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성 저 〈IT가 구한 세상〉 리뷰…디지털 정보 얼마든지 조작 가능 "양심 있는 IT 전문가 필요"

21세기는 디지털에 대부분 정보가 기록돼 있다. 과거엔 정보가 신문이나 책에 물리적으로 담겨 있기에 조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조작하더라도 티가 나기 마련. 반면 디지털로 기록된 정보는 얼마든지 눈에 보이지 않게 조작 가능하다. 국가기관이나 수사기관이 작심하고 디지털 정보를 조작·왜곡한다면 멀쩡한 사람도 범죄자나 간첩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손꼽히는 IT 전문가인 김인성 전 한양대 교수는 최근 나온 책 <IT가 구한 세상>(김인성 지음/홀로 깨달음)을 통해 이와 관련된 여러 사건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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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어떻게 간첩을 만들었나 = 김 교수는 지난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에 대한 '간첩 조작 사건'에도 디지털 정보가 왜곡됐다고 한다.

유 씨는 중국 옌볜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스마트폰으로 찍었기 때문에 사진에는 날짜와 위치 정보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 사진 원본을 제출한 게 아니라 인쇄본을 제출하면서 북한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제출한 인쇄본에는 날짜와 위치 등 어떠한 정보도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정원의 '짜깁기'가 가능했다. 이후 변호인이 유 씨의 하드디스크에서 원본 사진을 찾아냄으로써 결백을 증명했다. 국정원의 정보 왜곡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 씨가 중국 옌볜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시간에 국정원은 유 씨가 북한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이 주장에 '맞추기' 위해 같은 시간 유 씨가 중국 옌볜 노래방에서 찍은 사진을 빠뜨린다.

유 씨가 북한에 밀입북하지 않았다는 이들 증거가 빠지면서 유 씨는 간첩으로 몰리게 됐다. 그러나 디지털 전문가들에 의해 유 씨의 스마트폰 노트북 데이터가 복구되면서 역으로 국정원이 궁지에 몰리게 됐다. 결국 국정원은 출·입경 기록을 조작하는 '무리수'를 두다 덜미가 잡힌 것이다.

◇범죄자로 둔갑된 환경운동가 = 지난 2011년 1월 28일 저명한 환경운동가인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최 대표가 환경운동연합 자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고, 환경재단 장학기금을 횡령했으며, 인허가 청탁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알선 수재)고 주장했다.

재판의 쟁점은 회계용으로 만들어진 엑셀 파일이었다. 최 대표가 범죄를 저지르려고 엑셀 문서를 수정했을 것이고, 검찰은 파일 수정 시간을 통해 최 대표가 회계 파일에 손을 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서의 작성·수정 시간을 바꾸는 프로그램은 많이 있으며, 컴퓨터마다 시간 정보가 달라서 파일 작성·수정 시간은 큰 의미가 없다.

또한 검찰은 같은 이름의 회계용 엑셀 파일이 2개 있는데, 두 파일의 내용이 다르다며 이를 통해 최 대표가 회계용 엑셀 파일에 손을 댔다고 다시 주장했다. 그러나 엄밀하게 검증해본 결과 검찰에서 주장한 엑셀 파일 중 하나는 임시 폴더에 있는 엑셀 파일이었다. 오피스 프로그램은 문서 복원을 위해 주기적으로 문서를 임시 폴더에 저장한다. 따라서 임시 폴더에 같은 제목의 파일이 시간대별로 여러 개 저장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검찰은 이 사실을 은폐한 채 '같은 이름의 파일인데 내용이 다르다'는 근거만을 가지고 최 대표를 몰아세웠던 것이다.

이에 2심 재판부는 횡령 혐의에 대해서 무죄로 판결하고,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난 알선 수재 혐의만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객관적·중립적 IT 전문가 육성해야 = 이렇듯 IT 전문가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유 씨와 최 대표는 큰 곤경에 처했을 것이다. 김 교수는 이 외에도 2012년 통합진보당 온라인 부정 경선 진실 규명, 세월호 노트북과 CCTV 복구 과정을 소개하면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전문가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김 교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공안사건만 걸리면 공정성이 무장해제돼 국정원의 조작 증거를 방어하기 위해 법정에서 거짓 진술을 하기도 한다"며 "사설 포렌식(데이터 복구, 검증) 업체들은 엄청난 이권으로 인해 이런 조작을 방조할 뿐만 아니라 경쟁적으로 동참하고 있고, 국내 유수 대학의 포렌식 학과들도 마찬가지"라고 암담한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앞으로 세상을 망가뜨리는 것도, 구하는 것도 IT에 있다고 김 교수는 강조하고 있다. 양심 있는 IT 전문가들을 육성하는 일. 김 교수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숙제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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