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열전] 정장안 세팍타크로 경남체육회 감독

경남체육회 정장안(54) 감독은 한국 여자세팍타크로의 산증인이다. 세팍타크로 종목이 국내에 생소하던 1990년대 직접 종주국인 태국에서 연수를 받고 국내에 세팍타크로를 도입했다. 지난 1997년에는 국내 최초의 여자고등부 팀인 한일전산여고를 창단했고, 초대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정 감독을 만나 20여 년간 함께한 그의 세팍타크로 인생을 들어봤다.

정 감독은 하키선수 출신이다.

그는 하키 명문 김해고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재학 시절 청소년대표로 발탁될 만큼 기량도 탁월했다. 이후 부산 동의대로 진학한 그는 많은 실업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미련없이 군 복무를 선택했다.

1985년 ROTC 23기로 임관한 그는 11년간 군대 생활을 했다. 세팍타크로를 처음 접한 것도 군대에서였다. 그는 "국군체육부대에서 선수관리 업무를 맡았는데, 그때 대한체육회에서 세팍타크로 종목을 보급 중이었다. 군대에서는 그런 종목이 있구나 하는 정도였고, 제대 이후 본격적인 인연이 닿았다"고 설명했다.

제대 이후 한일전산여고에서 체육교사로 근무 중이던 그에게 대한체육회에서 연락이 왔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대비해 세팍타크로 종목을 키우고 싶은데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큰 관심이 없어 거절했지만, 대한체육회와 대한세팍타크로협회 관계자가 직접 정 감독을 찾아 설득했다.

정장안 세팍타크로 경남체육회 감독.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그는 "당시 나조차도 세팍타크로 종목이 생소했는데, 팀을 만들자고 해 당황했다"며 "학교에서도 한 번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제의해 1997년 9월 우리나라 최초로 여자팀인 한일전산여고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정 감독은 국비 지원을 받아 태국에서 6개월간 지도자 연수를 받고 1998년에는 국가대표팀 감독도 맡게 됐다.

그는 "국가대표팀이라 해도 우리 선수가 전부였을 정도로 열악했다. 1997년 전국 세팍타크로 선수권대회가 열렸는데 여자부에서 우리 팀만 참가했다. 상대가 없어 남자팀과 이벤트 경기를 하고, 우리 팀이 A, B팀으로 나눠 경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세팍타크로 종목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종목이다. 무술 동작을 연상케 할 만큼 난도가 높은 발차기를 구사해야 하고, 족구 공보다 작은 공을 받아넘겨야 하니 여자 선수들에겐 여간 힘든 운동이 아니다.

그는 "일반 학생을 선수로 키워내는 게 가장 어려웠다. 세팍타크로 공이 생각보다 아파서 도중에 못하겠다고 뛰쳐나간 선수가 있는가 하면, 주위에서 무슨 그런 운동을 하느냐고 핀잔을 듣는 경우도 많았다"면서 "지금은 아시안게임을 통해 세팍타크로 종목이 널리 알려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여자 선수들이 공만 넘겨도 국가대표가 되던 시절이었다"고 웃었다.

한일전산여고를 시작으로 창원전문대, 경남체육회 팀을 연이어 창단하며 연계육성을 완성한 정 감독은 2002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도 국가대표팀을 맡았다.

그는 팀 이벤트와 서클 이벤트 종목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15년 넘게 여자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활약했다.

올림픽 종목이 아니어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평가받는 아시안게임만 그는 4번을 경험했다. 부산을 시작으로 도하, 광저우, 인천 아시안게임까지 그는 여자대표팀 사령탑을 지냈다.

그는 여자세팍타크로가 아시아 상위권에 설 수 있었던 비결로 강도 높은 훈련을 꼽았다.

현재 국내 여자세팍타크로 선수는 120여 명에 불과하다. 여자고등부 8개 팀, 여자대학부 4개 팀, 여자실업팀 7개 등 모든 팀을 합쳐도 20개가 되질 않는다.

이런 현실에서도 우리나라가 아시아에서는 손꼽히는 세팍타크로 강국이 된 데는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그의 지도 철학이 한몫했다.

그가 지도하는 팀은 새벽, 오전, 오후, 야간 등 하루 4타임 운동을 소화한다. 국가대표팀도 예외는 아니다.

정 감독은 우리나라가 뒤늦게 출발한 만큼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등을 따라붙으려면 훈련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아시안게임에서 아직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했지만, 은메달, 동메달을 따낸 데는 다른 나라보다 많은 훈련량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아직 정상의 자리에 서지는 못했지만, 지금처럼 꾸준하게 훈련한다면 아시아 정상에 서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선수층이 얇다 보니 다른 종목보다 국가대표가 될 가능성도 크다. 조금만 기량이 뛰어나면 충분히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종목이기에 그는 선수들에게 항상 국가대표의 품격도 강조한다.

그는 "국가대표는 세계 각지를 돌며 대회에 참가하기 때문에 기량 이외에도 기본적인 인성이나 어학능력도 갖춰야 한다"면서 "특히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은 학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어학 수준은 최하위여서 대표팀은 물론 고교 선수들에게도 어학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일전산여고 선수부터 대표팀에 이르기까지 세팍타크로 선수들은 훈련과 마찬가지로 영어 공부에도 공을 들인다.

정 감독은 "지금도 고교 선수들은 매일 단어장을 외우게 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단어 시험도 친다"면서 "꾸준한 공부 덕에 세팍타크로 선수들은 대부분 기본적인 회화 능력은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에게만 품격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정 감독은 항상 솔선수범하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그는 매일 아침 7시면 운동장에서 선수들을 기다린다. 전날 과음을 해 감독님이 분명히 늦을 것이라는 선수들의 기대는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지도자는 선수들에게 항상 모범을 보여야 하고, 거울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없고, 선수들을 이끄는 데도 지장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여자세팍타크로의 1세대로서 종목 활성화에 이바지한 공로로 지난달 대한체육회에서 주는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정 감독은 세팍타크로 종목의 산실이었던 경남이 최근 들어 다른 지역보다 팀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고성군청에서 남자팀 해체를 선언하면서 경남체육회 팀으로 운영되고 있고, 탄탄한 연계육성으로 성장하던 여자팀도 최근 들어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관심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에서 팀 창단을 해준다면 명실상부한 전국 최강 팀으로 키워낼 자신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생소하게만 들렸던 세팍타크로라는 종목을 아시아 정상권으로 올려놓으며 지도력을 과시한 정 감독은 이제는 경남에만 집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난해를 끝으로 대표팀 감독직도 내려놓은 정 감독은 경남 세팍타크로의 부활을 넌지시 이야기했다.

"이전에는 대회에 나갔다 하면 금메달을 챙겨오기 바빴는데, 요즘은 금메달은커녕 메달이라도 땄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에요. 제 고향이 경남이기 때문에 경남 세팍타크로가 다시 한 번 이전 명성을 찾을 수 있다면 남은 지도자 인생을 모두 걸어볼 생각입니다."

하키 선수 출신으로 세팍타크로 명장이 된 정 감독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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