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 '홍준표 프레임' 왜 두 번 모두 깨지 못했나

'경남 학교 무상급식' 시계가 멈춰 섰다. 2007년 거창에서 전국 최초로 무상급식을 시행한 지 8년 만이다. 19일 경남도의회 본회의에서 도내 자치단체 급식 지원금을 돌려 다른 사업에 쓰는 '경남도 서민자녀교육지원 조례'가 결국 제정됐다.

18일 경남을 방문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만나 "벽에다 얘기하는 줄 알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문 대표 표현을 빌리면 경남 도민은 안타깝게도 '벽과의 일상'을 지속해야 한다.

그래서 그 일상에 대한 물음을 하나 던진다. 현재까지 결과만 보면 2013년 진주의료원 폐업에 이어 2015년 학교 무상급식 중단 사태까지 이를 반대한 이들은 홍 지사가 주도한 전쟁에서 두 차례나 졌다. 그들은 왜 졌을까?

◇부실한 보도? 지역 보도매체 영향력의 한계? = 홍 지사는 지난해 10월 15일 도교육청 무상급식 특정감사 지시에 이어 11월 3일 기자회견을 열어 학교 무상급식비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그는 SNS 등에서 "지방재정이 파탄지경에 이르렀는데…진보 좌파의 무상파티는 이제 경남에서 종식돼야 한다"고 했다.

대선 행보를 위한 인지도 높이기 전략이 아니냐는 등 부정적 보도들이 쏟아졌고, 지난해 11월 말과 12월 초 도교육청과 도청 예산 심사에서 극에 달했다.

<경남도민일보>를 비롯한 KBS·MBC·경남CBS 등 도내 주요 매체는 무상급식 중단 사태에 대해 비판적 보도로 일관했다.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인 <경남신문>도 사실 보도에 치중하며 '무상파티 종식'에 수긍하지는 않았다.

19일 오후 2시 35분 경남도의회 제324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경상남도 서민자녀 교육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찬성 44명, 반대 7명, 기권 4명으로 가결되고 있다. 대형 모니터 아래에 앉아 있는 박종훈(왼쪽 아래) 경남도교육감은 굳은 표정이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도내 한 방송 매체 기자는 "지금껏 도내 보도 매체들이 홍준표 도정 2기만큼 이렇게 경남 도정을 일상적으로 감시·견제한 적이 있느냐. 지역 보도 매체는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보도 자체를 게을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송이든, 신문이든 지역 보도 매체들이 도민에게 얼마나 신뢰받고, 그 신뢰에 바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는지 근본적인 물음이 필요하다"고 되짚었다.

또 다른 지적도 있다. 송광태 창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언론 보도가 지속적인 견제보다는 일회성에 그쳤다. 도정과 도의회 상황에 대해 체계적인 접근도 필요했다"며 "특히 왜 '무상급식'이라는 용어를 줄곧 쓰는지 모르겠다. 급식에 공짜가 어디 있느냐. 다 도민 세금이다. 그런데 줄곧 이 용어를 놓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도내 시민사회, 정당의 한계? =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 초기 홍 지사가 진주의료원 단체협약 내용을 근거로 '강성노조 책임론'을 폈다. 이 논리가 서부 경남, 50대 이상을 중심으로 반향을 일으키자 한 노동계 인사는 "악마의 프레임"이라며 곤혹스러워했다. '공공의료 사수'를 내세우며 폐업에 반대해야 한다는 '당위'와 노조 조직률 10%인 한국에서 정규직을 향한 부정적 시선이라는 '불편한 현실'은 날카롭게 충돌했고, 그 사이 의료원은 문을 닫았다.

학교 무상급식 예산 지원 중단이 현실로 드러난 지난해 말 도내 시민사회단체는 경남운동본부를 꾸렸고,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1·2월 도당 위원장과 당 대표를 뽑는 등 내부를 정비해 2월 말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주민투표와 주민 발의를 병행한다는 새 해법도 냈다. 하지만 시간은 촉박했다. 3월 도의회 임시회 개최는 눈앞으로 다가왔고, 서민자녀교육지원 조례 제정 부당성 목소리를 높였지만 의원 55명 중 52명(한 명은 입당원서 제출)이 새누리당 소속·성향인 도의회는 조례 제정에 기꺼이 동참했다.

조유묵 마창진참여자치연대 사무처장은 "새롭고 폭발적인 반대 의제를 못 만들고, 막지 못했다. 도내 시민사회 역량이 취약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경남의 특정 정당 중심의 정치 역학관계에서 비롯된 면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새누리당 지방의원이 많은 부산·충북 등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경남처럼 됐을까"라고 반문했다. 이어 "홍 지사의 통제되지 않은 권력 행위를 멈출 계기가 필요하다. 홍 지사는 끝없이 갈등을 양산하는 다른 의제를 낼 것이다. 이를 막으려면 도내 시민사회와 야권이 합쳐 전면전을 치러야 할 판인데, 과연 그게 될까? 곤혹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불편한 진실도 있다. 두 사태 모두 지방의원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줬다. 하지만 정작 선거 때면 도민 관심은 지방의원보다 자치단체장에게만 향한다.

송광태 교수는 "광역자치단체장(홍 지사)의 이념성 문제로 촉발됐다. 지방의회, 시민사회도 있는데 어떻게 이런 독주 체제가 가능할까? 이런 독주 체제는 도민이 만들어줬다. 압도적인 일당 지배가 아니라면 이렇겠냐? 지방자치에서 주민 책임이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지수 도의원은 "학교 무상급식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 주력도 진주의료원처럼 특정 시민사회단체가 아닌 도내 대다수 학부모가 될 것이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며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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