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기록·보전 노력 돋보이는 부산…그 못지않은 역사 간직한 창원은 지금…

얼마 전 부산에서 모처럼 어슬렁거릴 기회가 있었다. 부산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약 9년 동안 살았던 곳이다. 우선 옛 추억을 되살려 용두산공원에 올랐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부산은 제법 많이 변해있었다. 시청이 있던 곳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롯데쇼핑몰이 버티고 있었고, 멀리 남항대교와 부산항대교도 예전엔 없던 구조물이었다.

용두산에서 내려와 광복동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다 국제시장 골목을 산책했다. 영화에 나온 꽃분이네 가게까지 확인한 후, 이번엔 보수동 책방골목에 들렀다. 이곳도 예전에 없던 시설이 눈에 띄었는데, '보수동 책방 골목문화관'이라는 건물과 '어린이 도서관'이 그것이었다.

대청동 쪽으로 조금 더 걸으니 예전 '부산 미문화원'이 있던 건물이 '부산 근대역사관'으로 탈바꿈해 나그네를 맞이했다. '박물관' 대신 '역사관'이란 이름이 반가웠다. 이왕이면 '역사기록관(archives)'으로 했으면 더 좋았겠다 싶었다. 실제 내부로 들어가니 1층에 '근대자료실'이 있었고, 근대사 자료 발굴과 조사, 연구서 간행 등 아키비스트(archivist·기록연구사)가 하는 일도 이곳의 업무에 포함되어 있었다. 전시실에 있는 것들도 도자기나 장신구 같은 유물보다는 사진과 문서기록물이 더 많았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기구인 동양척식주식회사였다가 해방 후 미군의 숙소, 1949년부터 미문화원으로 사용되던 중 1999년 마침내 부산시가 반환받은 것이다. 근현대 역사가 서린 곳이니만큼 부산시가 이 건물의 용도를 잘 정한 것 같다.

부산에는 이곳 말고도 옛 경남도지사 관사에 '임시수도기념관'이 있고, 독립지사 백산 안희제 선생의 백산상회가 있던 곳은 '백산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임시수도 정부청사로 쓰였던 옛 경남도청 건물은 현재 동아대학교 박물관인데, 3층은 '임시정부청사 기록실'로 쓰이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영주동에 '부산 민주공원'도 있다. 이곳에 있는 지하 1층, 지상 3층, 전체면적 5278㎡에 달하는 '민주항쟁기념관'은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공연장 외에 민주주의 자료보존실과 연구실을 갖추고 기록관 역할까지 하고 있다. 시민과 청소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에 비해 창원은 어떤가? 3·15 국립묘지 안에 기념관이 있지만 전시시설에 불과할 뿐 기록관 기능은 전혀 없다. 진해 중앙동에 '군항 마을 역사관'이 있다곤 하나 너무 협소(157㎡)해 있는 기록물도 다 수용하지 못한다는 게 권영제 으뜸마을추진위원장의 하소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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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은 일제의 수탈도시였고 해방 후엔 3·15의거와 부마민주항쟁, 6월 민주항쟁을 이끌어낸 민주성지이기도 하다. 또한 창원은 현대 산업도시이자 노동자의 도시고, 진해는 대표적인 군항도시다. 이런 도시의 역사를 간직한 사료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런 고민은 하지 않고 독재부역자 이은상 팔아먹을 궁리나 하고 있으니 도시의 격은 자꾸 떨어져 간다. 시민으로서 그나마 남아 있던 긍지마저 사라질 지경이다. 뭐? 광역시인 부산과 기초단체인 창원을 비교하는 건 무리 아니냐고? 그럼 인구 28만 명에 불과한 전북 군산에 가보라. 그런 말이 나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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