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88) 고성 개천면 개천된장 탁동열-김향숙 부부

산으로 둘러싸여 바람도 제대로 통하지 않을 것만 같은 고성 연화산 자락. 하루에 두 번 고성읍을 오가는 버스가 들를 만큼 외진 곳이지만 마을에 들어서니 봄기운이 완연한 햇볕이 포근히 감싼다. 수십 년은 됐음직한 큰 은목서 너머로 장독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고성군 개천면 좌연4길 149-6번지 좌이마을에서 전통방식으로 된장 간장 등을 만들어 판매하는 탁동열(61)-김향숙(56) 부부의 '개천된장'이다.

◇1년 열두 달 따뜻한 기운이 흐르는 곳으로 귀농 = 입구로 들어서자 허름한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살지 않는 듯해 보이지만 여느 빈집과는 달리 정리정돈이 잘 돼 있다.

"처음 이 마을을 찾았을 때 우리 부부의 마음을 잡았던 집입니다. 이 집에 들어서는데, 지금은 없어진 돌담길과 은목서랑 어울려 정말 좋았습니다. 마루에 앉는 순간 참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곳에서 살기로 마음먹었죠. 처음 1년 정도 이 집에서 살았는데, 서까래에 새겨진 글을 보니 150여 년 전에 지은 집입니다."

도시생활에 싫증이 난 탁 사장은 일찌감치 귀농을 생각했다. 창원에서 철재상을 10여 년간 운영했던 탁 사장은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내 김향숙 씨는 달랐다. 그런데 김 씨의 마음을 돌리는 계기가 운명처럼 찾아왔다. 2004년 '경남 생태귀농학교' 강의를 수강한 김 씨는 첫 강의에서 '뭔가에 홀린 듯' 가슴에 와 닿았고, 남편과 함께 귀농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귀농지를 찾던 중 '1년 열두 달 따뜻한 기운이 흐르는 땅'이라며 주인이 매물로 내놓은 집을 인터넷에서 발견했다. "글귀가 가슴에 와닿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마루에 앉았는데 편안해 여기로 결정하자고 했죠." 그게 2004년 10월이다.

◇무대책·무경험 좌충우돌 정착기 = 그런데 이 부부 이야기를 듣노라니 참 대책이 없었다. "'농촌에서 뭘 해먹고 살겠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없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지 않았고, 그냥 귀농 당위성만 가지고 고성에 오게 된 것입니다."

호미 한 번 안 잡아본 사람이 농사지으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첫해 농사는 부부가 먹을 양식도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당시엔 수중에 돈이 있어 2년간은 재미있었다. 그런데 점점 현실을 생각하게 됐다. 귀농을 잘한 것인지 생각도 들었단다. 농사를 지어도 소득과 연결이 안 되니 돈도 점점 떨어지고 불안했다.

"그러던 차에 좋은 아이템이 떠올랐습니다. 직접 된장 간장 고추장 담가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줬었는데 다들 맛있다고 했던 기억이 난 거죠.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김 씨가 된장을 담그기 시작한 것은 친정 엄마 덕택이었다. "하루는 엄마가 그러시더군요. '이젠 너도 시골에서 살고 있으니 김장이나 된장 등은 직접 담가 먹어봐라'고. 그래서 된장을 담갔는데 뜻밖에 주위 분들이 다들 맛있다고 칭찬하더라고요."

부부는 귀농 3년 차인 2006년 장류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2008년엔 사업자 등록도 냈다.

◇부부의 영원한 스승, 어머니 = "남들은 맛있는 된장 만드는 비결이 뭐냐고 많이 묻습니다. 그런데 비결은 딱히 없습니다. 몸은 고되지만 대형 가마솥에 불을 때 콩을 삶고, 옛날 방식대로 메주를 띄웁니다." 김 씨는 소금의 중요성도 이야기했다. "소금은 적어도 2~3년 간수를 뺍니다. 그리고 간수를 뺀 소금을 구멍이 뚫린 장독에 넣어 또다시 긴 시간 숙성해 좋은 품질의 소금을 얻죠."

'개천된장'은 장을 음력 정월에 담그고 또 정월에 장 가르기(된장과 간장을 분리하는 것)를 한다. 많은 된장공장이 45~90일 정도면 장 가르기를 하지만 개천된장은 이를 반드시 지킨다.

