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시민 대상 인문학 강좌 붐…창원 창동시민대학·거창 '파랗게날'등 강좌 개설 잇따라

플라톤, 데카르트, 촘스키 등 사상가, 언어학자가 거듭 언급되는 자리. 대학교수가 '언어와 인간'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자 학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대부분 40대 이상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더러 있다. 메모를 하고,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질문도 한다. 수업에 대한 반응도 즉각적이다.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하고, 교수의 유머에 폭소를 터트리기도 한다. 대학 강의실이 아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의 한 소극장인 SO극장이다. 지하에 있는 작은 극장에 수강생 30여 명이 찾았다. 지난 10일 오후 7시에 열린 창동시민대학 첫 수업 표정이다. 내년 2월까지 매주 화요일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다양한 주제의 강의가 이어진다.

◇인문학 강좌의 진화 = 최근 이처럼 시민단체, 대학, 도서관 등이 정기적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이 중 시민이 자발적으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인문학 강좌의 진화인 셈이다. 창동시민대학과 거창의 연구공간 '파랗게날'이 그 예다.

지난 10일 오후 7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SO극장에서 창동시민대학이 처음 열렸다. 강좌를 들으러 온 사람 대부분이 40대 이상이다. 메모를 하고,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질문도 한다. 수업에 대한 반응도 즉각적이다.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하고, 교수의 유머에 폭소를 터트리기도 한다. /박일호 기자 iris@idomin.com

창동시민대학은 경남대 NGO협동과정 대학원 교수, 졸업생이 주축이 된 NGO포럼에서 기획했다. 이들은 앞서 4년가량 인문학 강좌를 매달 열어온 경험이 있다. 지난 2011년 5월 '행복한 인문학 교실'로 인문학 강좌의 물꼬를 텄다. 마산 합포도서관에서 시작한 '행복한 인문학 교실'은 지난해 경남대로 자리를 옮겨 이어가고 있다. 매월 강연자를 초청해 진행하는 독서모임인 '책 읽는 저녁'도 6년 이상 진행했다. 이달 시작한 창동시민대학은 '행복한 인문학 교실', '책 읽는 저녁'의 경험을 토대로 시민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는 인문학 강좌다. 대학 강의실이 아니라 시민이 더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시내를 장소로 택했다.

거창의 연구공간 '파랗게날'은 지난 2011년 8월부터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지리산·덕유산·가야산 자락의 명승 고택에서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인문학자 출신의 이이화 대표 연구원이 혼자 꾸려오다 올해부터 주요 참석 회원들과 운영진을 구성했다.

◇왜 인문학 강좌인가 = 왜 인문학 강좌가 생겨나는 것일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는 학력이 높아진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생겨나고, 인문학 중요성이 대두하면서다.

염재상 창원대 열린인문학센터장은 "인생 경험이 쌓인 이들에게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인문학에 관심이 생기고 더 와 닿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40대 이상의 청중들이 강연장을 메우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강인순 경남대 인문과학연구소장은 "인문학은 인간의 삶과 가치를 부여하는 학문인 만큼 필요하고 중요하다. 당장 드러나지 않더라도 지역문화를 아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도 인문학이 바탕이 된다. 인문학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강좌들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창동시민대학을 찾은 손순정(51·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씨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인문학 수업을 들으러 왔다. 집에서 살림만 하다 얼마 전 철학 강의를 들어보니 와 닿았다. 앞으로도 시간이 되면 자주 찾고 싶다"고 말했다.

◇대중화의 딜레마 =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학계에서는 인문학이 학술 진흥이 아니라 대중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대학에서 인문학은 여전히 '찬밥'이다. 전국적으로 인문학과의 통폐합이 진행되고 있다. 경남에서는 지난 2013년 경남대 철학과 폐과 결정도 있었다. 이러한 대학 현실에서 인문학계는 대중 인문학이 느는 것이 무조건 반갑지만은 않다는 반응도 있다.

한 인문학과 교수는 "대학에서 학생에게 인문학을 가르칠 기회는 줄어들고,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는 늘고 있다. 인문학 강좌가 많이 생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심도 있는 인문학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일반 대중이 널리 알 수 있는 지식 교양 수준의 인문학만 강조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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