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아너소사이어티] (2) 신인규 ㈜도서출판 밀양 대표

경남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은 기업체 대표이거나 의사, 변호사 등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여러모로 눈길을 잡는 이가 있었다. 밀양에서 도서출판·인쇄업을 하는 신인규(48) 대표.

우선 편견이지만 출판·인쇄업이 수익이 많이 나는 직종이 아니라는 부분, 신 대표의 나이가 회원 중 가장 어리다는 부분. 말인즉슨 출판사를 해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기에 선뜻 기부를 결정했을까? 그것도 비교적 젊은 나이에. 혹시나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호기심까지 발동했다.

◇책은 나의 스승 = 밀양시청 앞 ㈜도서출판 밀양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비교적 작은 키에 단단한 몸매, 허름한 작업복이지만 단정하게 차려입은 모습, 그의 첫인상이었다. '부자 아버지'와는 조금씩 거리가 멀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랬다. 신 대표는 밀양 송전탑 문제로 아픔을 겪는 부북면 화악산 아래 평밭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거기가 650 고지 정도 되는 산골이거든예. 학교에 가려면 새벽에 일어나 산길을 따라 1시간 30분가량 걸어서 다녀야 했습니더. 등·하교하느라 시간 다 빼앗기고 공부할 환경이 좋은 편이 아니었지예. 나이 드신 부모님 부담 안 드리려고 당시 밀양전문대(현 부산대 밀양캠퍼스)에 전액 장학금 받고 입학했어예."

대학 입학 당시 부모님은 일흔에 가까운 연세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는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혼자 힘으로 학교를 졸업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지난해 12월 1억 원 기부약정을 하면서 경남 42번째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한 ㈜도서출판 밀양 신인규 대표.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대학교 다닐 때 밤에 은행 청원경찰을 했어예. 오후 5시 정도에 들어가면 은행업무 끝나고 문을 닫으면 본의 아니게 갇혀서 뒷날 8시에 나오는…. 그러니 자연스럽게 책보고 공부하고 할 수밖에 없었지예. 3년 정도 일했는데 그때 책 수천 권은 봤을 겁니더. 인생의 스승으로 삼는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도, 공자도 그때 만났습니더 허허. 내가 번 돈으로 생활하고 다른 단체에서 받은 장학금 등을 모아 오히려 부모님 용돈을 드렸습니더."

그렇게 학교를 졸업한 그는 한국화이바라는 건실한 회사에 특별채용됐지만 2년을 다니다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게 된다.

◇절박하면 통한다 = 신 대표는 그의 카카오톡에 '나는 1%의 가능성으로 100%를 완성하는 돈키호테'라는 글귀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인쇄업에 문외한이었던 그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도전정신 때문이었다.

"우리 인생은 종이로 시작해서 종이로 끝납니더. 그래서 제지업을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인쇄업을 시작한 거지예. 93년에 60만 원 자금으로 출발했지예. 리스로 인쇄기계부터 사놓고 밤에 마산 3·15탑 옆 인쇄 골목 업체에 가서 기술을 배웠습니더. 사정사정해서 일도와 주면서 배웠어예. 돌아와서 낮에는 배운 것 복습해보고 그렇게 한 달쯤 지나니 어느 정도 알겠더라고예. 저는 정말로 진심으로 절실하면 통한다고 생각을 합니더."

점차 사업은 자리를 잡아 나가는 듯했지만 그에게도 IMF 외환위기는 한 번에 넘을 수 없는 고난이었다.

"당시에 초동농공단지가 생겨 기업체가 많이 들어오면서 물량이 늘어나고 신이 났지예. 그런데 IMF로 그 업체들이 다 부도가 난거라예. 저도 외주 주면서 받은 어음으로 결제를 했는데 그게 돌아오는데, 2억 8000만 원 부도를 맞았습니더. 우리 회사 기물에도 다 빨간 딱지가 붙고, 눈물이 나더라고예. 그런데 절실하면 통한다고 안 했습니꺼. 더 악착같이 더 열심히 해서 10만 원 벌면 인건비 빼고 남는 것 다 은행에 갚고 그렇게 3년 정도 해서 다 갚았지예."

직접 인쇄기를 작동하고 있는 신 대표.

◇당신의 상상을 인쇄해 드립니다 = 다시 사업이 번창하면서 2013년 지금의 자리로 사무실과 공장을 확장·이전하게 된다. 혼자 시작한 사업은 직원이 8명으로 늘었고, 투자비 60만 원은 70억 자산으로 불어났다. 이제는 전국을 무대로 사업을 한다. 거래처 506곳. 이 중 20년가량 거래를 이어오는 곳이 200곳에 이른다. 봉투, 스티커, 책자, 도서, 달력, 포장지 등 종이에 인쇄되는 전 영역의 일을 하고 있다.

"'당신의 상상을 인쇄해 드립니다'가 사훈입니더. 고객이 바라보지 못한 부분까지 같이 고민하고 기획해서 인쇄물을 제작합니더. 아무튼 고객만족을 최선으로 하다 보니 믿고 맡기는 사람도 많고예. 허허."

사업이 제자리를 잡았지만 여전히 그는 기획뿐 아니라 회사 전체 업무를 살피면서도 여전히 지문이 닳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직접 인쇄기를 돌리고 있다.

"저는 4시간만 자고 생활합니더. 저처럼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은 바쁘게 움직여야 하지예. 그래서 곁가지는 쳐버리고 저녁 시간에는 업무를 위한 기획과 책을 읽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더."

그는 술, 담배, 화투, 볼링, 당구, 골프 등을 못한다. 아니 안 한다고 하는 것이 더 옳다. "오락 쪽은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고예. 담배, 술은 장기기증 때문입니더. 가족 전체가 장기기증을 약속했는데. 뇌사하면 제 몸이 아니니 관리를 해야지예."

㈜도서출판 밀양 사옥 앞에서 포즈를 취한 신 대표.

◇기부하면 삶이 달라진다 = 그의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20년 전부터 심청장학회를 설립해 지역의 조손·결손가정 아이들을 도우며 살아왔다. 지금까지 장학금을 준 사람은 248명이며, 조손·결손가정까지 포함해 지원한 돈만 약 7억 원에 이른다.

"가장 존경하는 유일한 박사님의 사회환원에 대한 철학과 경영철학을 이어받으려 하고 있고예. 지금까지는 남몰래 도움을 줬는데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을 하게 됐습니더. 그리고 제가 잘살 수 있었던 기회에 대한 보답입니더. 대부분 사람이 돈이 모이면 기부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지예. 그런데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더. 이런 일을 해야 좋은 일들이 더 많이 생긴다고…. 회사 건물도 국가에 환원하기로 공증해뒀어예."

그는 사회에 봉사하고 기부하는 마음이 자녀에게도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고 아이들에게는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이라는 유산을 상속할 계획이다.

"제가 번 돈은 혼자서 번 돈이 아니죠. 아내 도움이 가장 컸지만 사회의 도움으로 가능한 것이지예. 딸내미, 아들내미 둘을 키우는데 아이들 이름으로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해 명예를 남겨 주자는 데 아내와 합의를 봤습니다. 그게 아이들을 더 위한 일이라고…."

이처럼 그는 가족 4명 모두 아너소사이어티 가입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지금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 명예의 전당에 걸린 현판 사진 속에 신 대표는 작업용 앞치마를 두르고 인쇄기 앞에 서 있다. 아직은 외로워 보이지만 머지않아 그 현판 속에서 온 가족의 행복한 웃음이 넘쳐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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