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그후]2014년 6월 10일 자 1면 '세월호 잊지 말자'던 이원희 씨

기억이 시간 속에서 망각으로 둔갑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렇다 하더라도 '4·16 세월호'마저 그리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좀 슬프다.

지난해 '4·16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두 달가량 지났을 때다. 경남도민일보 1면 '함께 기억해주세요' 코너에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이원희(39·창원시 마산합포구) 씨 글이 게재됐다.

'아직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착한 사람들이라서가 아닙니다. …… 단지 더 이상 생명보다 자본의 논리가 앞서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에 동참해 주십시오. …… 세월호를 함께 기억해 주세요.'

당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세월호 참사 마산시민행동'이라는 모임이 있었다. 원희 씨도 여기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다시 9개월이 지났다. 원희 씨 기억 속에서도 세월호가 희미해진 건 아닐까라는 짐작은 곧 머쓱함으로 바뀌었다. '세월호 참사 마산시민행동'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고, 원희 씨 또한 함께 마음을 나누고 있다.

이원희 씨는 극장 영사기사가 본업이며 지난 1월부터 노동당 마산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지난해 12월 말에는 유가족을 초청해 대화도 나누고 마산시민행동 활동에 대해서도 전해주었다. 얼마 전에는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집 <금요일엔 돌아오렴> 창원 북콘서트에도 힘을 보탰다. 당장 한 달 앞으로 다가온 1주기 추모도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 회의에서 결정했는데요, 1주기 창동 추모행사 참자가를 모을 계획입니다. 인원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416명으로 했습니다." 중단했던 촛불문화제도 날이 좀 더 따듯해지면 기지개 켜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세월호 기억을 놓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가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위험에 노출돼 있는데, 국가는 최소한의 안전망도 되지 못하고 있죠. 따라서 진실규명 속에서 우리 안전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절박함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억울하고, 반드시 뭐가 이뤄져야 한다는 당위보다는,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당연히 동참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습니다."

그는 올해부터 노동당 마산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또한 세월호가 큰 자극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본업은 극장 영사기사다. 오전 8시 30분 영사실에 들어가면 마지막 영화가 끝나는 새벽 2~3시까지는 꼼짝달싹 못 한다. 식사와 볼일 또한 영사실에서 해결한다.

이런 바쁜 일상 속에서 1년 가까이 세월호 활동까지 더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무엇을 꼭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으면 계속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마산시민행동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서로 강요하지 않고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는 쪽입니다. 관련 행사를 열었는데 사람이 적다고 해서 실망하고 그러지도 않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세월호 관련해 뚜렷한 목적이나 계획을 두고 있는 건 아닌 듯했다. 마산시민행동 또한 앞으로는 세월호 아닌 또 다른 무엇을 위해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도 했다.

"내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다면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나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주변 여러 사람이 있기에 거기서 힘을 많이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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