으니 말이다. 몸도 마음도 꺾어진 여든에 접어드는 데에 적잖이 진통이 온다.

그러고 보니 이삼십대의 나는 사십대의 여성을 성(性)으로 구분해서 보질 못했었다. 막연히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을 것 같던 '아줌마'의 나이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사십대를 여성이라는 관점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래, 나는 여전히 건강하고 아름답고 싶다! 그렇다고 세월을 거스르는 만행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단지 너무도 당연하게 주어져서 그 소중함을 몰랐던 것들, 애쓰지 않아도 누릴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더 깊은 관심과 감사를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나의 삶에서 인식조차 하지 못했지만, 나를 있게 해 준 모든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려 한다. 이제는 좀 더 정성스럽게 나를 돌보고 감사하려 한다. 그동안의 묵묵한 수고로움에 보답하고 더 오랜 세월을 함께하자고 달래주려 한다. 나의 불혹은 미혹됨으로써,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인식하는 깨달음을 내게 주었구나. 40대의 나를 사랑하겠다.

이정주.jpg
그리고 40대에 이르는 시간보다 더 빠르게 다가올 50대와 60대도 감사하며 사랑하리라.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