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간다] (3)남해바래길

"봄이다" 하고 힘껏 외치고 싶은데 칼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남쪽 마을에는 이미 봄이 시작되었다고 떠들지만 팡팡 터진 꽃망울은 아직이다. 그래도 봄을 찾아 나섰다. 남해바래길을 걸으며 초록빛 들판과 푸른 바다를 안으러.

남해바래길 10개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하기 전 남해군청 홈페이지 남해바래길 게시판을 훑었다. 때마침 오는 토요일 제153차 토요걷기를 한다는 공지를 발견, 곧바로 전화를 걸어 신청하고 7일 오후 1시 30분까지 남해군 실내체육관 앞에 가기로 했다.

섬은 어디를 가나 파릇파릇한 마늘순이 돋아나 있다. 일렁이는 윤슬(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과 소박한 마을 풍경까지 어우러져 이곳이 보물섬임을 알리고 있었다.

남해바래길 인솔자를 따라 1코스 다랭이지겟길을 여유롭게 걷겠다는 단순한 생각은 착각이었다.

실내체육관에 도착하자 40인승 버스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등산복을 입은 꾼들이 빼곡했다.

바래길사무국이라고 소개한 사람들이 대열을 정리하고 1코스에 대해 설명했다.

남해바래길은 어머니들이 가족들의 먹을거리를 위해 갯벌이나 갯바위 등으로 바래하러 다녔던 길을 말한다. '바래'는 물때에 맞추어 갯벌과 갯바위 등에서 해초류와 해산물을 캐는 행위를 일컫는 남해 토속말이다.

2010년 11월 27일에 조성사업이 시작된 남해바래길은 현재 10개 코스가 완성됐다. 1코스 다랭이지겟길, 2코스 앵강다숲길, 3코스 구운몽길, 4코스 섬노래길, 5코스 화전별곡길, 6코스 말발굽길, 7코스 고사리밭길, 8코스 동대만진지리길, 13코스 이순신호국길, 14코스 망운산노을길로 나뉜다. 총 130㎞, 도보로 45시간이다.

40인승 버스는 20분 정도 이동해 선구보건진료소 앞에 섰다.

이날은 평산항에서 시작해 사촌해수욕장을 거쳐 다랭이마을까지 이어지는 1코스 16㎞ 중 선구에서 시작하는 7.3㎞ 길을 걸었다. 남해군 남면 서쪽에서 남쪽으로 향한다.

선구몽돌해변과 향촌조약돌해변이 이어져 있다. 크고 작은 몽돌이 지천이다. 상주해수욕장, 송정해수욕장보다 덜 유명해 여름에도 찾는 이가 적다는 작은 해변이다.

선구보건진료소에서 선구몽돌해변으로 가는 길. 일부러 언덕을 지나게 바래길이 만들어져 있다.

향촌 작은 항구에는 배들이 봄볕을 받으며 정박해 있다. 낚시꾼도 심심찮게 보인다.

해변에서 향촌전망대까지 산을 올랐다. 비탈진 밭에 돌산갓, 시금치, 무, 배추라고 적힌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눈이 부셨다. 날씨가 조금 흐린 탓에 저 멀리 자리 잡은 섬을 깨끗하게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걷고 또 걸었다. 한 할머니가 허리를 숙여 밭일을 하고 있고 작은 축사에 있던 소들이 운다.

남해 빛담촌이라는 마을이 나타났다. 즐비한 펜션이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림 같은 집들이 산을 등지고 바다를 보고 있다.

향촌조약돌해변에서 바라본 남해 앞바다. 지나쳐온 선구마을이 저 멀리 보인다.

다랭이지겟길은 숲이 아니라 밭으로 난다. 그래서 보이는 건 마을과 푸른 바다다. 도시가 하나도 그립지 않은 이유는 어제와 다른 오늘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리라.

빛담촌 너머 언덕을 넘고 포장도로를 계속 걸으니 가천 다랭이마을이 보인다. 선구에서 2시간 정도 걸은 후였다. 갑자기 사람이 많아진다. 순식간에 관광지에 온 듯하다.

다랭이마을은 1코스의 정점이다. 남해 코스 중 가장 아름답다는 다랭이지겟길, 제주 올레길과 닮았다.

45도 경사 비탈에 108개 층층계단, 680여 개의 논이 펼쳐진 마을. 집도, 논도, 우리도 산허리를 따라 구불거리며 바다를 바라봐야 했다.

마을에는 매화와 산수유가 소담하게 폈다. 지천으로 깔린 허브를 손바닥으로 스치니 숲 냄새다.

다랭이마을에 핀 산수유.

바래길사무국에서 남해유자막걸리와 시금치나물, 도토리묵을 간식으로 내놓았다. 굳이 맛집을 찾지 않아도 됐다.

다랭이마을에서 해풍을 맞고 재배된 유자잎을 빚어 만든 막걸리는 벨기에 맥주 호가든과 비슷한 특유의 맛을 냈다. 시금치나물은 간만 맞추면 그만이다.

다시 실내체육관에 섰다. 다다음주 제주 올레꾼을 초청해 평산항에서 다랭이마을까지 걷는단다.

아마도 찬란한 봄과 마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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