"몇 년 전 한 방송에 소개됐는데 주문이 밀려 조기에 동났습니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친정 엄마에게 빨리 장 가르기를 하면 안 되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올해만 하고 장사 안 하려면 장 가르기를 하고, 계속 이 일을 하려면 욕심을 버려라. 그러나 후회는 안 하게 장독 하나만 장 가르기를 해봐라'고 하셨습니다. 역시 엄마는 우리 부부의 영원한 스승이었습니다. 확실히 맛이 달랐죠."

탁동열 사장이 메주가 이상이 없는지 점검하고 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욕심내면 실패" = 부부는 한 해 된장 3000㎏, 간장 1.6~2t을 수확한다. 이 밖에도 고추장, 청국장, 액젓, 청국장 가루 등도 생산한다. 주 재료인 콩은 10월 말∼11월 초에 사들이는데, 영농조합법인을 통해 받기도 하지만 고성에서 생산되는 콩도 많이 사용한다. 부부는 연간 1억 원 정도 번다. 이 중 순수익은 4000만~5000만 원 정도 된다. 궁금함이 생겼다. 더 많은 수익을 위해 규모를 키우면 안 될까?

부부의 대답은 단호했다. "작업장을 짓고 물량을 늘렸더니 우리 부부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메주가 있어 검은 곰팡이가 피더군요.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저희 부부가 할 수 있는 양은 80㎏들이 콩 30∼35가마가 한계치입니다."

◇"된장 만드는 일 정년 없어 … 힘닿는 데까지 해볼 것" = 탁 사장은 요즘 마을 일에도 힘쓴다. 그는 3년 전 마을 이장을 맡았다. 탁 사장은 "나이 50 넘어 농촌에 처음 들어온 사람에게 주민들이 마을 이장 일을 맡길 정도가 됐으니 이젠 나도 어엿한 마을 주민"이라며 웃는다.

"2004년 가을 귀농해 오래된 집을 청소하고 손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동네 사람들에겐 도시에서 사업에 실패하고 농촌에 들어온 사람으로 여겼던 모양이었습니다.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저희 부부에게 오시더니 '내가 보증 서줄 테니 한 2000만 원 대출해 집을 새로 지으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 처음엔 적잖이 당황했는데 참 인심이 좋은 동네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탁동열(오른쪽) 사장 부부가 된장을 담그기 위해 간수를 뺀 소금을 살펴보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부부는 매일 작업일지를 쓴다. 맛의 표준화를 위한 데이터 축적과정이다. 완벽한 자료가 나오려면 이제 몇 년만 더하면 될 것 같다.

"딸은 음식에 관심이 많은데 전공이 조선 쪽이라 우리가 하는 사업을 물려받을 생각은 없는 것 같아요.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34살 미혼인 아들이 자연을 사랑하고 음식에 관심이 많은 이를 며느리로 데려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 아이든 다른 누구든 이 일을 한다면 작업노트 한 권이면 충분하게끔 정확한 수치를 적고 있습니다."

다소 무모했던 귀농. 그러나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귀농하려 했다면 아직도 계획만 세우고 창원에 살고 있을 것"이라는 부부는 정년이 없는, 된장 간장 만드는 일을 계속 즐길 생각이다.

"마을이 분지 형태처럼 보이지만 된장 사업하기에 좋은 환경입니다. 연화산 자락인 이곳은 지리산 대륙성기후와 고성의 해양성기후가 만나는 지점이죠. 일교차가 크고 공기 정화가 잘 돼 된장이 잘 익는 것 같습니다. 우리 부부의 새로운 사업이 된 이 일을 힘닿는 데까지 해볼 생각입니다." 

<추천 이유>

◇허대영 고성군농업기술센터 농업경영담당 = '개천된장' 탁동열-김향숙 부부는 귀농 11년 차로 2011년 강소농에 가입해 각종 교육과 체험을 통해 습득한 노하우와 차별화된 제품을 생산하는 귀농인입니다. 100% 국내산 원료만을 사용한 제품은 직접 담그고 판매하는 수제품으로서 어떠한 방부제나 화학물질도 전혀 들어가지 않는 자연식품입니다. 특히 소비자가 언제든지 방문해 된장, 간장, 고추장 등 다양한 장류뿐만 아니라 장아찌 체험까지 할 수 있게 해 지난해 경남정보화농업인 전진대회에서 농산물 홍보물 분야 대상을 받았으며, 현재 장류 생산에 주력하면서 이웃과 상생해나가는 대표적인 강소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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