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내 맘대로 여행] (52) 전라북도 정읍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세월을 거슬렀다.

그 시간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큰 획을 그은 동학혁명이 있었고, 조선시대 서민의 삶을 그대로 재현한 마을이 있었다.

전라북도 정읍으로 떠난 여행은 뜻밖의 선물과도 같았다.

한창 뭔가를 배우고 결과를 내놓아야 했던 시기에는 되레 뿌옇기만 했던 세상이 이제야 선명해지는 것은 현장이 주는 생생함이다.

가슴 아픈 역사가 오롯이 마음에 와닿는 것도 그저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내어주는 빈자리다.

정읍은 동학혁명의 발상지이다.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전인 1894년, 농민봉기에서 비롯된 갑오동학농민혁명의 역사가 그대로 숨 쉬는 동학농민혁명기념관(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을 찾았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내부 모습

이곳에 오기에 앞서 전봉준 고택에 먼저 들렀다.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에 자리 잡은 전봉준 고택.

동쪽으로부터 부엌과 큰방·윗방과 끝방이 나란히 달린 집으로 남부지방 일반 민가의 구조와는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전봉준 장군은 농사일과 동네 서당의 훈장 등을 지내며 가난하게 살고 있었는데, 고부 군수 조병갑이 만석보를 설치하고 과중한 물세를 거두는 등 농민에게 각종 수탈을 자행하자 고종 31년(1894) 분노에 찬 1000여 명의 농민을 이끌고 고부 관아를 공격해 조병갑의 잘못을 응징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내부 모습

이 사건이 동학농민혁명의 불길을 댕기는 서막이 됐다.

혁명 이후 불태워졌다가 보수됐다.

갑오동학농민혁명은 반봉건의 민주화와 반외세의 자주독립을 위한 우리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중항쟁이다. 비록 피로 얼룩진 미완의 혁명이었지만 당시 고단하기만 했던 백성의 모습과 참세상을 꿈꿨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해 엄숙함마저 감돈다.

기념관을 둘러본 후 농민군이 관군을 상대로 처음으로 대승을 거둔 황토현 전적지나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인 말목장터 등을 둘러보면 '동학혁명의 발상지'인 정읍으로의 여행이 의미를 더할 듯하다.

이어 타임머신은 100년 전 조선 후기 모습을 그대로 갖춘 송참봉 조선동네로 향했다.

행정구역상 이평면 청량리지만 거의 영원면과 부안군의 경계에 붙어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도 영원면 소재지에서 부안 백산 방향으로 2㎞ 정도에 자리 잡고 있는데, 나지막한 초가집이 수십 채 옹기종기 붙어 있다.

코뚜레를 한 소가 우렁차게 울어대고 발 아래로 자유로운 닭들은 열심히 모이를 쪼아대고 있다.

송참봉으로 불리는 송기중 씨가 개인 재산을 털어 재현한 마을인데 그 모습이 참으로 정겹다.

전통마을 재현은 1995년부터 계획되었는데, 2005년 8월 사업에 착수해 2008년 12월 5일 완공됐다. 이 마을을 짓는 데 도움을 준 분들이 인근 동네 할아버지 등 주민들이란다.

산채와 주막, 서당과 뒷간, 축사 등 마을 사람들은 해 뜨면 일하고 해지면 공부하는 마음으로 여전히 조선 후기 마을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곳이다.

시꺼멓게 그을린 아궁이를 지나 뒤편 아래에서 지붕으로 높이 솟아 있는 굴뚝으로 연기가 솔솔 피어난다. 어릴 적 할머니네 마을에 들어서면 불어왔던 시골 냄새가 기억을 깨운다.

'송참봉 조선동네' 모습

흙벽과 볏짚으로 지어진 초가집인데 담장의 형태는 제각각이다. 대나무와 싸리나무로 만든 담도 있고 돌담과 낮은 흙담도 있다.

요즘 곳곳의 한옥마을은 현대식으로 해 불편함이 없게 되어 있지만 이곳은 최소한의 현대식 시설이라고 말하기에도 멋쩍을 정도로 옛날 방식을 따랐다.

온돌방 체험은 아궁이에 불을 때 밥을 짓고 구들을 데우고, 밤에는 호롱불을 밝혀야 한다. 전통 초가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됐다면 하루 정도 숙박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듯하다. 숙박비는 비교적 저렴하다. 1인당 1만 원 선이다. 예컨대 4인실은 4만 원, 6인실은 6만 원을 받는다.

'송참봉 조선동네' 모습

마을 입구에는 주막집이 있는데, 인근 마을에서 직접 키우고 재배한 농산물과 동네 아주머니들의 솜씨로 상을 차려준다. 누룽지와 엿 등 주전부리 역시 옛날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KBS <해피선데이-1박2일>과 SBS <런닝맨> 촬영지로 명성을 얻기도 했지만 여전히 이곳은 100년 전 그 시절의 한가운데서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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