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항일독립운동, 현장을 기억하다] ⑴ 기획을 시작하며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지 70년 되는 해입니다.

폭압적이면서도 교활한 통치 전략으로 한반도를 농락한 일본 제국주의 잔재는 해방 70년이 된 지금도 우리 정치와 경제, 문화, 생활, 정신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해방 이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친일군사독재정치 세력은 집권 기간 항일독립운동사를 폄훼한 것도 모자라 독재 정치를 더욱 강화하는 정신적 수단으로 역이용해 왔습니다.

문민정부라 일컫는 김영삼 정부는 일제와 단절한다는 의미로 조선총독부(당시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을 해체하는 등 '역사 바로세우기' 사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뼈아프게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근대 역사와 관련 유적을 반일 감정에 의존해 '공백'으로 둔 오점을 남겼습니다.

이 시련 속에도 양심적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항일독립운동사 연구는 면면이 깊고 넓어졌습니다. 특히 문헌 사료를 중심으로 한 역사적 맥락 분석에 관한 연구가 활발했습니다.

한데 정작 항일독립운동 역사적 현장의 보존과 기억에 대한 고민은 그리 깊지 않았습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도 지난 2007년에야 관련 현장 기록을 남겨두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3월 13일 밀양시 내일동 옛 관아 앞에서 재현된 밀양 3·13 만세운동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 전국에 수많은 항일독립운동 유적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는 경남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당수 유적이 멸실되거나 보존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장소가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이 일어났거나 그 중심에 섰던 독립운동가가 살아숨쉬던 역사 현장이라는 것을 알리는 작은 표지마저 없는 곳이 많습니다.

지역 언론이라면 이들 현장을 찾아내 후대에 알릴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보존을 위한 다양하면서도 구체적인 제언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경남 전역 항일독립운동 현장을 찾아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현재를 조명해 앞으로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 고민은 '어떻게 기억하느냐'부터 시작합니다. 경남지역 항일독립운동을 주제로 풀어야 할 이야기는 당장 생각해도 한없이 펼쳐집니다. 지역만 따져도 18개 시·군을 모두 아울러야 합니다. 항일독립운동 방법으로 분류해도 한말 구국운동·문화운동·민족주의 독립운동·사회주의 독립운동·사회운동·애국계몽운동·의병운동·의열투쟁·해외독립운동·학생운동·일제통치/탄압기구 등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하고 맺어야 할지 막막합니다. 이 모든 것을 우겨넣는다 해도 경남지역 항일독립운동 현장을 제대로 기억하게 할 것인가라는 의심은 거둬지지 않습니다.

해방 70년을 맞은 지금 세월의 무게는 항일독립운동 현장에도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상당수는 멸실돼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은 당연합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리에는 도로나 아파트, 대형 상가가 들어선 곳도 많습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경남·부산·울산 일대 213개소 사적지를 조사한 바를 보면 80% 이상이 멸실 또는 변형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제 현장에서 항일독립운동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장을 현장으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덧입혀야 하는 이유입니다. 현장이 있기에 그 장소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알기에 현장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진 등을 활용해 현장을 기록함과 동시에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려볼까 합니다. 그 현장의 역사를 상세하게 연구한 역사학자나 향토사연구자를 섭외해 이야기를 듣고 관련 사료를 구합니다. 가능한 한 학자와 함께 당시 현장에 있었거나 사건을 몸소 겪은 인물을 찾아 역사적 기억도 정리합니다. 항일독립운동 당시와 많이 달라진 현장을 기록하고, 될 수 있는 한 옛 모습을 담은 사료를 찾아 현재와 비교합니다. 현재 현장이 지닌 보존 상태와 지역민 인지 상황을 파악한 뒤 보다 많은 사람이 그 장소를 기억할 방안은 없는지 고민합니다.

◇이야깃거리 가득한 경남 = 이번 기획을 구상하던 중 반가운 소식 하나가 들렸습니다. 지난달 24일 창원시가 독립운동가 주기철 목사 기념관을 만들어 개관했다는 소식입니다. 주 목사는 1897년 당시 창원군 웅읍면 부북리 산 94번지(현 진해구 부북동 산 94번지)에서 태어나 지역 내 민족주의 학교인 개통학교에서 수학했습니다. 이후 평안북도 정주 오산학교에 가 수학한 후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해 1년간 공부하다 안질에 걸려 낙향했습니다.

1919년 웅천교회에서 집사 직분을 받고 교남학회를 조직해 애국사상을 고취하던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웅천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이후 웅천청년운동단 대표, 조선청년연합회 의사 선출, 부산 초량교회, 마산 문창교회, 평양 산정현교회 등에서 목사로 봉직했습니다. 비록 선생의 생가는 산 정상부에 해당하는 외진 곳에 있어 가옥은 멸실됐지만 창원시는 부북동에 기념관을 건립해 주 목사를 기리도록 한 것입니다.

이 같은 기념관을 중심으로 선생이 다닌 개통학교(현 웅천초등학교), 생가지와 결혼 후 분가해 살던 곳, 웅천교회 등을 묶어 학습코스로 삼으면 '군항 도시' 이미지가 강한 진해지역을 민족주의 독립운동 중심지로도 기억하도록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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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다른 지역에도 이런 사례를 여럿 만들 수 있습니다. 양산장터 3·1운동 만세 시위지와 이후 이들이 재봉기해 나선 양산헌병분견소 터를 잇는 답사 띠를 만드는 일도 그중 하나입니다. 인근 양산경찰서 터와 양산농민조합 시위지를 이으면 훌륭한 양산지역 항일독립운동 답사 코스가 될 것입니다. 하동청년회관 터와 하동신사 터 하동읍 장터 3·1만세운동 시위지를 연계한 하동 항일독립운동 답사·교육도 가능합니다. 당시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곳에 스토리를 담고 이를 기억할 만한 작은 표지석만 세워도 이를 잇는 것은 충분한 일입니다.

경남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지역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거리'를 풀어놓고자 합니다. 누군가 진주 역사를 물을 때 '진주 항일독립운동을 따라가려면 말이지…'라며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근거. 이 기획이 바라는 쓰임새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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