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매주 화요일 요리하러 부산 가는 임하연 씨

임하연(27·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중리) 씨는 화요일마다 부산행 버스에 오른다. 음식 재료를 가득 실은 손수레와 함께.

하연 씨는 무용을 전공했다. 마산에서 중학교까지 나온 후 부산에 있는 예고에 진학했다. 당연히 대학도 무용 관련 학과를 선택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대학에 들어가니 너무 힘들었어요. 무용을 하는 게 하나도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매일 술만 마시고 살았어요. 매일 매일요.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을 보니까 다들 자기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거예요. 무언가를 거창하게 이루지는 않았어도 다들 무언가를 향해 가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전 막막하기만 했어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하연 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가 계속 방황하고 학교도 잘 안 나오니까 걱정이 됐던 모양인지 동아리 친구가 어느 날 요리라도 배워보는 게 어떠냐고 그러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고마운 일이죠. 그 친구 덕에 요리를 배우게 됐으니까요."

조금씩 요리에 흥미가 생겼다. 적어도 대학을 다닐 때처럼 막막하진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기회가 찾아왔다. 부산 '나유타 카페'의 점주 모집 공고를 보게 된 것이다.

'나유타 카페'는 채식식당이다. 육류는 물론 달걀, 벌꿀, 유제품까지 모든 동물성 제품을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Vegan Vegetarian)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지향한다. 하나의 가게를 요일별로 다른 점주가 맡는, 일일점주 시스템으로 운영하며 고정된 메뉴도 없다. 그날의 메뉴는 SNS를 통해 알린다.

하연 씨는 채식주의자가 아니지만 채식주의자를 위한 음식을 만든다.

"모집 공고를 밤에 봤는데 정말이지 하고 싶은 거예요. 이건 반드시 해야겠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문자 메시지를 밤에 보내면 실례니까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리는데 그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어요."

하연 씨의 열정은 통했다. 그렇게 매주 화요일 부산으로 가게 됐다. 장은 대체로 마산어시장에서 본다. 식재료는 전날 미리 손질한다. 차가 없는 하연 씨에게 부산 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무거운 손수레가 함께하기 때문. 버스를 혼자 타고 오르는 것도 힘들 정도로 짐이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힘든 것은 메뉴 구상이다.

"매주 시험 보는 기분이에요. 그 주에 내놓을 메뉴를 구상해서 집에서 미리 만들어 보거든요. 아, 여기서 치즈나 우유 조금 넣으면 정말 맛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솔직히 들어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까…. 해보고 싶은데 맛이 없어서 못해본 메뉴도 많아요. 어떤 메뉴를 할까 찾아보다가 매크로바이오틱(macrobiotic·제철 음식을 뿌리부터 껍질까지 통째로 먹는 조리법으로 일본의 장수건강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을 알게 됐어요. 메뉴에 접목할 수 있을 것 같아 매주 요리교실에 나가 배우고 있어요."

음식을 만드는 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하연 씨도 음식을 먹는 이가 맛있다고 해줄 때 가장 기분이 좋다.

"단골이라면 단골이라고 할 수 있는, 거의 매주 혼자 오는 남자 손님이 있어요. 항상 말씀도 없이 식사만 하고 가세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손님이 SNS에 음식이 정말 맛있다고 댓글을 남겨놓으신 거예요. 정말 기쁘더라고요. 아이러니긴 해요. 전 채식주의자가 아니거든요. 그런 제가 채식주의자를 위한 음식을 만든다는 게 이상할 수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생각해요. 채식하는 분은 물론 채식을 하지 않는 분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고요. 채식하는 분들이 마음 놓고 외식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특별한 것이니까요."

장바구니를 든 하연 씨.

이윤이 얼마나 남는지 물었더니 하연 씨가 빙긋 웃는다. "지금은 솔직히 안 남을 때가 더 많아요." 그럼에도 하연 씨는 부산으로 향한다.

"28년을 살았지만 아직 삶을 살아가는 건 서툰 것 같아요. 아직도 제게 분명한 것들이 없기도 하고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지속가능한 일인지 의문투성이지만 그래도 세상에 좋다는 것에 흔들리지 않고 내게 가치 있는 것을 찾을 줄 아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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