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열전] (14) 박춘길 김해시체육회 남자볼링팀 감독

돈이 곧 실력인 체육계에서 의리를 지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대개 원 소속팀이 해체되면 선수들은 다른 팀을 찾아 떠나기 마련이다. 특히 기존 팀이 유지될 때 받았던 연봉을 대폭 삭감하고 팀에 남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김해시체육회 남자볼링팀은 '의리의 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도내 유일의 남자실업팀인 김해시체육회는 지난 2013년 양산시청이 해체되면서 새로이 창단된 팀이다. 남자실업 볼링팀은 2013년에는 도민체전 개최지였던 사천시의 보조를 받아 경남 일반으로 뛰었고, 지난해부터는 도체육회와 김해시체육회가 운영 경비를 마련해 팀을 유지하고 있다.

김해시체육회는 다른 실업팀에 비해 예산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렇지만 선수단 구성은 다른 팀을 능가한다. 올 시즌 영입한 신인을 제외하고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국가대표 출신이다. 팀 해체라는 역경을 딛고 새출발 중인 김해시체육회의 박춘길(45) 감독을 만나 그의 '의리 볼링' 이야기를 나눴다.

김해시체육회 선수들의 월급은 1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그래서 선수들은 볼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업과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박 감독은 "팀에 남아 있는 선수 대부분이 양산시청 시절부터 함께해 온 동지"라며 "실력이 뛰어나 다른 팀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선수가 많았지만 (나와) 의리를 생각해 우리 팀에 남아줘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털어놨다.

박춘길 김해시체육회 남자볼링팀 감독.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팀 사정은 김해시체육회는 합숙은 고사하고 개별적으로 훈련하면서 전국체전을 비롯한 각종 국내 대회에 출전 중이다. 열악한 환경에도 김해시체육회는 지난해 제주에서 열린 제95회 전국체전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의 성과를 냈다.

전국체전에서 성적을 내야 주위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는 생각에 박 감독과 선수들은 현지에서 한 달간 머무르며 대회를 준비했고, 예상 밖의 선전을 펼쳤다.

그는 "전국체전을 앞두고 팀의 존폐가 걸린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남달랐고, 비록 금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연봉이 서너 배 많은 팀과 겨뤄 메달 획득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의 고향은 남해다. 당시 남해에는 볼링 경기장이 없어 고교 3학년 때 우연히 창원에 있는 볼링장을 찾았다 선수 생활을 하게 됐다. 지금처럼 중학교 때 운동을 시작하는 시스팀이 갖춰져있지 않아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박 감독은 빠른 적응을 통해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1997년 창원에서 열린 전국체전에서 그는 진해시청 소속으로 첫 실업팀 생활을 했다. 주위에서는 안방에서 대회가 열리는 만큼 기대가 컸지만, 당시 경남은 제78회 전국체전에서 볼링 종목 0점의 수모를 겪었다.

박 감독은 "당시 대회가 창원에서 열렸는데 0점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둬 1년 정도를 고개를 들고 다니질 못했다"라며 "그래서 공개테스트를 통해 선수를 재선발했는데 운 좋게 다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진해시청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한 그는 태극마크를 달지는 못했지만 실업팀 데뷔 4년차이던 2001년 마스터스대회와 KBS배 전국남녀볼링대회에서 개인전 우승을 차지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기도 했다.

2003년에도 전국체전 경남 대표로 출전해 볼링이 금메달 3개를 따내는 영광의 순간을 함께하기도 했다.

진해시청이 2007년 해체하면서 자연스레 지도자 길을 걷게 된 박 감독은 2008년 창단한 양산시청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박 감독은 김효겸, 김현석, 차지현, 배수욱 등 국내 랭킹을 다투던 정상급 선수들을 대거 영입해 전국 상위 클래스의 팀으로 성장시켰다.

화려한 선수 구성 뒷면에는 지도자로서 애환도 있었다.

경남과 체전에서 경쟁하는 다른 시·도에서 신생팀을 창단해 양산시청 선수들에게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스카우트에 나선 것.

박 감독은 "많은 선수들이 스카우트 대상이었지만 당시 체력과 실력을 겸비한 김효겸은 특히 탐내는 지도자가 많았던 선수였다"면서 "연봉의 2배를 제시하는 팀도 있었지만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저는 감독님과 함께 가겠습니다'라고 말해준 게 고마워 지금도 스승과 제자 사이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일주일에 한 차례 정도 선수들과 미팅을 하는데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 회의를 진행한다.

이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자신과 다짐했던 약속이었다.

그는 "제가 선수생활을 할 때만 해도 지도자는 갑, 선수는 을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성적이 나지 않으면 감독 한 마디에 곧바로 짐을 싸는 선수를 봤기 때문에 내가 지도자가 되면 선수들을 인정해주고 믿어보자고 결심했다"면서 "실업 팀에 올 정도라면 선수들이 자기관리를 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지금도 그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최근 김해대청고를 졸업한 최호석을 김해시체육회 볼링팀 정식 선수로 뽑았다. 주위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선수를 스카우트하는 것을 두고 말들이 많았지만, 그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물론 선수의 성장 가능성도 높게 평가했지만, 지역 출신이라는 점도 분명 스카우트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는 "되도록이면 지역출신 선수를 뽑고 싶다. 도내 출신 선수들은 다른 지역에서 데려온 선수들보다 훨씬 팀에 대한 애착이 있고, 연봉이나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선수에서 지도자까지 한 우물만 파며 25년째 볼링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최근 경남볼링협회 전무이사라는 직함도 달게 됐다.

최근까지 경남볼링협회는 악재를 겪으면서 타 시·도 볼링팀에게 많은 핀잔을 듣기도 했고, 도체육회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링 종목을 대했다.

그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경남볼링협회에 불미스러운 일이 많았다. 어딜 가도 볼링 한다는 소리가 입안에서만 맴돌 정도로 부끄러웠다. 이제 과거는 모두 잊고 예전의 하나되었던 경남볼링협회로 다시 만들어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 박 감독은 그동안 부진했던 경남의 학생볼링이 다시 부활의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박 감독은 "경남은 중등부, 고등부, 대학팀까지 연계육성을 할 수 있는 인프라는 잘 갖춰진 상황이다. 인기종목은 아니지만 팀이 꾸준히 유지되고 최근에는 김해 봉명중이 창단도 했다"면서 "볼링을 갓 시작한 어린 선수들에게 희망을 전해줄 수 있는 협회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자신의 볼링 인생이 매 순간 바람 잘 날 없었지만, 단 한 번도 볼링공을 잡은 것은 후회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해시체육회 지도자로서, 또 경남볼링협회의 살림을 책임지는 전무이사로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는 '퍼펙트 게임'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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