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늘 발맞췄던 둘 삶의 가치 공유하며 백년해로

함께한 지 20여 년 된 김수한(47) 김혜진(44) 부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애정을 잃지 않고, 또 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삶의 가치가 같기 때문일 겁니다. 불평등, 생태 파괴, 소수 권리 외면 등 이 사회에 잘못된 부분이 너무 많잖아요. 우리 삶부터 변화하자 해서 농촌(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들어가 살고 있습니다. 함께 녹색당 활동도 하고 있고요. 다른 취미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것에서 부부간 정을 더 깊이 쌓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둘은 1992년에 경희대학교 기독교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알게 됐다.

'경상도 남자' 수한 씨는 이것저것 따지는 '서울 깍쟁이'같지 않은 혜진 씨가 좋았다. 하지만 혜진 씨는 '연애' '남자' 이러한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 관계로 한동안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수한 씨는 휴학 후 서울 빈민촌 활동가로 지냈다. 그 1년간 연락 없이 지냈다. 수한 씨 복학 이후 둘 관계는 발전했다.

"수한 씨 다니던 교회로 제가 옮기면서 가까워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남자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밀어내려 했습니다. 그럴수록 더 적극적으로 다가오더군요. 그러다 보니 마음이 조금씩 열리게 됐습니다."

김수한·김혜진 부부는 같은 삶의 가치가 꾸준히 애정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라 말한다.

4년여 연애 기간 둘은 1년가량 빈민촌에서 함께 생활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다르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생 함께해도 되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1996년 말에 예정에 없던 혼인신고를 했다.

"그때도 결혼에 대한 생각까지는 크게 없었습니다. 저희가 동성동본인데, 당시 특별법이 제정될 때였습니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수도 있겠다 싶어 혼인신고를 했죠. 동성동본 때문에 양쪽 집안에서 걱정하고 그런 건 없었습니다. 김해 김씨가 워낙 흔하다 보니 저희 부모님도 그렇고 동생네도 동성동본이에요."

그리고 프랑스로 유학을 함께 떠났다. 둘 관계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시간이기도 하다.

"남의 나라에 적응해 공부한다는 게 그리 쉬운 건 아니더군요. 계획했던 공부를 제가 먼저 끝내고도 프랑스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수한 씨는 힘든 공부를 하면서 나한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오히려 저를 챙겨줘야 하는 부분이 많이 힘들었던가 봅니다. 제가 먼저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2년 정도 떨어져 있었죠. 부딪칠 일이 없다 보니 그러한 갈등도 자연스레 극복할 수 있었죠."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두 사람이지만, 양가 어른들 성화도 있어 2008년 5월에 간소한 결혼식을 올렸다.

긴 시간 함께했지만 서로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을 알기에 부딪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혜진 씨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는 편은 아니다. 수한 씨 눈에는 답답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반대로 수한 씨는 성격이 급하다. 해야겠다 싶은 일은 저지르고 본다. 또한 수한 씨는 20대 시절에는 애인 앞에서도 눈물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혜진 씨 눈에는 이제 세상사에 시달리다 보니 거칠고 질겨진 것 같다. 그 본성까지 달라진 건 아니지만 말이다.

지금껏 그랬고, 또 앞으로도 같은 곳을 바라볼 부부는 이렇게 말한다.

"둘 다 첫 연애 상대다 보니 사랑과 정이 좀 더 깊이 묻어있는 것 같아요. 그때는 수한 씨가 저를 더 좋아했지만, 지금은 제가 더 사랑한다고 항상 말합니다. 미래에 대한 삶의 가치를 함께 만들어가며 지금처럼 사랑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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