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이구나.' 왠지 어설퍼 보이는 표정, 좀은 큰 듯한 교복, 그리고 약간의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되는 낯빛으로 두리번거리며 교문을 들어서는 아이들은 첫눈에 여고 신입생임을 알아볼 듯했다.딸아이 학교에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터라 학교 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많다. 무려 600여 명이나 되는 단발머리 아이들을 보며 바로 이 교정에서 보냈던 나의 중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1978년 5월, 나는 중학교 1학년 촌뜨기 전학생으로 이 학교 교문을 들어섰다. 시골학교에서는 나름대로 똘똘하다고 자부했었는데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어마어마한 학교 규모와 한 반에 70여 명, 열다섯 반에 달하는 많은 아이는 나를 주눅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콩자반, 김치뿐인 찬으로 밥을 먹으며 친구들의 도시락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봐야 했던 마음은 피폐해지기만 했다. 넒은 세상, 큰 학교에서 공부해 성공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던 부모님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과 결핍감에 시달리며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지냈다.

이런 나의 마음을 바로 다잡아 세우게 한 것은 같은 반에 다니고 있던 지체장애 친구였다. 아주 어렸을 때 자기를 돌보던 사람이 땅으로 떨어뜨려 평생 심각한 장애를 안고 살게 된 아이였다. 그 아이와 또 다른 한 명, 셋이 친구가 되어 삼 년 내내 단짝으로 학교를 다녔다.

아름다웠으나 계단이 많았던 학교는 어찌 보면 아침마다 우리에겐 장애물 경주장 같았다. 한 명은 가방 세 개를 들고 다른 한 명은 친구를 업고 교실까지 당도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곤 했지만 그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학교 졸업식장에서 나와 연실이가 선행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기쁘기보다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우리는 친구니까, 그리고 어려운 친구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가슴 속에 묻혀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을 다시 떠올린 것은 아마도 그 아이들 중에도 그때의 나처럼 힘들고 어려운 아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똑같이 싱그러운 뺨과 빛나는 눈동자를 지닌 아이들이지만 더러는 상처입고 더러는 눈물로 가득 찬 가슴을 지닌 아이도 있으리라. 하지만 가난했던 자취생, 중학교 1학년부터 스스로를 책임져야 했던 그 아이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남보다 적게 가졌으나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행복을 배웠고 자신감을 회복했다. 이 깨달음은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나는 그 때 배운 작은 진리를 열심히 실천하며 살려 애썼고, 바로 오늘 입학식에서 신입생 환영사를 하는 학생대표인 내 딸을 보며 보물찾기에 성공한 아이 같은 기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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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딸, 그리고 우리의 딸들아, 좀 더 사랑하고 나누다 보면 삶에는 수많은 기쁨이 온단다. 너희들의 젊음, 그 빛나는 아름다움이면 세상엔 못할 일이 없단다. 그러니 가슴을 당당히 펴고 세상에 너의 목소리를 외치거라. 삶은 때로 슬프나 수많은 기쁨이 기적처럼 숨겨진 보물찾기란다. 그러니 부디 너의 노력으로 삶이 숨긴 보물을 찾아 내거라.

/윤은주(수필가, 한국독서교육개발원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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